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 까스뜨로헤리스
이제 막 알베르게를 나서 마을을 통과하던 참이었다. 엄마와 나는 동네 어귀에서 배낭을 정리하는 던을 만났다. 던은 아들 도스와 한동안 각자의 속도에 맞춰 따로 걷기로 했다고 말했다. 체력이 좋아 더 멀리 걸어갈 수 있는 도스는 앞서 걷다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가까워질 무렵 엄마인 던을 기다려 마지막 여정을 함께 걸을 예정이라고. 그런 이유로 던은 처음으로 자신의 배낭을 메게 되었다. 종종 엄마와 내가 했던 것처럼 도스도 던의 배낭을 메고 자신의 배낭을 부치며 걸었던 모양이다.
"은영, 어제 부탁한 것 좀 들어줄 수 있겠니?"
지난밤에 머문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어느 펍에서 만난 던은 저녁 식사를 하러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내게 부탁을 했다. 우리 엄마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통역을 해줄 수 있냐고 말이다. 영어로 소통이 어려운 엄마의 개인 통역사로 활약한 지 벌써 삼 주가 가까이 되던 시점이었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다. 그보다 엄마와 이야기가 하고 싶다는 그의 말이 좋았다.
"네 엄마 취미가 어떻게 되시니?"
던은 가벼운 질문부터 던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답은 당연지사 노래하기였다. 엄마의 노래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던은 엄마의 답에 흥미로워했다.
"흥얼거리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라. 일을 하는 중에도 노래를 부르곤 하니까."
팔자에도 없는 통역사 노릇을 하려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한편으로 이런 비루한 실력에도 나를 의지해 서로 문답을 하는 두 어머니가 고맙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던 해였다.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내게 윤선생을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데도 기회가 생기면 뭐든 해보고 싶은 나는 놓칠세라 덥석 그러겠다고 했다. 중학교를 다니던 내내 아침마다 집으로 걸려오는 윤선생 전화를 받느라 강제 기상을 한 덕분에 학교에서 보는 영어 듣기 평가마다 제법 괜찮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두 어머니의 대화를 도울 수 있는 것 또한 그때 엄마가 선뜻 시켜준 윤선생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무슨 일을 하시는데?"
"엄마는 옷 수선 일을 하셔요. 때때로 옷도 디자인해서 만드시고요. 엄마가 자주 입는 검은색 바지 기억나세요? 그것도 엄마가 만든 거예요."
"정말? 기억하고 말고. 솜씨가 대단하신걸?"
"네, 그래서 엄마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요. 장기 휴가를 간다고 가게에 써붙여놓고 왔는데도 손님들이 자꾸 전화를 하는 바람에 엄마가 밤마다 잠에서 깨서 고생을 하시죠. 시차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요."
"어서 한국에 가셔야겠는걸? 재봉틀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네 엄마를 다들 기다리나 보다."
이번에는 엄마가 던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쳤어. 미술 교사였거든."
"미술이요? 저 미술공부를 했거든요. 디자인이랑 공예를 전공했어요. 회사 생활을 할 땐 UX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했거든요."
엄마들 사이에 오가던 대화에 내가 끼어들었다. 엄마는 미술을 공부한 내가 던이랑 서로 대화가 잘 통하겠다며 호응했다.
"자녀는 어떻게 되시니?"
"제가 첫째고 아래로 두 남동생이 있어요."
"나와 같구나. 나도 자녀가 셋이란다. 도스는 봐서 알 테고, 큰 아들과 딸이 있지. 둘 다 결혼을 했어. 큰 아들에게는 아이가 있고."
"제 큰 동생도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어요. 엄마, 아주머니께 조카 사진 보여드릴까?"
엄마는 주저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조카의 사진을 찾았다. 뚱한 표정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밥을 먹는 모습, 동생 부부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손뼉을 치는 모습, 어린이집에서 아장거리며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모습까지. 엄마의 사진첩에는 수많은 조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걸 던에게 보여주며 엄마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던은 지난해 결혼을 한 딸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었다. 대를 거듭해 내려온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열었다는 결혼식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화병부터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이 걸었을 꽃길까지 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진 속에서 본 던의 딸은 기쁨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느 어머니들이 그렇듯 두 어머니는 서로 자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순례자라는 신분은 잊은 채 그들은 어머니로서 충실히 대화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네 어머니랑 어떻게 여기를 오게 된 거니?"
