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영 Oct 05. 2024

나는 이기적인 딸이야

Day 32. 리바디소 → 오 뻬드로우소

일반적으로 까미노 위에 있는 알베르게의 체크아웃 시간은 여덟 시이다. 지난밤, 에나르가 우리 일행의 침대까지 모두 같은 알베르게에 예약을 해준 덕분에 체크아웃 시간이 되도록 여유를 부렸다. 엄마와 까미노를 걸으며 이 시간까지 늦장을 부린 적이 있던가? 짧은 거리를 가는 데다가 날도 계속해서 흐릴 예정이라 걷기 좋은 날이었다.


함께 걷는 엄마 던과 아들 도스

아르수아에서 브라이언 일행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이미 한창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도스는 엄마인 던이 있는 우리 테이블로 넘어와 같이 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도스는 자연스럽게 주인에게 가서 자신의 엄마가 먹을 식사를 대신 주문했다.


"두려워마세요, 엄마.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으니까요."


나는 우리가 재회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리바디소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아르수아로 떠나기 전 도스가 던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아 온 던은 길 위에서 좀처럼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인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들만이 알아챌 수 있는 무언가 있는 걸까? 평소와 다른 편안함이 도스 곁에 있는 던에게 비쳐 보였다.


"도스, 넌 반드시 은영에게 마더 시터 비용을 내야 한다!"


던은 지난 점심 식사 자리에서 농을 던지며 도스에게 말했다. 나는 그저 엄마를 챙길 때마다 그걸 한 번 더 반복해 던을 챙겼을 뿐이었다. 다음날 어디까지 걸을지, 알베르게는 어디로 정하면 좋을지, 식사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그런 결정이 필요한 상황마다 엄마와 상의를 하고 던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도스는 멋쩍어하며 내게 고맙다고 하더니, 아르수아를 떠날 채비를 하면서 반복해 마음을 표했다.


"뭘, 네 엄마는 내게도 엄마인걸. 까미노 엄마이셔!"


그렇게 답을 한 것이 부끄러웠다. 아무렴, 진짜 자식의 빈자리를 내가 어떻게 차지할 수 있겠는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던과 도스는 서로의 배낭을 챙겼다. 그리고 그들은 오랜만에 함께 발맞추어 걸어갔다.




시작을 여유롭게 연 덕분이었을까. 엄마는 오랜만에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까 봐 마시고 싶은 걸 참아가며 걸었던 엄마였다. 나는 꽤 좋아 보이는 카페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잠시 멈춰가자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잔디밭에 놓인 테이블에 가서 자리를 잡아 배낭을 풀었다. 옆 테이블에는 에밀이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바티스트와 한창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때마침 걸어오던 에나르가 길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우리에게 헤엄치듯 인사했다. 그의 옆에는 에밀리오와 알레한드로가 있었다. 모두 오랜만에 만난 길 위의 친구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중이었다.


엄마가 마실 커피를 주문하며 나는 계산대 옆에 놓인 와인 병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와인이 무척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까미노는 겨울에 걸었던 터라 걷는 도중에도 툭하면 와인을 한 잔씩 사 마시곤 했다. 몸을 데워주는데 그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이번 까미노를 걸으며 와인을 단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왠지 서운한 걸? 나는 갈리시아의 비노 블랑꼬를 한 잔 주문했다.


"세상에! 지금 열 시 반이야, 은영.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


와인 잔을 들고 자리로 돌아온 나를 보며 마르티나가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한 마르티나였지만 그 말 한마디가 그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이기도 했다. 마르티나는 당장이라도 나를 뜯어말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나타났다. 와인으로 아침을 보내고 있던 나를 발견한 브라이언이 나와 같은 비노 블랑꼬를 한 잔 들고 옆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잔을 부딪히며 그 순간을 즐겼다.


"역시 너밖에 없어, 브라이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닿기 하루 전




오 뻬드로우소의 어느 교회


"네가 날 울렸어."


모니카는 원망하듯이 내게 말했지만 웃고 있었다. 옆에서 우리 둘을 바라보던 던의 눈에도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가장 먼저 울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순례자 미사를 챙겨서 다니고 싶어 하는 내게 모니카는 오 뻬드로우스에 위치한 어느 교회의 미사 시간을 일러주었다. 이따 자기도 갈 생각이라며 보자는 말도 덧붙였다.


교회에 도착한 나는 프란체스카와 함께 스페인어로 미사를 진행하는 본당을 갔다. 하지만, 수분이 흐른 후 도저히 안 되겠어서 프란체스카에게 양해를 구하고 영어로 미사를 하는 별관으로 옮겨갔다. 그곳에는 모니카와 던이 이미 미사에 참석해 있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는 훨씬 알아듣기가 수월했고 덕분에 한결 편안하게 자리에 임할 수 있었다. 그만큼 순례자를 향한 메시지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가슴 안쪽이 간지러웠다. 따끔하게 쑤시기도 하고 은밀하게 자라던 무언가가 팽창하고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알 도리 없는 미묘한 감정이 칭얼거리며 일어나는 걸 나는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미사의 말미에 아일랜드에서 온 순례자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자마자 이 감정은 끝내 임계점을 넘어서 버렸다.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지고 만 것이다. 닦고 닦아내도 멈추지 않아 곤란한 지경이었다.


