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8. 리스본
리스본에 오겠다고 마음먹은 후, 몇 해 전에 읽은 임경선의 『다정한 구원』을 줄곧 떠올렸다. 그 산문집은 저자가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와 함께 지냈던 리스본에 다시 돌아와 추억을 찾아가는 내용이 담겨있다. 두 분을 하늘로 떠나보낸 저자는 대신 자신의 조그마한 딸과 함께 리스본을 찾는다. 그리고 리스본을 떠날 때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와 함께 이곳을 오라고.
"가만히 있으면 뭐 하니, 여기까지 왔는데!"
사서 고생하는 딸의 여행 스타일에 맞춰 따라다니느라 지쳤을 텐데 숙소에서 마냥 가만히 있고 싶어 하지 않는 엄마였다. 까미노를 걸었던 초창기를 생각하면 엄마는 여러모로 많이 달라졌다. 침대를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엄마는 나갈 채비를 하겠다며 벌떡 일어섰다. 그런 엄마가 반가웠다. 원한다면 편히 쉬는 것도 좋지만 동시에 이왕이면 엄마가 내 취향을 좋아해 주길 바라는 욕심이 일곤 했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점은 목적지를 내 취향의 장소로 설정하더라도 그곳까지 가는 경로에는 엄마의 취향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엄마는 거리를 거닐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구경해 보자며 훑고 다녔다. 덕분에 중고의류상점에서 5유로, 7유로짜리의 저렴한 옷을 살 수 있었고 젤라떼리아에서 엄마는 컵으로 나는 콘으로 젤라또를 하나씩 손에 쥐며 더위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내가 골라준 맛으로 젤라또를 먹는 엄마를 보며 조금 먼 미래를 그려보았다. 한국에 돌아가 엄마가 일상을 보내다가 문득 리스본을 떠올리며 그곳이 참 좋았다고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리스본에 온 셋째 날, 나는 페루난두 페소아가 마지막 생을 보냈다고 알려진 집으로 엄마와 함께 향했다. 이제 그곳은 페소아의 모든 것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우리는 페소아의 시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책들을 모아둔 어느 전시관에 닿았다. 거기서 한국어로 번역된 『양치는 목동』이라는 시집을 발견했다. 페소아의 헤테로님인 알베르또 까에이로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시집이 바로 『양치는 목동』이다. 이미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절판되는 바람에 이 시집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나 열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중에 뭘 읽을까?"
오랜만에 만난 모국의 활자를 반기며 나란히 앉은 엄마와 나 사이에 시집을 두었다. 제목 없이 숫자로 이름 메겨진 시들 사이에서 어떤 시에 목소리를 빌려줄까 고민하다가 '우리'를 닮은 숫자 2를 떠올렸고 나는 시집을 펼쳐 들었다.
(...) 생각한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이란 생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그것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것……
내겐 철학이란 없다. 단지 느낌이 있을 뿐……
내가 자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자연을 사랑하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을 사랑하는지,
왜 사랑하는지,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한 순수함이며
유일한 순수함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 알베르또 까에이로, 『양치는 목동』 중에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마렴, 은영."
까미노를 떠날 무렵, 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내 말에 브라이언도 비슷한 말을 했다. 까미노가 가르쳐 준 것에 귀를 기울이라며 말이다. 그들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이 시가 내게 찾아온 까닭을 알고 싶었다.
- I know not what tomorrow will bring.(내일이 무엇을 가져올지 나는 모른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마지막에 숨을 거두기 전 쓴 문장을 바라보며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페소아를 그리고 앞서 읽은 시를 만나기 위해 리스본에 온 것이지 않을까, 하며 마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를 썼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자주 찾았다던 카페 A Brasileria의 앞에는 페소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엄마는 거기서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내게 말했다.
"영아, 그때 그 아가씨인가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가 까미노에서 마지막으로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인 순례자였다.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그를 불러 세웠다.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순례를 마치고 포르투를 거쳐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단 하루밖에 보지 못한 사이였는데도 그가 몹시 반가웠다. 그만큼 까미노가 그리웠던 것이 분명했다.
리스본에는 언제 왔는지, 언제까지 있을 건지, 한국에는 언제 돌아가는지 나는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이름은 끝까지 묻지 않았다. 이름을 모르는 이와 헤어지는 것이 이름을 아는 이와 헤어지는 것보다 마음이 덜 아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리 한 복판에 서서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서로의 갈길을 향해 찢어졌다. 나는 가던 길을 되돌아보며 점차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우리가 이번 여정에서 만난 마지막 순례자였다.
Day 33+8. JUL 20, 2024
Lisb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