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1. 빨라스 데 레이 → 리바디소
지난밤부터 묘하게 짜증을 내는 엄마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한 나는 거의 달음질쳐 어둠 속을 걸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생각이 깊어지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쉼 없이 걸어야 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직 문을 열지 않는 바의 빈 테이블에 배낭을 올려놓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 흐르는 이상기류를 감지한 프란체스카는 내게 다가와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나는 이 무거운 감정을 함께 교류하고 있는 당사자인 엄마와 가장 먼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엄마가 저기압인 원인은 다름 아닌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 때문이었다. 아니, 이런 이유로 여태 나한테 신경질을 냈다고? 해외에서 입맛이 달라 고생하는 거야 당연히 이해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이렇게까지 짜증을 부릴 일은 아니지 않나. 미묘한 엄마의 감정 변화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물어오던 나는 억울함을 터뜨렸다.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짜증이 나는 상황이라는 건 이해되는데 엄마가 나한테 짜증 낼 일인지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실컷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던 엄마는 항의를 하는 나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다툼의 끝에서 침묵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엄마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나는 꿋꿋이 혼자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 내게 직접적으로 느끼는 불편한 점이 있다면 남은 여정 동안 어떻게 보내면 좋겠는지 생각해 보고 알려주면 좋겠다고.
이번에도 답이 없는 엄마에게 나는 먼저 걷고 있겠노라고 말하며 이른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질주하며 걸어갔다. 눈물이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고된 마음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끝내 지쳐있었고 따끔하게 아파오던 통증을 버티던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서버렸다.
멜리데를 지나 기억 속에 있던 유칼립투스 나무가 울창하게 펼쳐지는 숲을 걸었다. 그 시절, 겨울에도 이 숲은 추운 기운 속에서 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거닐며 엄마도 나도 마음을 차분하게 풀어냈다. 공기 중에 진하게 퍼져 있던 초록의 향이 숨을 쉴 때마다 폐 안에 차오르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실개천을 건너던 던과 엄마를 불러 세워 나는 이쪽을 보라고 말했다. 두 어머니는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엄마와 나는 곁에 있는 이들을 봐서라도 상처 난 마음을 꿰매며 회복을 재촉했다.
우리는 리바디소까지 갈 계획으로 걷고 있었다. 아마 그곳까지 3km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반가운 목소리로 던을 불러 세웠는데 다름 아닌 안드레아였다. 에나르와 함께 다니던 안드레아는 레온에서 브라이언과 에밀을 만났고 그들은 그 이후 쭉 함께 걸었다고 들었다. 또한, 얼마 후 훨씬 앞서 걷던 도스가 엄마인 던을 만나기 위해 점차 걸음의 속도를 늦추며 그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내 그들의 일행으로 합류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런 소식을 종종 도스는 던에게, 브라이언은 내게 전해왔다. 피스떼라까지 가겠다며 서둘러 가던 브라이언과 에밀은 어찌 된 영문인지 엄마를 만나야 하는 도스의 느린 템포에 맞춰 걷고 있었고, 바로 지난밤에는 브라이언이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 은영, 도스가 내일 즈음이면 던을 만날 수 있을 거 같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야? 우리 내일 만날 수 있는 거야?
- 글쎄, 잘 모르겠네. 너희는 아르수아까지 갈 거지? 우리는 빨라스 데 레이에서 출발할 건데 아르수아까지는 던이나 엄마가 걷기엔 멀어서 리바디소에서 멈출 예정이거든. 거기서 아르수아는 2~3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야. 아마 우린 내일모레 아침에 확실히 볼 수 있을 거 같아.
그렇게 불확실한 말로 재회의 기쁨을 늦췄는데 길에서 안드레아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어색하게 기분이 풀어져 있던 엄마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무척 반가워하며 감정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렸다.
"여기는 우리 할머니랑 아빠야."