마음이 쏟아지려는 것을 단단히 쥐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모니카도 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 눈물은 결국 그들을 걸어 넘어뜨리고 말았다. 결국 다 함께 울었고 우리는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쓸었다. 모니카와 던의 손이 나를 감싸 안으며 전하는 온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아침에 길에서 프란체스카 한 말을 복기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가 걸은 이 시간이 마치 일 년 같았는데 오늘은 마치 이제 막 걷기 시작한 기분이 들어."


늘 명랑하던 프란체스카가 울상을 지으며 뱉은 말이었다. 프란체스카도 울음을 꾹 참고 있었는데 그의 말에 울보인 내가 어김없이 먼저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역시 나는 프란체스카도 울리고 말았다.


이렇게 종종 내 눈물은 툭하면 흘러나와 피할 요령 없이 주변을 전염시켰다.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단 하루만 남겨놓은 날이었으니까. 곁에 있는 이들을 울려버리는 이 무책임한 눈물을 무한히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네가 이기적인 거 알지?"


내가 첫 번째 까미노를 준비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엄마와 통화하던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뾰족한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제 겨우 이십 대 초중반에 들어선 나는 다듬어지지 않는 채로 사람들과 관계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에서 걸핏하면 상처를 주거나 입으면서 살아갔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날 것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 배워가는 시기인 만큼 시행착오가 많았던 때였다. 경험이 부족하고 요령도 부릴 줄 몰랐기에 나는 내게 닥쳐오는 부정적인 경험을 필터링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맞던 나는 가장 가까웠던 친구와 이별을 겪고 혼란한 시기를 보냈다. 할 수 있는 것이 딱이 없었던 나는 뚜렷하게 알기 어려운 만남과 이별의 차이에 대한 고민을 주어 담으며 까미노를 갈 준비를 했다.


동시에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치고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되돌아온 것은 나를 향한 비난이었다. 네 곁을 그 친구가 떠난 이유가 너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엄마의 말에 아파하기는커녕 나는 그대로 납득해 버렸다. 아, 이런 일이 생기는 건 내가 이기적이라서 그렇구나. 나를 가장 오래 보아온 사람은 엄마이니까, 그 말이 맞는지 몰라. 그런데 엄마는 언제부터 나를 이기적인 딸이라고 생각한 거지? 이런 집구석이 꼴도 보기 싫다고 독립할 거라고 바득바득 공부하며 앞만 보고 달려갔을 때부터였나? 내가 엄마를 떠나려고 해서 엄마가 외로워진 것이니까 이기적이라는 형용사에서 피할 도리가 없구나.


그날부터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런 탓에 두 번째 까미노를 엄마와 함께 걸으며 만나는 수많은 친구들이 나를 가리켜 은영은 착한 딸이라고 말을 할 때마다 질색을 하며 숨어버리곤 했다. 착하다는 표현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니까.


"무슨 말이야! 은영, 까미노에서 네가 엄마에게 어떻게 하는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 넌 착한 사람이야."


브라이언과 밤 산책을 하며 나눈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그렇듯 브라이언은 내 칭찬을 늘어놓았고 그중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댄 근거에는 '착한(Kind)'이라는 수식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완강하게 스스로 착하지 않다고 말하는 내게 브라이언은 네가 착하지 않은 이유를 하나만이라도 대보라고 했다. 그러면 납득해 주겠노라고. 의미 없는 실랑이 속에서 내가 착하다는 것에 자신 있어하는 브라이언에게 나는 차마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엄마가 가리켜 나를 이기적인 딸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야.'


여전히 엄마는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까미노까지 온 이 마당에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만난 순례자들이 굳이 한국어를 배워서까지 엄마에게 나를 가리켜 좋은 딸이라고 말할 때도 엄마는 수긍하는 제스처를 보인적이 없었으니까. 그게 뭐 별일인가 하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내가 까미노에서 생일을 맞았던 날, 던은 엄마에게 번역 앱을 통해 한국어로 내 칭찬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던 나는 잉에게 그 사실을 전해 들으며 알게 되었다. 던이 나를 칭찬한 걸 듣고 기분이 어땠냐는 잉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엄마, 던 아주머니가 내 생일날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며? 왜 나한테 말 안 해줬어?"

"너한테도 어련히 말해줬겠거니 했지, 뭐."

"그래서 뭐라고 하셨는데?"

"은영이는 겉과 속이 같은 아이라고 했던가? 착한 딸을 둬서 자랑스럽겠다고 하더라."


엄마는 자신이 낳은 딸의 칭찬을 남 이야기하듯이 건조하게 말했다. 어떻게 내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그런 것에는 흥미도 없다는 듯 말할 수 있지? 나라면 누군가 내 딸을 그렇게 칭찬해 줄 때 정말 기쁠 것 같은데. 엄마는 내가 그런 말을 들은 것이 자랑스럽지 않은 건가?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며 앞질러 걷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서늘하게 서운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칭찬에 인색한 엄마를 잘 알면서도 오히려 조바심이 나서 엄마에게 더 잘하는 딸이 되고 싶었던 것이.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나를 잃는 방식이기도 했다.



Day 32. JUL 11, 2024

Ribadiso → O Pedrouzo, 22km

이전 04화 괜찮아, 마음껏 울어도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