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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19. 2024

하늘을 보는 메세따

Day 16.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 →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

달과 별과 함께 걸은 새벽


달과 별을 곁에 두고 걸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밤을 보기 어려운 여름의 까미노. 밤과 가장 가까운 하늘을 보며 걷는 것은 이런 새벽녘이나 가능했다.


지난밤,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 이후의 여정을 두고 엄마와 논의를 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었다. 15.5km라는 짧은 거리를 걸은 후 그날의 일과를 마칠 것인가 아니면, 32.5km라는 긴 여정에 도전할 것인가. 하필이면 15.5km를 걸어 도착하는 마을인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와 32.5km를 걸어 도착하는 마을인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 사이 구간에는 아주 작은 마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길게 뻗은 길 위를 줄지어 걷는 순례자만이 이곳의 황량함을 알 뿐이다. 17km가 되는 그 거리를 두고 더 걸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엄마는 지형을 살펴보더니 평탄하게 이어지는 메세따라 해 볼 만하겠다며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까지 걸어보자고 했다. 대신 아주 일찍 일어나서 걷자며 약속한 것이었다.


날이 밝아오는 시간


동쪽에서 떠오르는 햇빛에 어느새 별이 사그라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농도가 짙은 붉은색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태양은 되직하게 묻힌 안료로 하늘을 붓질하며 서서히 위를 향해 이동했다. 엄마와 나는 시간 차를 두고 번갈아 멈추며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사진으로 담은 풍경이 나도 좋았다. 생기를 불어넣는 빛에 살랑이는 들의 밀알이 하나 둘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까맣게 잊고 있던 존재를 섬세하게 다루는 손길은 이제 막 움튼 꽃봉오리의 솜털마저 빛나게 했다. 그건 밤하늘을 지키던 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출의 순간에 더욱 광이 나던 달은 하늘이 파랗게 물들기 전까지 본연의 색을 오래도록 유지했다.


일출의 순간
땅 위의 모든 존재가 본연의 색을 되찾아가는 시간




태양이 부리는 환상적인 일출 시간이 끝날 무렵 우리 뒤로 누군가 걸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돌아보며 내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자신 있게 물었다.


“당신, 모니카 맞죠?”

“네…? 날 어떻게 알아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휘둥그레 해진 눈을 하며 역으로 질문을 던진 그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말문이 막힌 채 슬며시 허공에 둔 발을 땅에 착지하는 그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브라이언한테 들었어요. 제가 오늘 당신을 만날 거라고.”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까지 걸어가게 됐다는 이야기에 브라이언은 메시지로 어느 순례자의 사진을 보내줬다. 브라이언이 머무는 알베르게에서 모니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가 나와 같은 곳을 다음날 걸어갈 예정이라고. 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자 모니카는 당황한 기색을 벗어던지고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왔다는 모니카는 우리보다 이틀 가량 일찍 순례를 시작했지만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아 며칠간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한국에서 온 우리 모녀에게 모니카는 자신의 취향을 고백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K드라마였다. 인스타그램에 팔로우하고 있는 한국인 배우를 쭉 보여주는 모니카는 신이 나 있었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터라 배우를 잘 모르는 편에 속하는 나였지만 대부분 유명한 배우라 다행히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 오고 싶다는 그에게 호응을 했다.


“혹시 가이드가 필요하면 연락해요. 알았죠?”


우리는 마저 서로의 관심사를 알아가며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가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함께 걸었다.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서 나와 엄마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에 나섰다. 아직 아홉 시 반밖에 되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찍 걸은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탓에 해가 벌써 중천에 뜬것인양 무척 더웠다. 제대로 된 그늘을 찾기 어려운 17km가 더욱 길게 느껴졌다.


"정말 희한하다!"


