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8. 뜨리아까스뗄라 → 사리아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17km라는 짧은 거리로 사리아까지 가는 날이었기에 서두를 것이 없었다.
본래 우리의 목적지는 사리아가 아닌 바르바델로였다. 계절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순례를 시작하는 사리아를 지나쳐 숙박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길의 성지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기준으로 최소 100km를 걸어온 경우에 한하여 순례를 완주한 것으로로 인정해 준다. 그런 까닭에 100km 바로 전에 있는 큰 도시 사리아에서 순례자가 대폭 증가한다. 사람이 붐비는 것을 평소 좋아하지 않는 나는 엄마와 한가롭게 알베르게를 쓰고 싶어 조금 더 걸어 바르바델로까지 가고 싶었다. 그다음 목적지도 뽀르또마린이 아니라 곤사르까지 갈 작정이었다. 사실 지난번 까미노를 걸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다녔던 터였다.
다른 일행도 그 의견에 동의했지만 마르티나는 생각이 달랐다. 최근 며칠간 작은 마을에 머무는 것이 여간 불편했는지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큰 마을에서 머무는 것이 어떻냐고 모두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때 던은 앞서 걷던 아들 도스에게 받은 연락을 공유했다. 사리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붐비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자리에서 나 역시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을 머무는 것이 도보 여행의 피로를 푸는데 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을 함께 하길 원했다.
나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큰 마을을 다니며 여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해 봤다. 그 계획은 대부분 추천 거리를 따르는 것이기에 오히려 일정이 더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 무엇보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목표한 완주 일자를 변동할 필요 없이 성지에 닿을 수 있었다. 나는 새로 짠 계획표를 우리 가족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들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프란체스카도 새로운 계획에 납득하며 가장 마지막으로 동의를 표했다. 우리는 그렇게 사리아를 향해 가게 되었다.
뜨리아까스뗄라에서 아침 식사를 한 바에서 미국의 보스턴에서 온 부자 에밀리오와 알레한드로를 만났다. 미국에서 온 이들이 에스빠뇰(Español, 스페인 사람의 스페인어) 이름을 지닌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은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들을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브라이언과 점심을 먹으며 알게 되었는데 소개를 받은 알레한드로는 나를 바욘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가만, 문득 떠오르는 사진이 한 장이 있었다.
"이거 혹시 알레한드로 너야?"
까미노의 크고 작은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진첩을 뒤졌다. 기차가 취소되고 대신 버스를 타고 생장 피드 포르로 가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아무래도 그 사진에서 알레한드로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역시나 알레한드로가 버스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찍혀있었다.
그 이후로 순례길에서 오가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가 되었다. 게다가 에밀리오와 알레한드로 부자는 우리와 호흡이 비슷해 거의 항상 같은 마을에 머물렀다. 이번에도 사리아까지 간다고 했다.
"사리아에는 사모스를 통해 가세요? 아니면 산실로 가세요?"
"어우, 당연히 산실로 가지! 더 짧은 길로 갈 거란다!"
내 물음에 답한 에밀리오의 말에 길에 있던 모두가 웃었다. 사리아를 가는 길은 두 가지 루트가 있는데 하나는 사모사 루트, 다른 하나는 산실 루트라고 불린다.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것은 경유하는 마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모사에는 들려볼 만한 수도원이 하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민 없이 나는 산실 루트를 선택했다. 그 길이 훨씬 짧기 때문이다. 뭐, 엄마와 함께 걷는 까미노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나는 지난 까미노에서도 이 루트를 선택했다. 에밀리오 부자도 짧은 길을 선택했다니 반가웠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여기 먹을 게 천지네."
엄마가 길에서 고사리를 발견했다. 수풀이 우거져 해가 강하게 들지 않는 음지를 우리는 걷고 있었다. 철이 되면 고사리를 꺾으러 제주도에 가고 싶다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나는 고사리를 보고도 무심히 지나가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신기했다. 이들은 고사리의 존재를 정녕 모르는 것일까? 나는 뒤따라 오던 던에게 고사리를 가리키며 이걸 아는지 물었다.
