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벨로라도 →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지난밤부터 온 비가 쉬지 않고 내리는 아침이었다. 벨로라도를 빠져나오며 만난 개울가에 흐르는 물소리는 점차 빠르게 선명해졌다.
옷을 가볍게 입는 걸 좋아하는 나는 비가 조금이라도 멎어드는 기색이 보이면 우비를 벗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다시 우비와 모자를 꺼내고 배낭을 정리했다.
해를 가리려고 가져온 모자를 처음으로 썼다. 서핑모자라서 비 오는 날에 더 잘 어울렸다. 모자에 떨어지는 둔탁한 빗방울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탔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에 시간을 되돌려보고 싶어졌다. 나는 시야가 좁아진 모자 안에서 엄마도 보지 못하도록 나만이 아는 기억을 꺼내 봤다.
"Come and go."
12년 전 이 길을 잭과 함께 걷고 있었다. 잭은 우리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나초를 보며 말했다. 며칠 후, 닿게 될 부르고스에서 나초는 순례를 마칠 예정이었다. 잭은 벌써 그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져있었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열흘을 조금 넘은 때였다.
차로 한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거리를 하루에 몇 시간을 들여 도보로 이동하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 우리는 늘어진 시간 속에서 셀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다.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빽빽이 보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하루를 일주일처럼, 일주일을 한 달처럼 보내는 순례길에서 우리가 나눈 열흘의 시간을 단지 열흘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잭이 나초를 보내는 마음이 어떤 심정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Everything comes and goes."
일기장 표지에 써 놓은 문장으로 그에게 답을 건넸다. 모든 것은 다 오고 간다는 이 메시지는 싱어송라이터 미셸 브랜치의 EP의 제목이다.
Time is going by so fast
And I can't do anything about it
I've been holding on so long
It's time that I can do without it
Everything comes and goes
I'm always the last to know
And I can see the sun come up
Another day
- 미셸 브랜치, 〈Everything Comes and Goes〉 중에서
여행을 하며 마주한 숱한 이별에 지쳐있는 때에 만난 노래였다. 나는 미셸 브랜치의 노래를 들으며 납득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생각했다. 항상 만남의 기쁨 속에서 살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른 척했던 지난날에 사과를 하고 싶었다. 다음에 떠날 여행에는 이 메시지를 잊지 않겠다며 일기장 앞에 검은색 펜으로 문장을 눌러썼다. 그리고 찾은 곳이 바로 까미노 데 산띠아고였다.
배회하는 마음은 명확한 것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명료함이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답을 할 수가 없다. 그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며, 그의 언어와 비슷한 나의 언어를 얹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하는 것이 최선일 터이다. 담담하게 헤어지는 법을 배우는 건 잠시 미루고 잭과 나는 한동안 서로의 손을 잡고 걸었다.
빗속에 도착한 산 후안 데 오르떼가. 오스삐딸레로는 3인실이 있는데 엄마와 둘이서만 쓰고 싶은지 물었다. 이런 궂은날에는 순례자가 머물 곳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루 종일 내린 비에 지쳐 걸어오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남겨둬야 할 자리였다.
"이 방에 머물 순례자를 더 받으세요. 저희는 괜찮아요."
신발에 질척하게 들러붙은 흙을 털어내고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아늑한 방에 난 창 밖으로 햇빛이 드는 바람에 나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그쳐 맑게 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 편의 시설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점심 식사를 할만한 식당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은영, 같이 식사할래?"
알베르게 앞에서 젖은 양말을 갈아 신고 있는 브라이언을 만났다. 브라이언도 이곳에서 식사할 곳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친구가 브라이언인데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옮겨가 엄마와 함께 셋이서 허기를 달랬다. 브라이언은 지난밤에 벨로라도에서 묵은 알베르게 사진을 보여줬다. 수영장이 있는 곳이었다며 같이 놀았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사실 이미 알고 있던 곳이었다. 단지 일부러 가지 않았을 뿐. 내가 배낭에 수영복을 챙겨 온 것을 아는 엄마는 왜 가지 않았냐며 물었다. 나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내가 수영장에서 놀면 엄마는 혼자서 뭐 하려고. 엄마는 물놀이도 안 할 텐데."
"아휴, 너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걸 신경 쓴다. 놀고 싶으면 놀아라. 엄마는 괜찮으니까. 물놀이가 하고 싶으면 수영장이 있는 알베르게도 가.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식사를 하다 말고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대화를 지켜보던 브라이언도 엄마 마음은 다 그런 거라며 보탰다. 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챙김에 멋쩍은 웃음이 났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추워하던 엄마는 밥을 다 먹자마자 팔짱을 꼭 낀 채로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게 브라이언이 물었다.
"엄마가 널 키우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
브라이언은 길 위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엄마로 수렴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내 눈이 항상 앞서 가는 엄마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브라이언이 건넨 질문은 많은 것을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엄마와 함께 걷는 지금을 이야기하곤 했지, 과거를 이야기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는 엄마와 내게서 무엇을 본 걸까?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약간의 침묵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 음, 맞아. 그래서 힘들어. 항상 엄마 앞에선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거든. 이번에도 엄마를 위해 여기에 온 건데 엄마가 이 시간을 즐거워할지 확신이 없어. 엄마가 지쳐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힘들어. 죄책감이 들고 괴로워……."
나는 말끝을 흐리며 울고 말았다. 사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눈물이 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을 열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털어놓고 싶기도 했다. 그 상대가 브라이언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브라이언은 내 눈물에 흔들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왜 죄책감이 드는데?"