던은 엄마와 내가 함께 까미노를 오게 된 까닭을 물었다. 12년 전 까미노를 다녀온 나를 통해 엄마는 이 길을 알게 되었다. 그 여정의 감상을 독립출판으로 내가 직접 쓰고 엮은 책인 『일몰을 향해 가는 길』을 읽으며 엄마는 언젠가 산띠아고를 향해 걷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엄마의 소망이 곧 나의 소망인 것처럼 여기며 살던 나는 지난해 10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며 온전히 내 의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바로 이곳을 떠올렸다.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던 딸을 기특하게 여기던 엄마에게는 자랑거리가 하나 줄어든 셈이었지만, 대신 여유로워진 시간으로 엄마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까미노를 선택했다. 이 정도면 엄마에게 대기업을 다니는 딸이라는 타이틀을 넘어선 자랑거리로 손꼽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던에게 답을 하며 엄마를 바라봤다. 부디 엄마에게 이 순간이 자랑스러운 딸과 함께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우리는 지난밤 잉과 에나르 그리고 안드레아가 머물다 간 온따나스에 닿았다. 엄마와 나는 수모 데 나랑하(Zumo de naranja, '오렌지 주스'의 스페인어)를 한 잔씩 주문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 마을에선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지난 까미노에서 잭과 나는 부르고스를 떠나 온따나스까지 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온따나스에 도착한 나는 앞서 걷던 잭의 모습을 알베르게에서 찾아볼 수 없자 당황하고 말았다. 나보다 뒤처졌을 리 없는 그이기에 그가 앞에서 걷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마을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겨울의 낮은 이미 저물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알베르게에 지친 걸음을 이끌고 두 명의 한국인 순례자가 이제 막 걸어오고 있었다. 알베르게에 남은 침대가 단 두 개뿐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그들에게 침대를 양보하고 다음 마을인 까스뜨로헤리스까지 걷기로 했다. 알베르게에 침대가 부족하면 자전거 순례자가 더 멀리 가는 것을 관례로 여기는 까미노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들보다 까미노에 알맞은 체력이었으니 더 걸을 수 있는 자가 걷는 것이 당연했다. 풀어둔 배낭을 정리하는 내게 다가와 그들은 감사의 인사를 거듭 건넸다. 까미노를 걸으며 제 아무리 그라시아스(Gracias, '감사합니다'의 스페인어)에 익숙해졌다 한들 '감사합니다'라는 고국의 언어가 더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되풀이하며 건네는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동시에 그들이 무사히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닿기를 바랐다.
이제 정말 출발해야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어디서 들었는지 요 며칠간 안면을 튼 스페인 아저씨 도니가 와서 내게 비상식량을 건넸다.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지? 부디 조심히 가려무나."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해 도착한 까스뜨로헤리스. 그곳의 알베르게에서 마침내 잭을 만날 수 있었다. 말도 없이 훌쩍 가버린 그를 있는 힘껏 노려보았지만 고생한 내게 식사부터 하자며 반기는 모습에 금세 마음을 풀고 말았다. 사실, 애초에 나는 진지하게 화를 낼 생각이 없기도 했다. 그날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까미노에서 40km를 넘게 걸은 날이었다.
예약으로 운영되는 사설 알베르게가 넘쳐나는 요즘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침대를 양보하는 일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해가 갈수록 이 길을 찾는 순례자가 많은 탓에 예약 시스템을 활용해 편의를 챙길 수 있도록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이처럼 일직선으로 흐른다.
엄마와 나는 온따나스를 지나 까스뜨로헤리스에 닿았다. 그리고 그때는 보지 못한 까스뜨로헤리스가 지닌 낮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산들거리는 밀밭에 잡초처럼 난 양귀비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 뒤로 솟은 언덕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 까스뜨로헤리스가 펼쳐져 있다. 날씨까지 받쳐준 덕분에 파란 하늘 아래 까스뜨로헤리스는 더욱 생기가 돌았다. 나처럼 까미노가 두 번째라는 던은 이 마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꼽는다. 길에서 본 마을의 첫인상만으로도 그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왜 그가 그토록 이곳을 좋아하는지.
