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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16. 2024

네 엄마가 널 지켜줄 거란다

Day 13. 부르고스 →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사실, 어제 엄마랑 다퉈서 부르고스 대성당 구경은 못 했어."


부르고스에서 출발해 10km 정도를 걸었을 무렵 도달한 마을 따르다호스에서 잉을 만났다. 그 마을의 어느 바에서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데 잉이 부르고스 대성당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입장료를 내면 내가 미사를 드린 예배당 외에 성당의 다른 공간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다. 엄마와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심하게 다툰 터라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엄마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잉에게 부르고스 대성당을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 간 거였다고 은밀히 사실을 털어놓았다. 놀란 눈을 한 잉이 다툼의 이유를 물었다. 


"알잖아. 엄마랑 딸이 싸우게 되는 사소한 일들. 그냥 그런 평범한 이유였어."


엄마와 나는 여전히 저기압이었지만 우리 둘은 서로 조심하고 있었다. 더 이상 기분이 상하지 않게. 지난밤 아쉬웠던 시간을 생각하며 노력도 하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나서자마자 보이는 부르고스 대성당 앞에 가서 함께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을 만큼. 게다가 길에서 오랜만에 잉을 만나 터라 눈치를 봐서라도 그 어느 때보다 평화를 연기하기에 좋았다. 당장 마음이 풀어지지 않더라도 괜찮은 척하다 보면 정말 기분이 괜찮아지기도 한다.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날에도 한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처럼 감정은 행동을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얼마를 더 걸었을까? 잉과 함께 걷던 우리는 어느 성당에 닿았다. 성당 안팎으로 순례자들이 제법 있었다. 끄레덴시알에 쎄요(Sello, 도장의 스페인어)를 찍으려고 모여든 것인가 했더니 그뿐만 아니라 성당에서 수녀님이 순례자를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고 계신다고 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그곳에 있던 아이린이 다가와 통역이 필요한지 물었다. 미국의 텍사스에서 온 아이린은 영어 스페인어 간 통역이 가능한 순례자였다. 우리의 차례가 되자 엄마와 나는 손을 포개어 잡았고 내 등 뒤에 선 아이린은 수녀님의 기도를 통역하기 시작했다.


"네 엄마가 널 지켜줄 거란다…"


기도가 시작되자마자 내 시야는 그만 아득해져 버렸다. 가뜩이나 수녀님의 기도를 방해할까 싶어 아이린은 작은 목소리로 통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했는데 기도의 첫 문장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바람에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문장을 죄다 놓쳐버리고 말았다.


엄마를 챙기며 다니는 순례는 쉽지가 않았던 터라 내 마음은 몹시 지쳐 있었다.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이 길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엄마가 이 길 위에서 날 돌보고 있었다니. 수녀님의 기도는 내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정말 그랬다. 비록 내가 산띠아고 순례길이 두 번째인 경험이 있고 영어로 소통하는데 불편함이 없어 여행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며 엄마를 돌본다 한들 그래봐야 나는 고작 엄마의 딸이었다.


엄마와 함께 이곳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편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엄마의 말처럼 내가 까미노 위의 마을 곳곳을 내가 사는 동네처럼 편안하게 나다니면서 길에서 만난 친구들과 격 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건(그런 이유로 엄마는 날 종종 국제 소녀라고 부르곤 했다.) 날 든든하게 지지해 주는 엄마 덕분이었다. 이 여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기쁨의 순간은 곧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녀님은 기도를 마치고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메달을 엄마와 내게 하나씩 걸어주셨다.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셨고 뺨에 키스를 해주셨으며 두 팔로 안아주셨다. 나는 목에 걸려 있는 메달을 손안에 쥐고 바라봤다. 나는 같은 메달이 집에 하나 더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이번에 까미노를 준비하며 보관하고 있던 지난 까미노에서 챙겨 온 기념품들을 모두 꺼내놓고 살펴본 적이 있다. 그중에 이 성모 마리아 메달이 있었는데……. 기억은 흐려져 있지만 흔적이 남아 여태껏 내 삶 한 편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었다.


(좌) 지난 까미노에서 받은 기념품들 중 하나였던 성모 마리아 메달, (우) 이번 까미노에서 받은 성모 마리아 메달


"네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울린 거 알아?"


잉은 기도를 마친 내게 말을 건넸다. 돌아보니 정말 모두가 울고 있었다. 잉도 마찬가지로 눈물을 쏟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딸이자 아들이며,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다.


"오래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 다음 달 17일이 어머니 기일이야. 그날에 맞춰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지나 피스떼라까지 가고 싶어."


나는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리는 잉의 손을 꼭 잡았다.




밀밭에 들꽃처럼 피어있는 양귀비


"은영,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

"아, 이거 양귀비잖아."

"어쩐지 그건가 싶더라니! 긴가민가했어."

"여기, 이거 봐봐."


나는 내 오른쪽 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첫 타투로 새긴 양귀비꽃이 귓바퀴를 따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양귀비구나! 예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서 새겼어."

"혹시 그 시 알아? 이 양귀비 꽃을 노래하는 시인데……."


In Flanders fields the poppies blow
Between the crosses, row on row,
That mark our place; and in the sky
The larks, still bravely singing, fly
Scarce heard amid the guns below.

