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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Oct 08. 2024

두 번째 완주한 순례

Day 33. 오 뻬드로우소 →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새벽 네 시 반. 알베르게 객실 안에서 알람이 울렸다. 지난밤, 감정이 몰아쳐 늦게까지 일기를 쓰다 잠에 든 터라 침대에 더 붙어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정오에 있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의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자며 여태 얼굴을 익혀온 모두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향해 걷는 마지막 날의 아침


분명 일기예보에서는 맑은 날이라고 했는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배낭 커버를 꺼내 씌우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우비를 챙겨 입은 엄마는 내게도 어서 우비를 입으라고 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몹시 어두운 새벽이었다. 해가 뜬다고 하더라도 비구름 때문에 새벽빛을 보는 건 어려울 듯싶었다. 나는 두 어머니를 앞질러가 스마트폰의 플래시로 화살표의 방향을 비춰 확인하며 선두를 자처했다. 그러다 보니 걸음이 빠른 브라이언과 함께 걷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비가 잦아들 때 즈음, 가로등이 거리를 비추는 마을에 도착했고 브라이언과 나는 뒤처져 있던 일행이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나머지 일행을 앞서 보내고 그들을 살피며 걷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빨간 배낭을 멘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브라이언과 대화를 나눴다. 그건 그와 함께 걸을 때마다 일상처럼 스며든 일 중 하나였다. 엄마가 잘 걷고 있는지 눈으로 돌보며 나는 동시에 마음을 주고받는 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까미노 데 산띠아고 여정을 떠올리며 가장 그리워할 기억일 터였다.


"은영, 네게 세 번째 까미노도 있을 거 같아?"

"음… 글쎄, 아마 다시 12년 후?"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내 나이에 오겠구나."


첫 번째 순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던 나는 내게 두 번째 순례가 있을 거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언젠가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걸어보고 싶다는 엄마가 아니었으면 정말 이뤄지지 않을 일이었다. 엄마의 소망은 나를 12년 만에 이곳으로 데려왔다. 지금의 내 나이는 내가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아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베드로와 나이가 같은 브라이언을 만났다. 다음 세 번째 까미노를 12년 후에 찾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지금의 브라이언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네 지난 까미노 가족들은 네가 오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하는 걸 알아?"

"베드로는 내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보고 있어서 알고 있어. 아침에 출발하는데 베드로가 벌써 축하 메시지를 보내더라고. 잭과 라이자에게는 산띠아고에 도착하면 메시지를 보내려고 해."


별안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내가 우는 걸 하도 많이 본 브라이언은 당황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눈물을 흘리는 당사자인 나는 '잭'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자마자 울음이 터진 나 자신에게 놀라고 말았다. 두 번째 산띠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매 순간마다 12년 전 추억이 사정없이 몰아쳤던 것은 사실이었다. 툭하면 눈물이 고였고 그 누구보다 잭이 몹시 보고 싶었다.


"잭은 어떤 사람이야?"

"나랑 닮은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어."


잭을 떠올리며 눈물짓는 내게 브라이언이 물었다. 잭과 나는 같은 것을 보며 웃고, 같은 일에 화를 내고, 그리고 같은 감정에 아파하며 슬퍼했다. 꼭 진짜 아빠와 딸 사이처럼.


"브라이언, 너랑 걷는 동안 마치 잭과 함께 그리고 베드로와 함께 걷는 기분이었어. 산띠아고까지 함께 걷게 돼서 정말 행운이야."

"나야 말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은영."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울음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나는 잠시 멈춰 서야 했다. 몸에 무척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나뚜랄 스틱을 땅에 수직으로 꽂아 무게를 실었다. 곁에서 브라이언이 내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있어주었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걸으며




"은영, 나는 잠시 여기서 도스를 기다려야 할 것 같구나."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을 약 이십 분 거리만 남겨뒀을 무렵, 던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매일 아침마다 늦잠을 자는 에밀은 마지막 날까지 말썽을 부렸다. 지각쟁이 에밀을 기다렸다가 데리고 서둘러 오겠다며 도스와 에나르가 오 뻬드로우소의 알베르게에 남게 되었다. 그 후, 쉬어가려고 들린 바에서 그들의 모습이 보이자 우리는 안심하고 마저 걸었다. 그러나 바에서 제법 쉬는 시간이 길어진 것인지 다시 그들을 보기가 어려웠다.


던이 도스와 함께 걸어서 대성당 광장으로 가겠다고 말할 때서야 던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였다. 아까 그 바에서 잠시 기다렸으면 될 일이었는데 너무 앞만 보고 걸은 탓이었다.


"던, 우리 함께 기다려요. 혼자 기다리실 필요 없어요. 저는 당신과 같이 대성당으로 걸어가고 싶어요."


우리의 대화를 듣던 마르티나는 던을 두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으로 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한 술 떠서 말했다. 다른 이들 역시 나와 의견을 함께 했다. 사실, 뒤쳐진 일행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걸음의 속도를 항상 맞춰 걸을 수 없기에 알게 모르게 서로 간격이 늘어져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걷던 우리는 뒤처진 일행을 기다릴만한 카페를 찾아 짐을 풀기 시작했다. 그때,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따라잡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기대어 놓았던 배낭을 다시 어깨에 멨다.