- 은영, 에밀이랑 방금 까스뜨로헤리스에 도착했는데 같이 식사할래?
브라이언의 메시지였다. 이미 엄마와 함께 알베르게에서 점심을 챙겨 먹은 터라 와인이나 한 잔 마실 겸 나는 그들이 있는 식당으로 갔다. 제한된 일정 안에 순례를 마치고 더블린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브라이언은 까스뜨로헤리스에서 멈추지 않고 더 멀리 걸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애초에 엄마의 상태를 봐가면서 천천히 걸을 생각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넉넉히 예약해 둔 나와 사정이 달랐다. 게다가 그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가 아닌 피스떼라까지 걷길 원했다.
대서양을 품고 있는 피스떼라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삼사 일을 더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과거의 유럽인들은 피스떼라의 광활한 바다를 보며 그곳을 세상의 끝이라고 여겼다. 지난 까미노에서 나 역시 그 길을 걸었던 터라 잘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피스떼라 구간은 내가 까미노에서 가장 온 마음을 다해 걸은 길이기도 했다.
"왜 그 길이 가장 좋았어?"
"이유는 여러 가지야. 그래도 가장 큰 이유를 손꼽자면 내가 그 길에서 난생처음으로 대서양을 봤다는 거야. 그전까지는 대서양을 본 적이 없거든. 대서양을 걸어서 처음 만났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어."
대서양 한가운데 사는 브라이언에게는 와닿지 않을 이유였을 테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피스떼라까지 이어질 여정을 기대하는 그를 위해서 나는 다른 이유도 들려주기로 했다.
"아마 네가 피스떼라를 가게 된다면 그 여정에서 여태까지 봐온 사람들과 다른 이들을 만나며 걷게 될 거야. 그 길이 포르투갈 길과 이어지거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순례를 마치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지 않아. 자연과 가까이하며 고요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좋지. 아, 너는 에밀과 함께 다닐 테니까 더욱 친밀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거야. 나도 그 길을 걸으며 잭이랑 무척 가까워졌거든. 물론 그전부터 아버지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냈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어."
식사를 마친 브라이언과 에밀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지난번에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식사를 하고 아헤스로 가는 브라이언을 배웅해 준 것처럼 이들을 배웅해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마을이 끝나는 길까지 함께 걸었다.
이번에 걸은 까미노에서 처음으로 친구라 부를 수 있었던 그가 브라이언이었다. 그를 알고 지낸 지 벌써 이 주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브라이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쉽지만 다른 곳도 아닌 피스떼라까지 걷겠다는 그 마음을 알기에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손을 힘껏 흔들어주었다.
나는 알베르게로 돌아와 브라이언에게 긴 호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 브라이언, 나는 네가 꼭 피스떼라까지 갈 수 있길 바라. 되도록이면 무시아를 거쳐 피스떼라를 갔으면 해. 무시아는 피스떼라보다 훨씬 평화로운 어촌 마을이거든. 무시아에서 피스떼라를 향해 걸을 때 아마 해변을 따라 걷도록 노란 화살표가 널 안내해 줄 거야. 그 길을 함께 걸은 잭은 내게 무시아의 해변에서 세 개의 조개껍데기를 주워서 내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어. "미셸, 이게 대서양이란다." 나는 잭이 건네준 나의 대서양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 한국에 있는 내가 사는 집에 말이야. 나는 그걸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다 두고 그때를 추억하곤 해. 브라이언, 네가 너만의 대서양을 그곳에서 찾길 바랄게.
잭은 걸어서 처음으로 대서양을 보게 됐다는 내 말에 유럽인다운 반응으로 대서양 그게 뭐 별거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퉁명스러웠던 어조와 다르게 설레어하던 내 모습을 살펴본 잭이 무시아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워 내게 선물을 한 것이었다.
브라이언에게 메시지를 쓰다 말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나를 바라보던 잭이 지닌 에메랄드 빛의 눈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가 몹시 보고 싶었다.
Day 14. JUN 23, 2024
Hornillos del Camino → Castrojeriz, 19.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