엄마와 나는 길을 걷다가 큰 나무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늘에 들어가 목을 축였다. 나무의 그림자는 더위를 금세 쫓아낼 바람을 데려오곤 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숨을 고르며 희한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표현이 그늘 아래에서도 여전히 찌는 더위로 여름을 보내야 하는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감탄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400km 표지석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는 400km 표지석을 발견했다. 프랑스 길의 전체 여정 중 어느새 반을 걸어온 셈이었다. 여태 순례길의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그 어떤 표지석에도 미동이 없던 엄마는 걷느라 바빠진 걸음을 다그치며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표지석이 중심에 들어오도록 구도를 잡더니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함께 걸어오면서 700, 600, 500 등 백 단위의 숫자가 줄어든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불러 세우며 표지석을 가리켰다. 그게 엄마의 걸음을 가볍게 해 주리라, 희망을 걸면서.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엄마는 내게 말도 꺼내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아직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는 큰 숫자에 엄마는 미간에 주름을 지었다.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딸이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17km를 걸은 끝에 닿은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에는 수영장이 딸려 있는 알베르게가 하나 있다. 애초에 이 마을까지 와서 머무는 순례자가 거의 없을 거란 생각으로 예약도 없이 찾았건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꽤 많은 순례자들이 편의시설이 가득한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를 지나쳐 이 마을까지 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마을에 온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지친 다리를 풀어줄 심산으로 알베르게의 수영장만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비좁은 리셉션은 그야말로 미어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엄마와 함께 왔다는 내 말에 오스삐딸레로는 난처한 얼굴로 아래층 침대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객실로 이어지는 이층에서 침대를 배정해 주던 그는 엄마에게 아래층 침대를 가리키며 그걸 쓰라고 했다. 마지막 남은 아래층 침대였다. 하마터면 엄마에게 위층 침대가 돌아갈 뻔했다. 엄마는 안도하며 아래층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며칠 전 비슷한 일이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에서 있었다. 오스삐딸레로의 불찰로 인해 약속받은 아래층 침대를 쓰지 못하고 엄마가 위층 침대를 쓰는 일이 생겼다. 사다리를 밟으며 위층 침대로 올라가는 엄마는 겁이 나는지 손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성이 제대로 난 내게 오스삐딸레로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다음 날 우리가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까스뜨로헤리스에서도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그가 숙박을 무료로 제공해 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 말에 엄마는 하루만 고생하지 뭐, 하며 씩씩하게 말했다. 하지만 위층 침대의 낮은 난간에 행여 몸을 뒤척이다가 떨어질까 하는 염려로 엄마는 밤새 선잠을 자야 했다. 다행히 그건 엄마가 경험한 처음이자 마지막 이층 침대였다.


"엄마도 수영장에 가지 않을래?"


여름의 순례자들이 쉬는 방식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물에 가서 놀라며 등 떠미는 엄마를 기어코 설득해 함께 수영장으로 갔다. 물속에 들어간 나는 엄마에게 발이라도 담가 보라며 재촉했다. 내키지 않아 하던 엄마는 느린 걸음으로 가까이 걸어왔다. 내 성화에 마지못해 물에 발을 담가보더니 제법 괜찮았는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나는 온몸에 달궈진 열기를 엄마는 다리에 쑤시는 통증을 차가운 물로 씻어냈다.


한참을 곧은 자세로 앉아 쉬고 있던 엄마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다리에 물기를 털고 담장 쪽으로 걸어갔다. 벽에 기대어 있던 뜰채를 들고 돌아와 다시 발을 담갔다. 뭘 하는 건가 싶었더니 물에 빠진 벌레를 뜰채로 걷어내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뭐 하나. 이런 거라도 해야지."


엄마는 정말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바에 갈 때마다 앉기도 전에 테이블이며 의자며 먼지를 닦아냈고, 식사를 마치면 접시를 포개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딜 가나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는 걸로 엄마는 이미 까미노 위에서 유명했다. 그런 엄마가 이번엔 뜰채로 수영장 청소까지 자처한 것이었다. 오스삐딸레로가 어련히 알아서 할 일인 것을. 답답해하는 나와 다르게 함께 수영장을 쓰는 모든 순례자는 엄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도 그저 수고스럽게 움직이던 엄마에게 고마워하고 말면 될 일이었을까? 그보다 한시라도 쉬지 않는 엄마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이제는 수영장에 있기 어려울 정도로 추워졌다. 몸을 가득 메우던 열기가 모두 물에 용해 돼버렸고 어느새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따가 한 차례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며 알려주었다. 수영장 밖으로 나와 샤워실로 가려는데 리셉션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에밀이었다. 반가움도 잠시, 우리보다 한참 앞서 갈 거라고 생각했던 에밀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게다가 함께 있어야 할 브라이언이 보이지 않아 좀처럼 어떤 상황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얼마 간 시차를 두고 나타난 브라이언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에밀이 많이 아파서 더 갈 수가 없었어."


얼마 전부터 복통으로 고생을 하던 에밀이었다. 얼굴은 그렇지 않은데 물어볼 때마다 괜찮다고 대답한 에밀의 말을 가볍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밤 우리보다 앞에 있는 마을에서 묵었지만 에밀은 이른 아침부터 이미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마의 17km 구간을 걸을 때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날이 이렇게나 더운데 에밀은 식은땀을 흘리며 오한에 떨기 시작했다.


"혹시 17km 구간에 있던 두 번째 푸드트럭 기억나? 다행히 거기서 도움을 받았어."


도저히 더 걷기 힘든 지경에 이른 에밀을 발견한 푸드트럭의 주인이 차로 그를 알베르게까지 데려다주었고, 브라이언은 에밀을 먼저 보내고 걸어온 거라고 했다.


