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94. 서울
산띠아고를 떠나온 지 벌써 세 달이 흘렀네요. 에우제뇨, 믿어지시나요?
저는 유럽으로 여행을 가기 전에 집 현관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바꿨어요.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는 무심코 바꾸기 전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두 달이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비밀번호를 당연히 잊어버렸을 거라 생각했는데 몸이 그걸 기억하는 바람에 무척 놀랐거든요. 그런데 어째서 이 짧은 두 달 사이 스스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까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는 엄마와 유럽에서 남은 여행을 마저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오로지 이번 까미노를 추억하며 기록하는 시간으로 보냈어요. 글을 쓰다 보니 산띠아고 순례를 한 번 더 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들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과거라는 시간에 머무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온 마음을 다해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사랑할 수 있도록 스스로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습니다. 에우제뇨, 당신은 우리의 까미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저는 여전히 당신이 제게 한 질문에 대해 생각합니다. 산띠아고에 도착해서 당신을 만나면 그 답을 들려주겠다고 해놓고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도 느끼고요. 프란체스카에게 당신의 주소를 물어봤어요. 꼭 그 책임만이 당신에게 글을 띄우는데 작용한 것은 아니에요. 제게 그런 질문을 한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 큽니다. 길에서 엄마와 제 사진을 찍어주시던 마음에도 항상 보답을 하고 싶었고요. 제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는 그림이 부디 당신의 마음에 들기 바라요.
우리가 사리아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날, 당신은 제게 물었죠. 이 여정에서 제가 얻은 긍정적인 경험이 무엇이냐고 말이에요. 제가 이번 까미노를 걸으며 배운 것은 다름 아닌 그냥 흘러가게 두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여태 제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것들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편이었거든요. 마음보다 생각을 앞세워 살다 보니 소중한 것보다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때가 많았어요. 어떤 존재로서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명제 안에 갇혀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진짜 원하는 것을 놓친 적이 더러 있었어요. 모두 다 생각이 많았던 탓이에요. 그러다 보니 다치는 쪽은 늘 감정이었고요.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지금은 생각하기보다 그냥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싶어요. 마치 까미노가 우리의 여정을 산띠아고에 닿게 한 것처럼 마음이 가는 대로 둔다면 언젠가 저란 사람도 제게 든 여러 감정을 무한히 아껴주며 키워나갈 장소를 찾을 수 있겠지요. 지금은 단지 적절한 때와 장소를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이렇게 배회하는 마음의 이유를 명확하게 찾아내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생각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보다 다정하게 저를 사랑하기로 했어요. 알 수 없는 마음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있도록요.
당신은 제 나이를 기억하나요? 제가 까미노에서 생일을 보내던 날 저녁 식사 자리에도 당신이 있었죠. 그날 저는 서른다섯이 되었어요. 예전이었다면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이 되었다고 말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한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태어나는 그 순간을 한 살로 이야기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는 지난해 여름부터 당신이 사는 이탈리아처럼 태어나고 1년이 지났을 때 한 살이라고 부르기로 제도를 바꾸게 되었답니다. 그런 덕분에 여름에 태어난 저는 본의 아니게 서른다섯이 되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삶을 대하는 마음이 의연해지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나이를 더디게 먹는 이 2년 동안 무척 안달이 났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을 돌이켜보고 까미노를 위해 유럽에서 보낸 2달의 시간은 진정으로 서른다섯이 되기 위해 반드시 보내야만 했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서른다섯이 되어 스스로 인식해 본 저란 사람은 1년 만에 서른다섯이 되었다면 오히려 무척 아쉬웠겠다고 생각했어요. 겨우 1년 만에 서른다섯이 될 수 없었던 만큼 나이를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성장의 척도가 되는지 알게 된 것이죠. 1년 전이 아니라 이제야 서른다섯이 된 제가 좋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앞으로 살아갈 저란 사람이 기대가 됩니다. 마음이 어려울 때마다 도망치며 울다 지쳐버렸던 나를 보듬어주는 집이 되고 싶어요. 까미노를 함께 걸었던 엄마도 해줄 수 없는 역할을 스스로 해보려고 합니다. 그저 나라는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이야기해 주는 첫 번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에요.
혹시 잉을 기억해요? 밴쿠버에서 온 중국인 순례자 잉을 말이에요. 최근 잉은 일본에 있는 구마노 고도를 완주했어요.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다녀온 순례자가 그곳을 걸으면 이중 순례자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잉은 거기서 받은 증명서를 찍은 사진을 제게 보내줬어요. 마치 제 일처럼 기쁘고 감격스러웠어요. 지금 잉은 중국의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밴쿠버에 돌아가기 전에 서울을 들릴 수 있을지 고민 중이고요. 저는 잉이 꼭 서울을 들려줬으면 합니다. 제가 좋아한 잉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저는 지금도 우리의 까미노가 환영 같아서 그곳을 함께 걸은 이를 만나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편지와 함께 보내는 두 장의 그림엽서는 모두 다 제가 그린 거예요.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거든요. 12년 전에 지난 첫 번째 까미노를 걸으며 찍은 사진에 이번 여행의 기억을 덧붙여 콜라주로 그린 그림이에요. 아무래도 첫 번째 까미노의 기억이 늘 바탕에 깔린 채로 두 번째 까미노를 걸었던 터라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제가 있는 이곳은 이제 서늘한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돌아와서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것에 조바심이 났어요. 시간이 가는 만큼 내가 걸었던 그곳과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에요.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을 두고 온 듯 재회할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서글펐습니다.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는 관계가 이런 것일까요?
한국에는 절기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는 그걸 24개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그 덕분에 사계절보다 더 촘촘하게 계절을 가늠할 수 있답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와 그간 제가 부재했던 한국의 여름부터 밀린 편지를 읽는 시간을 보냈어요. 입추에 대서의 편지를 읽고, 처서에 입추의 편지를 읽으며, 계절이 떠나는 것을 붙잡았던 겁니다. 그러면 마치 까미노에서 보낸 여름을 붙잡을 수 있다는 착각이 들었거든요. 산띠아고로 가던 우리의 여정은 끝났지만 여름은 끝이 나질 않길 바랐어요.
사실, 올해 한국의 여름은 무척 길었습니다. 더위는 가는 듯 다시 돌아왔으니까요. 더위에 어려움을 겪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우리 곁으로 와 기웃거리는 여름을 이기적이게 좋아했어요. 누군가 이런 저를 보며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이 저라서요.
그러나,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고 이별을 더 이상 유예하지 말라며 말을 건네더군요. 어제 오후에 저는 기꺼이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집에 마련한 작은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한동안 집에 없었다는 핑계로 여름 내내 방치한 터라 온갖 잡초가 점령해 버린 것을 돌봐주기 위해서였죠. 그때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을 피운 이름 모를 풀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핀 그 무해한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마치 이번 여름이 건네준 마지막 선물 같더군요. 이제 마지못해 여름을 떠나보낼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당신도 저처럼 까미노가 여러 번이라고 했지요? 그래서인지 당신을 언젠가 까미노에서 다시 만날 것만 같아 기대가 됩니다. 언제나 당신의 길이 밝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전해요. 그럼 짧은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긴 편지를 그만 줄이도록 할게요. 늘 고마웠어요, 에우제뇨.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당신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부엔 까미노!
한국인 순례자 은영으로부터
Day 33+94. OCT 14, 2024
from Seoul to Ita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