얼마 전부터 안드레아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까미노에 오셔서 함께 걷게 되었다고 했다. 정말 안드레아 옆에는 그들이 있었다. 족히 여든은 넘어 보이시는 안드레아의 할머니는 가녀린 다리로 아주 씩씩하게 걸으시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안드레아를 꼭 닮은 그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얼른 다 같이 서보라며 손짓하셨다. 우리가 만난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안드레아는 그 사진을 곧장 에나르에게 보냈고 사진을 받은 에나르는 안드레아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화면 너머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우리를 반기던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에나르는 자신의 위치를 찍어 안드레아에게 공유했고 안드레아는 그걸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그들은 우리가 이제 막 지나쳐 온 마을의 어느 바에서 쉬고 있던 터라 뒤에 있었다. 던은 자신이 아들을 앞질렀다고 환호하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은영, 진짜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덕분에 잘 걷고 있었지. 너희가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영상을 보내줬잖아. 기억나?"
"물론이지! 다시 한번 축하해, 은영. 생일은 어땠어?"
"진짜 잊지 못할 생일을 보냈어. 그나저나 나 그 영상 보면서 한참을 웃었잖아."
"응? 왜?"
"너네가 내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해서 얼버무리는 게 너무 웃겨서 던이랑 엄마랑 같이 보면서 엄청 웃었다니까!"
"아! 정말이지, 네 이름 너무 어려워. 그건 네가 이해해줘야 해! 일부러 그렇게 발음하는 게 아니야."
"알지, 알지. 오히려 어려운데도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고 애쓰면서 축하 노래를 불러준 덕분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안드레아."
생일이었던 날 저녁, 나는 브라이언에게 영상을 하나 받았다. 에나르, 에밀, 안드레아, 도스, 브라이언이 순서대로 서 있고 "Happy birthday to you~"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영상이었다. 이 영상의 하이라이트는 dear 다음에 들어가는 내 이름인 '은영'이었다. 외국인들에게 좀처럼 입에 착 붙지 않는 내 이름을 이 다섯은 일관되게 부정확한 발음으로 부르고 있었다. 멋쩍었는지 어색해하며 웃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 나는 그 부분이 몹시 웃겨서 여러 번 돌려보며 곁에 있던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곤 했다. 영상 속에서 이들이 발음하는 내 이름은 은영이 아니라 꼭 '어니언(Onion)' 같았다.
"리틀 어니언!"
어느 날 갑자기 프란체스카는 난데없이 나를 양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어 발음의 어니언이 내 이름 은영과 발음이 비슷하게 들린다는 거였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외국인에게는 그렇게 들릴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프란체스카는 내친김에 나를 쎄보야(Cebolla, '양파'의 스페인어), 치폴라(Cipolla, '양파'의 이탈리아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모국어가 이탈리아어인 본토 이탈리안답게 프란체스카는 치폴라에 접미사 '-ina'를 붙여 나를 '치폴리나'라고 불렀다.
나를 어니언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는 프란체스카뿐만이 아니었다. 대니와 이삭도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던 날에 나를 어니언으로 기억해 두며 최대한 그 발음을 활용해 내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혹시나 내가 기분 나빠할까 봐 나를 어니언으로 기억하는 건 비밀로 부친채. 던은 언젠가 내가 가르쳐준 한국어의 인사말인 ‘안녕’도 내 이름과 비슷하다며, "안녕, 은영, 어니언!" 하며 인사하기도 했다. 진짜 양파를 가리키며 부를 때 느껴보지 못한 귀여움이 그들이 나를 부를 때는 깃들어 있는 것 같아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름 부자에 별명 부자인데도 나는 이 애칭에 욕심이 났다.
"어니언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안드레아. 재밌잖아!"
나는 브라이언에게 받았던 그 영상을 다시 틀어서 안드레아에게 보여줬다. 안드레아는 몹시 부끄러워했지만 나를 어니언처럼 부르는 어색한 그 발음이 좋았다.