- 존 매크레이, 「플랑드르 들판에서」 중에서


잉은 「플랑드르 들판에서」이라는 제목의 시를 일러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추모시로 알려진 이 시는 플랜더스 전선에 투입된 군인 존 매크레이가 쓴 것이다. 전쟁 중 토양이 파헤쳐지면서 더욱 잘 폈다고 전해지는 양귀비의 붉은색은 현장에서 생을 달리 한 이들의 핏자국을 떠올리게 한다.


들을 붉게 물들이는 양귀비를 보며 지금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땅을 생각했다. 까미노를 걸으며 지나쳐 온 수많은 마을과 도시에서 본 팔레스타인 국기를 떠올렸다. 방금 전 성당에서 통역을 도와줬던 아이린은 배낭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달아놓고서 걷는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나부끼는 까미노를 우리는 걸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까미노를 걸으면 전쟁이 사라질 거라는 말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밤마다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를 향해 귀를 기울인다. 이 인터내셔널 테이블에서 우리는 서로를 배운다. 선을 그어놓고 너와 나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놓고 우리를 말하며 함께라는 감각으로 걷는 이 길은 평화를 인도할 것이다.




"은영, 밴쿠버에 네 알베르게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엄마와 내가 머물 마을이 다가오자 잉이 말했다. 잉은 다음 마을까지 걸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며칠 후 도달할 레온에서 잉이 연박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길이 아니어도 우리는 이어져 있으니 다음은 찾아올 것이다. 밴쿠버에 사는 잉은 자신의 집을 가리켜 알베르게라고 칭했다. 순례가 끝나도 순례자라는 신분은 여전한 듯 집에 놀러 오라는 말을 알베르게라는 단어를 빌려 말했다.


잉과 함께 걸은 길

"서울에도 네 알베르게가 있어. 언제든 놀러 와야 해, 알았지?"


잉의 표현이 마음에 든 나는 그대로 인용해 잉에게 말했다. 고향인 중국의 충칭에 조만간 갈지도 모른다는 말에 서울을 꼭 들리라며 나는 졸라댔다. 서울에 온 적이 있다는 잉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먹은 그 과일이 정말 맛있었는데 뭐였지. 주황색에 단 과일이었어."

"아, 퍼시몬(Persimmon) 말하는 거야?"

"어! 맞아! 정말 달고 맛있었어."

"그거 한국어로는 감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단 걸 단감이라고 말해. 단이 달다는 뜻이거든."

"단? 중국어로는 탕이라고 부르는데 진짜 발음이 비슷하다."

"탕? 혹시 탕후루의 탕이 그 탕이야?"

"네가 탕후루를 어떻게 알아?"

"요즘 한국 사람들 탕후루에 미쳐 있거든!"

"그게 왜?"

"몰라, 나도! 근데 난 아직도 먹어본 적이 없어. 보기만 해도 너무 달아서 먹고 싶지가 않더라고."

"굳이 안 먹어도 돼. 나도 그거 별로 안 좋아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잉이 앞서 걷던 엄마를 가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어? 네 엄마 노래 부르신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기분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인 노래. 리듬을 타는 엄마의 음성에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마침내 엄마와 나의 목적지인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에 닿았다. 잉과 작별 인사를 하고 알베르게를 찾아 체크인을 하려는데 우리를 발견한 스페인 순례자 에나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은영, 왜 여기서 멈춰? 더 안 가?"


그걸 지켜보던 잉은 네 엄마랑 네가 하도 잘 걸으니까 여기서 멈추는 걸 에나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라며 웃으며 말했다. 잉은 자신과 에나르를 가리키며 우리는 잘 걷지 못하는데도 더 멀리 간다면서 상황이 바뀐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긴 이제 막 열두 시가 조금 넘은 터였다. 나는 엄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더 걸을 수 있냐고. 그러나, 잉과 에나르가 간다는 온따나스까지 가려면 10km를 더 걸어야 한다는 설명에 엄마는 단호하게 싫다는 의사를 보였다. 나는 웃으며 앞서 갈 이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여기서 쉬고 싶대."


에나르는 길에서 만나 친구가 된 같은 까딸란 지역에서 온 순례자 안드레아를 불러 세워 나에게 자신들의 계획표를 보여줬다. 쭉 훑어보니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웬만한 알베르게를 다 예약해 둔 둘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지난밤, 보름달을 보러 나갈 때 에나르와 마주쳤다. 에나르는 내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브라이언과 함께 있던 내가 우는 것을 본 안드레아가 그에게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에나르는 혹시 자기가 도와줄 일이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이제껏 에나르와 가벼운 인사만 했을 뿐인데 그는 나를 돕고 싶어 했다. 안드레아 역시 우리를 도와준 친구였다. 엄마와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해 준 이가 바로 그였다. 알레르기로 고생한 엄마를 도와준 잉은 두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도우려는 사람들. 이들이 모인 곳이 바로 까미노였다.


"부엔 까미노!"


언젠가 길에서 다시 만나길 바라며 우리는 기약 없이 서로의 안전을 빌며 안녕했다.


종이 울리는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어느 교회



Day 13. JUN 22, 2024

Burgos → Hornillos del Camino, 20.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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