도스를 다시 만난 던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잡고 있던 던의 손을 놓으며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일행의 가장 앞으로 달음질쳐 걸어갔다. 그리고 다 함께 발맞춰 걷는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제 서로 떨어지면 안 돼! 산띠아고가 코 앞이야!"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을 코 앞에 두고

한적한 길은 끝난 지 오래였다. 차가 달리는 큰 도로를 몇 번 지나고 오랜 세월이 깃든 거리로 노란 화살표는 하나가 된 우리를 안내했다. 골목 사이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의 머리를 발견했다.


들떠 있던 우리는 소리 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눈은 방금 전 발견한 대성당의 머리에 고정한 채였다. 앞에 있던 대성당을 어느새 옆에 두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걷는 방향에서 익숙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가이따 가예가 연주 소리가 분명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의 광장으로 모여드는 순례자를 축하하는 갈리시아의 소리이다.


"그때랑 똑같아. 12년 전에도 이 소리를 들으며 여기에 왔어."


나는 곁에 있던 모니카와 아밀리아에게 말했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어느새 얼굴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을 열심히 손으로 감추고 있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의 광장에 발을 들였을 때, 나를 향해 달려오는 익숙한 얼굴을 목격했다. 하루 먼저 산띠아고에 가 있겠다고 했던 에우제뇨였다. 네 엄마와 함께 이곳에 왔구나, 하며 에우제뇨는 큰 눈물로 나를 환영해 줬다. 그의 옆에는 이곳에 언제 왔는지 대니와 이삭이 밝은 얼굴로 양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리치와 몰리사는 오전 일찍 도착했다며 편안한 차림으로 광장에 서 있었다. 산띠아고에 며칠 전 도착한 준도 있었는데 피스떼라를 간다던 그는 우리를 축하해 주고 떠날 생각으로 기다렸다고 했다.


나는 함께 걸어온 이들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우리는 해를 가리며 서 있는 대성당이 내려준 그늘 아래에서 가까이에 있는 이들과 부둥켜안고 서로를 축하했다.


"내 까미노 가족이 되어줘서 고마워, 은영."


사글사글하게 건네오는 말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마르티나가 있었다. 마르티나가 우는 것을 처음 본 나는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 모습을 본 프란체스카가 다가와 우리는 한동안 눈물을 나눴다. 나이가 같은 두 어머니인 던과 엄마는 서로를 감싸 안으며 내가 있는 곳에서는 들리지 않는 크기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은영, 네가 나를 정말 많이 도와줬단다. 고맙구나."

"던,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요? 빰쁠로나 가는 길에서 봤던 그 순간이요. 그때, 사실 앞으로 당신과 쭉 함께 걷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에! 그걸 느꼈니?"

"네, 정말이에요."


종종 라이자와 겹쳐본 던과 대화를 마친 나는 엄마에게 몸을 틀었다. 엄마는 홀가분해 보였다. 엄마가 고생하는 걸 내내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순례였다. 지난 첫 번째 까미노는 몸이 무척 고된 여정이었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몹시 힘들어 때때로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 앞에서 순례자 친구들과 함께

"엄마, 그간 고생 많았어. 축하해."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나눈 것처럼 흥분 속에서 서로를 축하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 우리 모녀가 그래온 것처럼 담담하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로써, 엄마와 함께 걸은 산띠아고 순례가 마치게 되었다. 2024년 6월 10일부터 7월 12일까지 33일 동안 800km 여정의 프랑스길을 마침내 완주했다. 이것은 내게 12년 만에 이룬 두 번째 순례의 기록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성당 앞에서 다 함께 사진을 남기기로 했다. 에우제뇨와 준이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섰다. 오 뻬드로우소에서 함께 걸어온 엄마, 던, 프란체스카, 마르티나, 브라이언, 에밀, 에나르, 도스, 에밀리오, 알레한드로, 모니카, 아멜리아, 그리고 이미 이곳에 와 있었던 대니, 이삭, 리치, 몰리사까지 우리는 환호하며 사진을 찍는 에우제뇨와 준을 바라봤다.


"브라이언, 아침에 네가 나한테 한 약속 기억나?"

"그럼, 기억하지. 자 여기 내 배낭 깔고 앉아 봐."


며칠 전 브라이언은 12년 전 내가 순례를 완주했을 때 찍은 사진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산띠아고 가면 똑같은 구도와 포즈로 사진을 찍어줄게."


사진 속 나는 함께 걸었던 친구의 배낭을 깔고 앉아 있었다. 옆에는 내가 메고 온 배낭을 세워두었고 스틱을 그 위에 걸쳐 놓은 채로. 시선은 카메라가 있는 방향이 아닌 대성당을 향해 있었다.