"어릴 때부터 나는 집이 싫었어. 엄마 곁에 있고 싶지 않았고 결국 집을 떠났어. 오랜 후에서야 나를 지키고 싶어서 했던 행동이 엄마에게는 상처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 그걸 만회해 보려고 애를 쓰는데 잘 안 돼. 계속 부족한 느낌이야."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과정이야. 너도 알다시피 누구나 부모를 떠나고 싶어 해. 나도 그랬어, 은영.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이야."
"나도 알아. 그래서 힘들어. 엄마를 떠난다고 해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그게 설명이 잘 안 돼. 내가 엄마를 떠나려고 했다는 사실만이 남아서 엄마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자책하지 마. 네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네 어머니가 알면 속상해하실 거야. 누구나 엄마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지. 나도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내 나이가 마흔일곱인데도 여든이 넘은 어머니 앞에서 너랑 같은 마음이 들어. 그렇지만, 엄마들은 생각 이상으로 우리들을 자랑스러워하시지. 내가 장담해."
자꾸 눈물이 나는 걸 참아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눈물이 모두 흘러나오도록 그냥 두라고 했다. 그리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재능이야. 나한테 문제가 있다면 그건 울지 못한다는 점일 거야. 은영, 정말 잘하고 있어."
나는 몇 해 전 보스턴에서 라이자를 다시 만난 적이 있다. 그건 우리가 순례길에서 헤어지고 3년 만에 만난 날이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라이자를 발견하고 나는 한달음으로 그에게 달려갔다. 라이자의 품에서 한동안 계속 우는 내게 그가 말했다. 은영, 이건 너만이 지닌 재능(Gift)이라고. 그때 나는 내 모국어를 버리고 라이자의 언어를 갖고 싶었다. 재능을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라이자의 언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라이자의 언어로 우리는 약속했다. 다음에는 3년이 채 걸리지 않게 다시 만나자고. 그러나, 여느 여행자의 약속이 그렇듯 세월만 무심히 흘러 벌써 8년이 지나고 말았다.
"브라이언, 너 정말 최고의 라이프 코치구나."
툭하면 울어대는 내게 그걸 두고 재능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과 있어도 나는 내 눈물로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걸 참을 수 없다. 그런 탓에 나는 그때마다 농담거리를 찾곤 한다. 브라이언이 까미노를 마치고 라이프 코치로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는 기로에 서 있다는 걸 생각해 낸 나는 그 말을 장난스럽게 꺼냈다. 칭찬과 섞인 내 유머가 먹혔는지 브라이언은 가볍게 웃었고 덕분에 팽팽했던 공기가 한결 느슨해졌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는 알베르게가 몇 없는 터라 많은 이들이 아헤스까지 걸음을 이어가던 날이었다. 브라이언도 그중에 하나였다. 4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갈 그를 배웅해 줄 생각으로 함께 길을 나섰다. 얼마 못 가 날 불러 세운 브라이언을 돌아보니 그의 신발 끈이 죄다 풀려 있었다.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아서 다시 신발을 재정비한 그가 벌떡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메고 있던 배낭에 물건이 와르르 쏟아졌다. 식사 후에 양말을 다시 갈아 신은 브라이언이 배낭을 미처 잠그지 않았던 것이었다. 방금까지 날 위로해 주던 사람이 맞나? 마흔일곱이 아니라 열일곱 살이 아니냐며 그를 트러블 메이커(Troublemaker)라고 놀렸다. 사실 트러블메이커는 손이 많이 가는 내게 잭이 부르던 별명이었는데, 혼잣말을 하며 브라이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이 가는 대로 그를 도우며 저항 없이 웃었다.
"내일 부르고스까지 갈 거지?"
"응, 거기서 봐."
"아침에 만날 거 같은데? 네 엄마랑 네가 나를 금방 따라잡을 걸?"
식사를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브라이언은 이번에도 내 소개를 대신했다. 은영은 엄마랑 함께 걷는데 둘 다 엄청 빨리 걷는 패스트 워커(Fast walker)라고. 게다가 새벽 일찍 출발하는 탓에 길에서 보기가 힘드니 지금 인사를 해두라고 말이다. 나는 그때마다 웃으며 내가 원한 속도가 아님을 해명해야 했다. 나도 제발 느긋하게 걷고 싶어!
숲길로 들어서는 길 앞에서 브라이언과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거 없이 두 팔을 벌려 상대에게 다가갔다. 서로를 들인 품 속에서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방에 들어선 나는 엄마 옆에 있는 실비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3인실에 비워져 있던 한 자리를 실비 아주머니가 차지한 것이었다. 기뻐하며 아주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날 바라보며 아주머니도 덩달아 함박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보지 못했냐고 물었다. 그 말에 나는 그제야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 너 좋아하는 프랑스 마담이 한 방에 ㅎㅎ
엄마가 보낸 메시지 끝에 있는 'ㅎㅎ'이 무척 귀여웠다.
실비 아주머니는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늘 그랬듯 나는 번역 앱으로 실비 아주머니와 대화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순례자가 다음날 부르고스로 가는 일정과 달리 아주머니는 이틀에 걸쳐 그곳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부르고스에서 순례를 마치고 집이 있는 프랑스로 갈 거라며 자신의 순례는 그곳에서 마친다고 했다. 한 방에 머물게 되었다는 기쁨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벌써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해졌다.
- 우리 다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기념으로.
실비 아주머니는 번역 앱을 켜놓은 내 스마트폰에다 대고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도 두 팔 벌려 동의했다. 우리는 알베르게 앞에 있는 작은 마당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스삐딸레로가 적극적으로 나서준 덕분에 셋 다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를 배경으로 벤치에 셋이 나란히 앉아서 맑게 갠 하늘을 닮은 미소로 찍은 사진이었다.
실비 아주머니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여전히 아주머니와 나는 서로의 언어를 모르지만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이든 전하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마음에 있으니까.
Day 11. JUN 20, 2024
Belorado → San Juan de Ortega, 23.9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