사람이 사는 마을이 존재하지 않아 물 한 모금을 찾아 마시기 어려운 17km 구간에는 다행히 두 개의 푸드트럭이 있다. 엄마와 나도 구간의 중간 지점에 있는 첫 번째 푸드트럭에 들려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한 잔씩 마시며 잠시 휴식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 푸드트럭은 400km 표지석을 지나치고 얼마 가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또다시 쉬어갈 것인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엄마와 나는 앞뒤로 서로 의견을 물었다. 이대로 쭉 걸어가자며 결정을 내렸는데 우리의 의중을 모르는 푸드트럭의 주인은 자꾸만 우리를 불러 세웠다.


“무조건 무료예요. 거기, 잠시 쉬었다가 가요!”


알고 보니 그가 그 푸드트럭을 무료로 운영하는 사정은 이랬다. 실제로 이 혹독한 17km 구간을 걷다가 지쳐 쓰러지거나 다치는 순례자가 매년 속출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이가 나서서 지금의 이 푸드트럭을 무료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해를 가릴 수 있는 가벼운 천으로 그늘을 만들고 시원하게 보관해 둔 얼음물을 내어주는 마음이 까미노의 가장 힘겨운 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던 엄마가 전해준 대로 정말 비가 한 차례 내렸다. 그 덕분에 바깥공기가 알베르게 안 보다 훨씬 상쾌했다. 나는 일기장과 펜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오가는 바람 사이를 앉아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알베르게를 함께 묵는 프랑에서 오신 어르신이 일기를 쓰는 내게 다가와 스마트폰 화면을 슬쩍 보여주셨다. 까만 눈의 아기 새가 찍힌 사진이었다. 새의 얼굴이 가득히 화면에 차도록 나는 엄지와 검지를 펼쳐보았다. 어르신은 내게 함께 새를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선뜻 그를 따라 알베르게 뒤편으로 걸어갔다. 걸음마다 몸에 감기던 메세따의 바람은 짧은 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헝클어뜨렸다. 머리 위로 제비 떼가 요란하게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기 새가 혼자서 들풀 위에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것 같구나.”


어르신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새에게 다가갔다. 나는 뒤에서 그의 발자국 소리에 내 발자국을 포개었다. 평소 산을 자주 다니면서도 새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다가가는 나를 놀리듯 새는 쉬이 날아가버리곤 했으니까. 두려움이란 감정을 아직 배운 적이 없는 아기 새는 아무런 저항 없이 우릴 응시했다. 나는 새의 순수함에 눈 맞추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 까미노에서 잭에게 배운 대로 인사했다.


“그라시아스!”


나지막이 건넨 말, 그라시아스


잭은 새를 불러 모으는 재주가 있었다. 그가 휘파람을 길게 불고 박수 두 번을 치면 신기하게도 공중에 있던 새들이 나뭇가지에 모여 앉았다. 가끔은 그 마술쇼에 나를 보조로 참여시켰다. 잭이 길게 휘파람을 불면 옆에 있던 나는 박수를 짝짝 두 번 연달아 쳤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잭은 카메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새를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곤 그들을 향해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그라시아스'라는 이 나라의 감사 인사를 말이다. 나는 잭의 행동을 향유라고 읽었다. 그렇게 나는 잭을 통해 자연을 향유하는 법을 배웠다. 


아기 새를 함께 보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 어르신은 나처럼 이번이 두 번째 까미노라고 했다. 지난번에도 이 마을에 묵었는지 물었다. 그렇다는 내 말에 어르신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이어 말하셨다.


"메세따는 하늘을 보기 참 좋은 곳이지. 그때도 이런 작은 마을에 묵었다니, 정말 잘했구나."


노을이 찾아오는 메세따

메세따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는 처음이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평평한 고원의 메세따를 가리키며 지루한 곳이라고 치부할 때 어르신은 절절한 눈으로 메세따의 하늘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가장 낭만적인 곳이 바로 메세따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여태 그 생각을 해보질 못했지? 나 역시 하루종일 계속해서 사진으로 하늘의 여러 모습을 포착했다. 비단 오늘 뿐이 아니었다. 12년 전에도 나는 메세따의 하늘을 수없이 찍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메세따 덕분에 온전하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사실은 떠올리지 못했다. 어쩌면 메세따는 평탄한 지형을 이용해 빠르게 걷거나 탈 것으로 건너뛸 곳이 아니라 가장 느리게 걸어야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알베르게의 문을 닫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스삐딸레로의 잔소리를 들을지언정 가능하다면 계속 메세따의 하늘을 봐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며 하늘을 붉게 물드는 때를 기다렸다.



Day 16. JUN 25, 2024

Poblacion de Campos → Calzadilla de la Cueza, 32.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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