이번에는 브라이언의 배낭을 깔아 두고 내 배낭을 옆에 세워 그 위에 나뚜랄 스틱을 걸쳐 놓았다. 브라이언과 내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보며 에밀과 엄마도 우리를 도왔다. 브라이언은 내가 마음에 들어 할 때까지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구도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브라이언의 말에 우리는 서로의 자리를 바꿨다. 나 역시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을 찍었다.


"브라이언, 고마워."


나는 영어가 아닌 브라이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때때로 브라이언에게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내 마음을 다 표현하기 어려운 말인 영어보다 한국어로 말하고 싶었기에. 그동안 그와 함께 걸으며 잭과 베드로를 떠올렸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히 다 설명이 되지 않는 감정을 느꼈다. 내게 다채로운 감정을 품게 해 준 그가 정말 고마웠다. 비록 그가 단 번에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일지라도 이번에도 그 마음을 이런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다.


(좌) 2013년 1월에 완주한 첫 번째 까미노, (우) 2024년 7월에 완주한 두 번째 까미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보타푸메이로 (좌) 2013년 1월, (우) 2024년 7월


마지막으로 열린 빅 인터내셔널 테이블에 이제 막 도착한 에밀리오, 알레한드로 부자는 저녁 순례자 미사에서 봤다며 보따 푸메이로(Bota Fumeiro,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에서 사용하는 대향로) 영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질투 난다고 성을 내던 모니카는 에밀리오가 보여주는 영상을 다시 재생하며 보았다. 우리가 참석한 정오 미사에는 보따 푸메이로를 사용하지 않았던 터라 연기를 내뿜으며 시계추처럼 본당을 가로지르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어딘가를 응시하듯 그저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엄마, 저거 보러 가고 싶어?"

"괜찮아. 뭐, 못 보면 어떻다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 싶으면 미사에 몇 번 더 가보자고 할 참이었던 나는 아서라, 하는 엄마의 말에 욕심을 내려놨다. 정작 내가 움직이는 보따 푸메이로를 보겠다는 마음을 더 쉽게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12년 전에 그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보따 푸메이로는 특정한 미사에만 사용하기에 그것이 움직이는 걸 보는 건 행운이라고 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한 날 밤에 열린 인터내셔널 테이블은 정말 거대했다. 산띠아고를 향해 가던 길에서 보지 못한 안드레아 가족도 함께 했고, 정오에 열린 미사에서 처음 소개받은 에밀의 할아버지와 어머니까지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에밀이 산띠아고에 도착하는 날에 맞춰 축하를 하러 그의 가족이 찾아온 것이었다. 게다가 다음날은 몰리사의 생일이었다. 몰리사는 아버지 리치와 함께 생일을 무시아에서 보낼 계획이었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 보기 어려울 그를 축하하기 위해 피곤함을 물리치고 순례자 친구들은 몰려들었다.


오늘이 지나면 보지 못할 이는 몰리사뿐만이 아니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최소 3박을 계획한 우리 모녀와 달리 많은 이들이 하루 이틀간 휴식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식사 자리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별의 슬픔도 당연히 자리했지만 무엇보다 너 나 할 것 없이 지난 고된 여정 끝에 완주를 달성한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그 사실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했다.


- 와이오밍 주에는 언제 올 건가요?


던은 번역 앱으로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프란체스카는 이미 길에서 여러 번 밀라노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 편을 검색해 본 적이 있었다. 영영 헤어질 거란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 우리였다.


그러나, 시간은 순례자와 다르게 쉼 없이 흘렀고 오늘을 잠재우는 밤이 찾아왔다. 당장 이른 아침부터 무시아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 리치와 몰리사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 일어난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다 일어서 그들과 허그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 후로도 같은 방식으로 작별 인사가 반복되었다. 하나 둘 자리를 뜨는 친구들이 늘어갔고 인터내셔널 테이블은 서서히 작아졌다. 이제 더 이상 같은 곳이 아닌 각자의 길을 향해 걸어가게 된 것이었다.


긴 이별의 밤

"정말 긴 이별이었어."


식당에서 나온 엄마와 나는 브라이언, 에밀과 얼마간 같이 걸었다. 브라이언은 방금까지 이어진 앞으로 각자 걸어갈 길을 응원하던 작별의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브라이언의 말처럼 긴 이별의 끝에 있었다. 우리가 같이 걷던 골목에서 이제 옆으로 돌면 엄마와 내가 머무는 호텔이 보일 테니까.


"이곳이 우리가 묵는 호텔이야."


브라이언과 에밀은 이 밤이 지나고 찾아올 아침부터 피스떼라를 향해 걸어갈 예정이었다. 엄마와 나는 그들과 매번 하던 대로 작별 인사를 했다. 거창한 헤어짐을 하도 많이 고한 덕분인지 다행히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우리 이렇게 작별 인사하고서 항상 다시 만났던 거 기억하지?"

"그럼, 우리는 금방 다시 만날 거야."

"응원해. 브라이언 그리고 에밀, 부엔 까미노!"

 


Day 33. JUL 12, 2024

O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a, 19.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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