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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Oct 03. 2024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길

Day 30. 뽀르또마린 → 빨라스 데 레이

새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이른 아침


어김없이 어둠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 듣기 어려웠던 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숲을 걸었다. 사리아에서 새로운 순례자가 대폭 유입되면서부터 고요를 찾기 쉽지 않았다. 그룹을 지어 다니며 비트가 강한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이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까미노의 소리는 쉬이 가려지고 말았다. 순례자들이 길에 많아지는 건 환영할 일이나 길 위에서는 음악을 듣지 말라던 잭의 당부를 떠올리는 나로서는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순례자가 몇 없는 이른 아침의 적막한 공기 속을 가르는 작은 소리가 무척 반가웠다. 




아침 식사를 하루에 두 번을 하는 요즘이었다. 분명 메세따를 한참 걸을 땐 눈에 띄게 살이 쏙 빠졌는데 요새는 확실히 살이 찐 것이 느껴졌다. 아니, 근육이 찐 건가? 근수저의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어쨌거나 으레 하던 대로 두 번째 아침 식사를 하러 길에서 만난 작은 마을의 바를 들렸다. 메뉴를 살펴보다가 맨날 물리게 먹던 또스따다 또마떼 이 아쎄이떼가 아닌 야채 샌드위치를 발견했다. 노 후에보, 노 께소, 노 만떼끼야. (No huevo, no queso, no mantequilla, No는 부정 표현이며 나머지는 각각 계란과 치즈 그리고 버터를 뜻하는 스페인어이다.) 꼼꼼히 확인한 후, 주저 없이 주문을 했다. 


"세상에 또스따다 말고 다른 먹을 걸 찾았구나! 은영, 축하해!"


이 기쁜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준 마르티나가 말했다. 어떻게 까미노에서 비건식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냐며 주변 순례자들은 내가 식사를 할 때마다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그러다 목적지에 당도할 때마다 피곤한 기색도 아픈 구석도 없이 생생하게 잘 다니는 날 보며 어쩌면 은영의 비결은 비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입을 모았다. 


마르티나는 바에 닿기 전에 길에서 찍은 우리의 사진을 공유해 줬다. 던, 프란체스카, 엄마, 그리고 내가 나란히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 찍힌 나는 눈에 띄게 머리가 제법 자라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리를 묶어 봤는데 뒷 목을 덮던 머리카락을 어느 정도 시원하게 치워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 머리를 한 번 더 잘랐던 터라 결코 묶일 수 없는 길이의 숏컷이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구름 없이 맑은 하늘 아래를 걷는 날마다 머리가 묶고 싶었는데 이제야 묶이다니! 다음 날부터 걷는 날은 이제 겨우 사흘뿐이었다. 남은 사흘 동안이라도 부지런히 묶고 다녀야지. 식사를 마친 나는 머리를 다시 정리해 질끈 묶고 길을 나섰다.


빨라스 데 레이로 가는 길


뽀르또마린에서 빨라스 데 레이로 가는 길은 유난히 차도를 가로질러 갈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일행을 앞질러가 먼저 건넌 후 던과 엄마가 잘 건너오는지 살폈다. 빨라스 데 레이의 중심에 닿았을 때는 수많은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구간이 나왔다. 바로 어제 뽀르또마린을 도착할 무렵에도 비탈길 아래로 걸어내려 가야 하는 구간이 있었다. 두 어머니 사이에 있던 내게 던은 엄마를 챙겨서 내려가라며, 엄마는 던을 챙겨서 내려오라고 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에 우리를 지켜보던 콜롬비아에서 온 순례자가 선뜻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 덕분에 던도 엄마도 무사히 그 언덕진 길을 내려올 수 있었다. 


그때 유난히 힘들어했던 던이 생각나 나는 엄마와 계단을 내려간 후에 뒤따라 오는 던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손을 내밀기보다 던이 마지막 계단을 밟을 때까지 유심히 살펴보는 걸로 임무를 수행했다. 던이 점차 내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은영, 넌 정말 좋은 아이구나."




저녁 식사를 할 무렵, 프란체스카는 내게 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엄마와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있는 뽈뻬리아(Pulpería, 스페인의 문어 요리를 파는 가게)에 갈 생각이라고 했다. 그 얘기에 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같이 가자고 청했다. 마르티나는 방금 전 다른 순례자들과 섞여 택시를 타고 빨라스 데 레이보다 앞서 있는 마을 멜리데로 간 터였다. 


갈리시아에서는 갖은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멜리데는 문어 요리가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30km 이상을 걷는 것을 어려워하는 우리 일행은 그 요리를 먹기 위해 짧은 거리로 나눠 걸어 순례 일정을 늘려가면서까지 멜리데를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멜리데는 다음날 오전에 닿을 일정이었다. 오전에 문어를 먹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며 멜리데에서 별미를 즐기는 일은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르티나는 빨라스 데 레이에 머무는 순례자들 중 함께 멜리데의 뽈뻬리아에 갈 사람들을 모아 택시를 타고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지난밤, 그 이야기를 프란체스카에서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또다시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멜리데에서 하룻밤을 머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어야 했나, 하는 이상한 책임감에 휩싸였다. 까미노를 시작할 때는 그저 엄마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에 엄마를 우선순위에 두고 친구가 생기건 말건 우리 둘의 일정만 고려했다. 하지만, 던과 가까워지고 프란체스카를 만나며 모두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요즘이었다. 왜 자꾸 나는 모두가 만족하는 길을 가고 싶어 하는 걸까? 그것이 꼭 내 의무가 아님을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불편해졌다.


"그런 부담 갖지 마, 은영."


매일 밤마다 우리 가족을 대표해서 나와 다음 일정을 논의하는 프란체스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의견을 같이하는 선택을 하리란 쉽지 않으니까. 


"우리가 생각한 최선의 선택에 누군가 동의할 수 없다면 그는 자신만의 답을 내릴 거야. 어쩔 수 없어."


프란체스카와 나의 닮은 점은 곁에 있는 이들 모두를 잘 돌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프란체스카가 내 마음을 읽고 질 필요 없는 의무나 책임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꼭 그걸 다른 이의 입으로 들어야만 그것에서 해방되곤 했다. 


맞아. 이건 내가 모두에게 좋은 답을 제시하지 못한 탓이 아니야. 내가 그럴 의무도 없고. 그런데 왜 자꾸 스스로 책임을 물며 괴롭게 했을까? 일상에서도 어렵다고 느끼는 점을 까미노에서도 발견하며 나라는 사람을 배워갔다.


까미노 위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

마르티나를 제외한 던, 프란체스카, 엄마와 나는 우리만의 저녁 식사 시간을 보냈다. 비건인지라 문어를 먹지 않으면서도 엄마가 갈리시아의 문어는 꼭 맛보았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으로 찾은 뽈뻬리아였다. 혼자 먹기엔 양이 많을 것 같았는데 던과 프란체스카가 함께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뭐 마실까? 상그리아 어때, 엄마?"


던도 우리처럼 상그리아를 주문했다. 프란체스카는 맥주를 마셔야겠다고 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우리는 술이 가득 채워진 잔을 테이블 중앙에 높게 가져와 들어 서로의 잔에 부딪혔다. 


"한국어로 어떻게 말한다고 했지?"

"건배요! 건배!"


시원하게 외친 건배 소리처럼 입을 타고 들어온 상그리아는 속을 개운하게 씻어주었다.



Day 30. JUL 9, 2024

Portomarín → Palas de Rei, 25.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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