"글쎄다. 이게 뭐니?"
나는 고사리의 영어 이름을 모르는 바람에 그냥 고사리라고 부르며 숲에서 자라는 아기 손을 설명했다. 이때 레슬리 부부가 다가왔다.
"나도 새로운 걸 배우고 싶구나! 우리도 같이 설명을 들어도 되겠니?"
"그럼요! 이건 고사리라고 불러요. 영어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고사리라고 해요. 생긴 게 꼭 아기 손 모양 같죠? 고사리는 딱 이럴 때만 먹을 수 있어요. 고사리가 잎이 펼쳐지기 전에 말이죠. 꺾은 고사리는 삶았다가 충분히 건조해서 먹으면 돼요. 향도 식감도 정말 좋아요."
앞에 계신 미국인 어르신들에게 신나게 설명하다가 그만 침이 고이고 말았다. 마늘에 참기름으로 볶은 고사리 무침을 상상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걸 다 꺾어갈 수도 없고 어쩐담. 나는 입맛만 다셔야 했다.
우리는 기부제로 운영되는 몬딴의 어느 카페를 들렸다. 고사리 생각에 괜스레 출출했던 나는 그 카페에 몹시 반가웠다. 이곳을 반가워한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중간에 들릴만한 곳이 없었던 터라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들어가 먹고 마시며 그 자리를 즐겼다.
"은영, 나 한국어 좀 가르쳐 줘."
알레한드로는 종종 내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며 간단한 문장이나 단어를 묻곤 했다. 의욕적인 그의 태도에 한국인인 준도 슬며시 우리 곁으로 왔다. 나는 바에 있던 과일을 가리키며 하나씩 읊어주었다. 사과, 수박, 복숭아, 호두. 알레한드로는 놀랍게도 정말 정확하게 내 발음을 베껴가며 소리 냈다. 가수가 꿈이라는 그 답게 소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뱉어내는 듯했다.
"와, 대단한데? 알레한드로, 너 제대로 한국어를 배워 봐. 이렇게 바르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은 처음 봐."
"진짜, 완전 인정!"
"에밀리오, 당신 아들 진짜 재능 있어요! 노래만 시키지 말고 한국어도 가르쳐봐요. 저 지금 진지해요."
생각해 보니, 알레한드로는 내 이름 은영도 꽤 잘 발음하는 편이었다. 에밀리오에게도 알레한드로가 한국어를 배우면 좋겠다며 당부한 채 나는 다시 한국어 수업을 이어갔다. 옆에 있던 대추야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대추야자."
"대…ㅊ…?"
아, 한국어 발음이 아무리 좋은 알레한드로에게도 네 글자 이상은 무리였나 보다. 우리는 수업은 미뤄두고 허기나 마저 달랬다.
사리아에 도착해 우리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 식사를 하러 나섰다. 식사와 함께 마실 상그리아를 시키고 사리아까지 걸어온 서로를 격려하며 건배를 했다.
"내게는 오늘이 까미노에 와서 가장 좋은 날 중에 하나였어."
던은 하루를 회상하며 말했다. 훌륭한 아침 식사, 초록의 멋진 트레일,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었던 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 도네이션 카페 그리고 함께 한 이들……. 생각해 보니 던은 그 어느 때보다 유난히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 역시 우리가 함께 걸은 산실 루트가 좋았다. 비 온 뒤 촉촉하게 젖은 녹음을 걸을 수 있었으니까.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짙게 퍼지는 흙냄새에 몸이 깨끗하게 씻겨지는 기분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나는 음가 없는 허밍을 했다.
갑자기 무당벌레 한 마리가 날아들어와 던과 내 자리 사이에 앉았다. 던은 무당벌레가 기어 올라올 수 있도록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당벌레는 던의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던은 손을 느리게 움직이며 내 손등 위에 가져다 놓았다. 무당벌레는 던에게서 내게로 천천히 자리를 옮겨왔다. 그때 던은 내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은영, 네게 행운을 건네주마."
Day 28. JUL 7, 2024
Triacastela → Sarria, 1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