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10. 바르셀로나
웬일로 아침을 늦게 먹자며 엄마가 떼를 쓰듯 말했다. 언제든 새벽부터 일어나서 사람을 못살게 굴던 엄마인데 해외여행이 길어지니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야 했는데도 나는 나만큼 여행을 즐기지도 않고 나처럼 이곳을 좋아하지도 않는 엄마의 등을 떠밀 듯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산따 까떼리나 시장과 보께리아 시장을 구경하며 오전을 가득 보내고 오후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있는 친구 문이 추천해 준 대로 기차를 타고 몽가뜨 바다로 향했다.
내가 이번 여행을 하며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엄마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엄마를 위해 떠나는 여행지를 까미노로 선택한 것은 부적절했다. 엄마를 위해서라면 그저 바다가 있는 곳이면 그만이었다. 일상에서 조금만 더 엄마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는 것을 먼 곳에서 긴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은 아닌가 싶다.
엄마를 향한 책임감과 죄책감이 우리를 까미노로 오게 했다. 만약 그것이 아닌 사랑과 고마움이 앞섰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엄마가 좋아하는 바다를 누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시원한 생맥주를 마음껏 마시고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시간으로 '우리'의 여행을 계획했을 터이다.
나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 나를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기만 했던 나 자신에 대해 말이다. 나는 여태껏 엄마를 고생시킨 딸이라는 불명예를 스스로 지고 있었다. 그러니 엄마가 작게나마 내비친 소망을 죄다 들어주고 싶어 혈안이 되어있었다. 까미노는 그중 하나였다. 나는 이 여정이 엄마에게 고된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뭐든 갚아주고 싶은 심정에 엄마를 데리고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그게 아니라 엄마가 나와 동생들을 키우며 한평생 고생한 것에 대해 숭고한 마음이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 자신에게도 조금은 너그럽게 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겪는 고된 상황이 꼭 나로 비롯되지 않음을 진작에 알 수 있었을 테니까.
비치타월을 챙겨 오지 않아, 모래사장에 깔고 앉을 천을 샀다. 그리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맥주 두 캔을 사서 목을 축였다. 엄마가 매번 시키는 그란데 사이즈는 아니지만 더위를 제법 쫓을 만했다. 우리는 천 위에 나란히 앉아서 찰랑이는 소리가 들리도록 맥주를 부딪혔다.
"내가 언제 다시 지중해를 와 보겠나. 어서 가서 놀아라. 엄마가 사진 찍어 줄게."
이제 막 맥주를 몇 모금 마셨을 때였다. 엄마는 바다의 푸른색을 닮은 수영복을 입은 내게 어서 가서 마음껏 즐기라며 재촉했다. 여름에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는 시원한 색감의 수영복을 챙겼지만 항상 혼자 놀러 다니는 바람에 변변한 사진 하나를 건질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여행 메이트로 함께한 엄마는 그런 마음을 알아본 것인 양 자처해서 내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피부로 느낀 바다는 보기와 다르게 무척 힘이 좋았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그냥 두지를 않고 기필코 넘어뜨리겠다는 기세로 파도를 몰고 와 내 몸에 던지고 말았다. 그 탓에 나는 몇 걸음 딛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바다는 중심을 잃은 나를 한가운데로 데려갈 작정이었다. 수영을 할 줄 몰라 겁이 났지만 엄마가 곁에 있어서 괜찮았다. 엄마 역시 수영을 못하는 걸 알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바다에 파묻힐 때마다 엄마가 있는 곳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며 나를 지배했던 여러 감정을 바다에 씻어 보내려 애를 썼다. 엄마가 여행을 하는 내내 아쉬움 하나 없이 만족하길 바라는 욕심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개입하는 일에는 좀처럼 욕망을 꺼뜨리지 못했다. 이건 엄마의 어떤 반응이 내게 영향을 주기보다 스스로 내가 엄마를 위해 마땅히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주문을 건 탓이었다.
게다가 엄마의 반응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전전긍긍하며 나는 자신을 못살게 굴고 엄마를 닦달했다. 방금 먹은 음식은 먹을 만했어? 간밤에 잠은 잘 잤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어떻게 안 좋은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엄마가 그러고 있으니까 몸이 쑤시는 거지! 엄마는 사사건건 물어대는 내 질문과 도가 지나친 잔소리를 지겨워했다. 우리가 매번 감정적으로 부딪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비단 여행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일상에서도 걸핏하면 엄마는 짜증을 내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가 품은 날 선 감정의 원인이 내게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 엄마의 마음이 긍정적인 쪽으로 옮겨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노력했다.
오로지 한 대상을 향한 인정 욕구는 24시간 내내 엄마와 붙어있는 여행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간밤에 잠자리는 편안했고, 음식이 입에 맞았으며, 날씨는 즐길 만큼 선선했다고 엄마가 평을 해줘야만 내 마음이 잔잔해질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나에게 좋은 여행이란 엄마가 만족스러워하는 여행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엄마의 인정만으로 이 욕구가 온전히 채워질 수 있을까? 실은 엄마가 아무리 애썼다고 나를 다독여 준들 나 자신이 먼저 스스로 수고한 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닐까? 엄마가 내게 건넨 긍정의 말은 저장되지 않고 날아가버리는지도 모르겠다. 표현에 서툰 엄마이지만 가슴에 품은 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진 않았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해준 무수한 칭찬을 죄다 잊어버리고 산 이는 나 자신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까미노를 찾았던 12년 전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집을 떠나온 여정이 사실은 집을 향한 여정이었음을 알았다. 이번 두 번째 순례에서 엄마와 걷는 이 여정을 비유적으로 집과 함께 걷는 여정이라고 생각했으나, 까미노를 마무리할 때 즈음 엄마라는 존재는 내게 더이상 집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한때는 집이었던 그저 '과거'가 된 고향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지금'의 나를 위한 집이 필요함을 알았다. 동시에 그 집이 다름 아닌 나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런 태도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 자신이 집이라는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모래에 바다의 물방울로 자국을 만들며 나는 엄마를 향해 걸어갔다. 엄마는 자랑하듯 내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의 나는 한없이 즐거워 보였다. 엄마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지중해를 보러 올 일은 앞으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Day 33+10. JUL 22, 2024
Barcelo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