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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08. 2024

노오력이 아닌 우연하게 찾아오는 행복

Day 5. 뿌엔떼 라 레이나 → 에스떼야

아침이 찾아 온 뿌엔떼 라 레이나


얼마 전, eSIM이 만료되었다. 연장해서 쓸 계획이었지만 지난 며칠간 까미노를 걷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 고민이 되었다. 노란 화살표가 안내해 주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되는 이 단순한 여정에 정말 굳이 통신 서비스를 써야 할 일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엄마 역시 필요할 때는 알베르게나 바에서 위피(Wifi를 스페인에서는 위피라고 발음한다.)를 잡아서 쓰면 되겠다고 동의를 했다.


나는 USIM을 사서 쓸 생각도 못한 어리숙했던 12년 전의 은영을 떠올렸다. 길에서 순례자를 찾기 어려운 겨울이었음에도 그 필요성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고 잘만 걸었던 나를. 스마트폰만 켜면 괜히 SNS나 들어가 뒤적거리기만 할 텐데 어쩌면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 좋은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참에 더욱이 한국에 두고 온 내 일상과 확실한 거리를 두는 것도 좋겠다고 판단했다. 순례에 필요한 정보는 미리 받아두었으니 안심하며 순례 모드로 전환하기로 했다. 통신이 단절된 오프라인 상태로 길을 나섰다.




LET IT HAPPEN


- LET IT HAPPEN


길을 걷다 만난 표지석에 쓰인 문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몇 해 전에 읽은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에서 알게 된 행복의 영단어인 'Happy'의 어원을 기억해 냈다.


Happy의 'Hap-'은 바로 'Happen'에서 온 것이라며 설명하는 페이지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줄곧 영어를 구사하면서 비슷하게 생긴 저 두 개의 영단어를 단 한 번도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오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현시대에 사는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주 먼 과거의 사람들이 생각한 행복의 개념은 단지 ‘우연히’ 찾아오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행복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불면으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 알람도 없이 일어난 아침에 아무렇게나 텃밭에 뿌려둔 나팔꽃 씨앗이 봄비를 맞아 만개한 얼굴을 보여준 덕분에 이른 시간부터 괜히 들떴던 날처럼 말이다. 행복은 빠듯한 시간 안에 일과를 마치고 한 시간 반이 넘도록 달리는 퇴근 버스에서 피곤한 눈으로 체호프의 문장을 훑어내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Zoom 화면으로 만나는 건조한 표정들과 함께 브뤼노 라투르와 도나 해러웨이 그리고 이졸데 카림을 넘나드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오늘도 회사 일 말고도 다른 무언가를 했다고 자신을 격려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과 다른 결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볼 시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행복을 행복으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며 나는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지난해 여름, 10년을 근무한 대기업의 책임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퇴직을 한 데는 이런 이유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행복이 우연하게 찾아올 수 있도록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사무실에서 보낸 지난 십 년과 다른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이다. 좋아하는 일에 마음이 두며 살아가다 보면 행복이 '헤프게'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퇴직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나는 까미노 위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까미노 위에서 만나는 작은 마을


물기 없는 날씨임에도 바라만 봐도 시원한 하늘빛에 상쾌함이 폐 안으로 들어찼다. 길가에 자라는 체리나무는 갈증이 난 우리에게 단 간식을 선사해주곤 했다. 하나 둘 얼굴을 익혀가는 순례자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격려하는 인사말에 우정은 쌓여갔다. 그렇게 행복은 걸음이 닿는 곳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그저 일어나게 두라는 'LET IT HAPPEN'을 메시지를 남긴 이가 생각하는 행복도 이 문장에 맞닿아 있지 않을까?




저녁에 에스떼야에 우리의 배낭을 가지고 베드로가 찾아왔다. 다시 찾아온 작별의 순간을 맞아야 했다. 나는 또 눈물로 얼굴을 씻어내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12년 전의 베드로는 사소한 순간에도 눈물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울음을 꾹 참고 그에게 웃어주지 않으면 그가 진정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세월이 흘러 만난 지금은 항상 눈물을 보이는 것은 나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맑은 얼굴로 내게 웃음을 지어주는 역할은 베드로에게로 돌아갔다. 만약 다시 12년이 흘러 내가 지금의 베드로와 같은 나이가 된다면 그때는 우리 둘 다 웃으며 헤어질 수 있을까?


엄마는 베드로에게 한국에 오라는 말을 했다. 베드로는 화답의 의미로 엄마에게 비쥬로 인사를 했다. 그건 엄마의 인생 첫 비쥬였다. 나는 아디오스(Adiós, '안녕'이라는 의미의 작별 인사에 해당하는 스페인어)가 아닌 아스따 루에고(Hasta luego, 'See you later'에 해당하는 '나중에 봐'의 스페인어)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12년 만에 다시 만난 것처럼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엄마와 나는 에스떼야에서도 문이 있는 아늑한 펜션에 머물렀다. 편안한 차람으로 엄마는 나와 함께 일기를 썼다.


"노력 중이야."


엄마는 밤마다 다음 날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걸음을 디딜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했다. 이 길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생각 중이라고. 그 말에 나는 잠시라도 엄마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으려 애썼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Day 5. JUN 14, 2024

Puente La Reina → Estella, 2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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