엄마와 나는 리바디소의 공립 알베르게에 먼저 도착한 프란체스카와 마르티나를 따라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이 알베르게는 지난 까미노를 걸을 당시 최고의 숙박 시설로 손꼽힌다고 들었던 곳이다. 하지만, 멜리데에서 함께 출발한 일행과 오 뻬드로우소까지 걷기로 한 터라 그냥 지나쳐야 했다.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듯 이번에는 이곳에서 머물게 되었다.
때마침 저 멀리서 맑게 웃으며 다가오는 에밀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저 없이 허그로 재회했다. 그리고 에밀은 내게 브라이언을 만났는지 물었다. 당연히 에밀과 같이 걸어오고 있을 줄 알았던 브라이언이 보이지 않아 당황한 쪽은 나였다. 에밀은 그가 걸음이 빨라 자신들보다 한참 앞서 걷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길 지나친 건가, 하며 에밀이 혼잣말을 하던 중, 에나르와 도스가 나타났다. 나는 아쉬울 세 없이 다시 만난 그들을 반기며 인사를 나눴다. 에나르는 인사를 황급히 마무리하고 에밀처럼 내게 브라이언을 만났는지 물었다. 한참 전에 만났던 안드레아도 아버지에게 나를 브라이언의 베스트 프랜드라고 소개했다. 모두가 나를 보면서 브라이언에 대해 말했다. 아직 브라이언을 보지 못했다는 말에 에나르는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우리가 서 있던 알베르게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그곳에는 브라이언이 리치, 몰리사 부녀와 함께 맥주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브라이언까지 모든 사람들과 재회하게 되었다.
"은영, 내일이 아니라 오늘 만났네? 오늘 어땠어? 어머니는 어떠셔?"
"아……. 사실, 아침부터 엄마랑 한 바탕 했어."
"정말? 우리가 좋은 타이밍에 만났네. 아직 점심 식사 전이지? 여기서 같이 식사하자."
"응. 그런데 우리 아직 체크인 전이라서."
"서두를 거 없어. 여기서 아르수아는 얼마 안 되는 거리라서 급하게 가지 않을 거야.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마치고 던, 프란체스카, 마르티나, 엄마와 함께 브라이언, 에밀, 도스, 에나르, 그리고 안드레아와 그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갔다. 떨어져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던 두 그룹이 드디어 만나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그때 브라이언과 나란히 앉아 있던 내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에밀리오와 알레한드로 부자였다. 조만간 브라이언 일행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에밀리오는 그들을 보게 되면 꼭 알려달라며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들도 우리와 한 테이블을 나눠 앉았다. 안드레아의 아버지는 모두를 향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빅 인터내셔널 테이블을 사진으로 담았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었구나."
"응, 맞아. 프란체스카가 내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싶어 했거든. 그 이후로 무척 가까워졌어."
"멋지다. 프란체스카를 언제 처음 봤지?"
"너도 알지 않아? 우리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의 알베르게에 같이 묵었던 날이잖아."
"거기가 어디지?"
"17km 거리에 푸드 트럭밖에 없는 길 끝에 있던 마을에 수영장 딸린 알베르게 말이야."
"아! 거기? 그날 밤에 네가 내 손등에 내 이름을 적어준 날?"
"맞아, 그날 거기에서 프란체스카를 처음 봤지."
그날 밤, 메세따의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기를 쓰던 내게 브라이언이 다가왔다. 일기장에 빼곡히 적힌 손글씨를 보며 브라이언은 감탄하며 말했다.
"와, 네 손글씨 정말 멋지다. 한국인들은 모두 다 너처럼 글씨를 잘 써?"
브라이언식 칭찬이었다. 나는 일기장의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이 글자 말이야. 네 이름이야, 브라이언. 한글로 쓰면 이런 모양이야."
"그렇구나! 이따가 나한테 한글로 브라이언을 써서 메시지 좀 보내주라."
