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4. 피스떼라 →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 포르투
일기를 쓰고 잠에 들 때가 새벽 두 시였다. 그럼에도 일출이 보고 싶어 알람을 맞춰두었다. 나는 피곤함에 뒤척이다가 사다리를 밟으며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언제 깼는지 엄마는 두 눈을 꿈벅거리며 나와 눈을 맞추었다. 일출을 보러 가자는 말에 엄마는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벌떡 일어났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곳은 걸어서 수분이면 금세 닿을 정도로 알베르게와 가까웠다. 분명 구름이 많이 낄 거라고 했는데 막상 나가보니 일출을 보는데 방해되지 않을 날씨였다. 불어오는 바람처럼 창백했던 하늘은 점차 붉게 물들었다. 살갗에 닿는 바람은 온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생생하게 눈으로 확인할 때가 바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목격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엄마와 나는 시간이 지나가는 모양을 면밀하게 눈으로 담았다. 태양이 머리를 내밀며 하늘 위로 떠오르는 순간을 말이다. 반가운 태양을 밝게 웃으며 맞이하고 싶었는데 얼굴은 어쩔 도리 없이 찌푸려졌다. 못난 얼굴로 태양을 마주 보며 그 동그란 모습이 온전히 하늘에 자리 잡을 때까지 바라봤다. 말 그대로 황홀한 대서양의 일출이었다. 보고 있는 일출의 멋진 이 순간을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낄 정도였으니까.
"뭘 그렇게까지 신경 써준다니."
브라이언은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의 아침 식사에 엄마와 나를 초대했다. 말은 퉁명스럽게 내뱉었지만 엄마는 나를 따라 브라이언이 있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아침 식사를 계산하겠다고 했지만 브라이언이 이에 한사코 반대했다. 브라이언은 수일 후에 유럽을 떠날 한국인 모녀에게 마지막으로 마음을 베풀고 싶어 했다. 브라이언의 주장에 우리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대신 포크와 나이프를 집었다.
"곧 한국에 돌아갈 텐데 기분이 어때?"
"엄마는 몸이 많이 고되셨는지 당장 돌아가고 싶어 하셔. 나는 이상하게 집에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
수 번의 장기 여행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경험한 내게 처음으로 든 감정이었다. 여행 중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서도 나는 항상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때와 사뭇 달랐다. 여행이라는 시간에 충실히 임하는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미련 없이 매번 여행지를 후련하게 떠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은영, 까미노가 네가 무언가를 준 게 아닐까?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네 삶도 그냥 내버려 둬 봐."
돌아가야 할 집이 꼭 한국에 있는 그곳이 아닌 것 같았다. 돌아가지 않아도 충분한 이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마치 꼭 나 자신이 집 그 자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머문다기보다 어디든 발이 닿는 곳마다 집이란 공간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과거에도 종종 그랬던 경험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게 되면 나는 꽃을 사거나 식탁보 같은 것을 샀다. 숙소를 마치 집처럼 여기며 그곳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 어디에 머물든 그곳을 집처럼 여기면 여행이 생활로 바뀌는 듯했다. 이처럼 산다는 감각이 꼭 한국에만 유효한 것이 아님을, 집을 어디든 둘 수 있다는 것을 까미노에 돌아와 상기하게 되었다.
"브라이언, 나 심장이 엄청 뛰는 거 같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브라이언은 우리 모녀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탈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대서양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겠다며 바닷가에 간 후였다. 브라이언과 둘만 남았던 나는 다가오는 이별에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자신을 따라 심호흡을 하라며 일러주었다. 나는 그의 오른팔을 잡으며 호흡을 따라 했다. 브라이언의 이 다정함에 나는 그만 눈물이 났다.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평소에 내가 울던 걸 생각하면 아주 조금만 울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와 마지막으로 허그를 나누고 버스에 올라탔다.
엄마는 앞자리에 앉길 원했고 나도 덩달아 출입구 바로 앞에 앉게 되었다. 브라이언은 여전히 정류장에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브라이언의 얼굴이 꼭 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울 때마다 울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며, 자신은 울지 못해서 문제라고 했던 그였다. 그의 눈에 눈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데도 브라이언은 분명 우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브라이언! 나 질문이 하나 있어."
"응? 뭔데?"
"나 이상하게 다른 친구들이랑 다르게 너랑 대화할 때 영어가 가장 잘 들리고 명확하게 이해되더라고. 그거 일부러 네가 천천히 말해준 거야?"
"글쎄,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아마 내 억양 때문이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랬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좋아. 넌 정말 좋은 친구야."
"나도 마찬가지야. 까미노에서 널 알게 된 건 내게 정말 큰 행운이야."
우리는 버스의 안팎으로 오가는 짧은 대화로 마음을 마저 나눴다. 그리고 이제 정말 헤어질 때가 찾아왔다. 나는 브라이언에게 매번 건넸던 인사로 마지막을 고했다.
"아스따 루에고!"
"아스따 루에고!"
브라이언도 내게 같은 인사를 전했다.
Day 33+4. JUL 16, 2024
Fisterra → Santiago de Compostela → Por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