나는 브라이언의 부탁에 그러겠노라 답하기 보다 일기장을 구경하던 그의 왼손을 잡아 내 쪽으로 당겼다. 그리고는 그의 손등에다가 브라이언이라고 적어주었다. 브라이언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를 기억했다. 나 역시 눈앞에 있는 그를 통해 낡은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왜 서둘러 가지 않았어?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얼른 가려고 떠난 거였잖아."
"맞아, 그랬지. 그런데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랑 함께 산띠아고에 가고 싶더라고. 그래서 얼마 전부터 천천히 걸었어."
"피스떼라에 가는 건 괜찮고?"
"응. 사실, 빠듯한데 나흘이 아니라 사흘 안에 120km를 걸어보려고. 그렇게 하면 더블린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도 문제없겠더라고. 네가 말한 대로 무시아도 꼭 걸어서 갔다가 피스떼라로 갈 테니 걱정 마."
산띠아고를 굳이 서둘러 가지 않는 이유를 들으며 나는 역시 사람을 좋아하는 브라이언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은영, 이제 기분 좀 나아졌어?"
브라이언 일행을 아르수아로 보내고 우리는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식사를 마친 프란체스카, 마르티나, 그리고 나는 같이 건조기를 쓸 생각으로 세탁실에 모여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아침에 일그러진 얼굴로 걸었던 엄마와 나를 다시 소환하며 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우리 모녀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는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보통 은영이 앞서 걸어도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잘 따라오는지 살펴보곤 하잖아. 오늘은 그렇지 않더라고, 그래서 걱정했어."
"맞아. 그리고 네 엄마가 항상 우리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데 오늘은 우리를 잘 쳐다보지도 않고 걷기만 하셔서 무슨 일이 있구나, 했지."
마르티나와 프란체스카는 번갈아가며 나를 다독였다.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오전 내내 앞질러 걸으면서 실컷 울었노라고 덕분에 한결 나아졌다고만 답했다. 아무도 내 눈물을 보지 않았으면 해서 그랬다고.
"아니야, 은영. 마음이 힘들면 언제든 우리 앞에서 울어도 돼. 그래야 나아지는 거야."
"그래.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아무런 죄가 아니니까."
아, 분명 실컷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결국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리고 눈물과 함께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자랑도 흉도 아닌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 잘못이 아닌 걸 아는데 그래도 너무 힘들어. 엄마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언어에 어려움을 겪고 체력이 부족해서 고통받는 것이 모두 다 나 때문인 거 같아서."
"그럼, 얼마나 힘드시겠어. 다른 여행도 아니고 무려 까미노야. 네 어머니의 나이에 800km를 달하는 여정을 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 무척 스트레스를 받고 계실 거야. 그렇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머니의 고통이 너 때문인 것은 아니지.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아. 아까 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서 놀랐어. 은영, 잊지 마. 네가 우리에게 미안해야 할 일은 없어. 네 기분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마."
마르티나는 특유의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아침에 냉랭한 기류를 풍기며 걷던 엄마와 나 때문에 덩달아 분위기가 가라앉은 까미노 가족에게 나는 몹시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기회를 봐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던 내게 마르티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런 일은 오늘이 처음이지 않아? 네 엄마랑 너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거 말이야."
프란체스카는 내가 엄마 때문에 운 것을 처음 본 터였다. 나 역시 그제야 프란체스카와 함께 걷기 시작하며 그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까미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정말 매일 밤 우느라 다음날 아침이면 눈을 뜨기가 어려웠는데. 그런 밤마다 나를 보살펴준 사람이 브라이언이었지. 그러고 보니 낮에 재회한 이들은 하나같이 내 눈물을 목격한 친구들이었다. 브라이언, 에밀, 에나르, 안드레아, 도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눈물이 나는 건 그런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모두 다 쏟아져 나올 때까지 마음껏 울라고 말이다.
프란체스카, 마르티나 앞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그들은 손을 포개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Day 31. JUL 10, 2024
Palas de Rei → Ribadiso, 25.2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