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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Aug 09. 2020

내 안의 파이트 클럽

희망과 자유 사이에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어느 쪽일까

젬마, 내가 지난해 갭이어를 시작하며 본 영화가 있었어. 바로, 파이트 클럽이야. 이미 너무 유명한 영화이지? 그런 영화를 내가 개봉한 지 수년이 되어서야 그리고 그 시기가 갭이어를 시작할 때 처음 보았다는 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놀라운 것 같아. 

파이트 클럽은 값비싼 가구들로 자신의 집을 채워나가지만 공허함을 느끼던 잭이 본능대로 움직이는 테일러를 만나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여 함께 세상에 저항하는 이야기의 영화야.(다음 영화 인용) 단순히 보면 액션 영화 혹은 반전 영화로 느껴질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이유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잭과 같은 입장에서 살아가면서 내면의 테일러와 대립하는 순간을 살아가며 맞닥뜨리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 


희망을 버리면 자유를 얻게 돼


이 대사는 영화를 보며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대사가 바로 이거야.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었어. 잭은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이야. 이번 달 월급을 받아 돈을 조금 더 모으면 집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가구를 하나 더 들일 수 있고 오늘보다는 내일의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살아가. 그에 반해 테일러는 그때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 그에게는 오늘 열심히 일을 해서 내일이면 통장으로 들어올 돈으로 살 수 있는 좋은 가구 따위는 필요 없었어.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뿐이었지. 이 두 인물이 대립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마침내 내가 희망과 자유 사이에 놓여있었음을 깨달았어. 잭처럼 희망을 품고 사는 나는 나의 일상을 지키면서도 테일러가 누리는 자유를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이러니 내가 나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갭이어를 시작하는 이 시기에 이 영화를 본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어? 자유를 담보로 살며 일상을 견뎌내고 그렇게 월급이 쌓일 때마다 위안을 얻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지. '이렇게만 조금만 더.. 내일이면 곧 나아질 거야.' 하는 마음으로 말이야. 예전에도 네게 말했다시피 내가 갭이어를 선택한 것은 그리 대단한 이유가 없었어. 그저 사무치게 그리웠던 내 자유를 다시 찾아보고 싶었던 거야. 왜냐면 테일러처럼 자유가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라 믿었거든. 그래서 모든 것을 멈추고 다시 방랑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떠나고야 말았어. 우선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보냈던 지난날이 어쩐지 억울해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제주살이를 시작했단다. 그러다 언젠가 나도 모르게 버킷 리스트에 적어 놓았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훌쩍 떠났고 육로로 북극해에 닿아 있는 무르만스크까지 이동해 극야를 경험하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유럽 대륙을 횡단했지. 또 여름은 여름답게 보내야 한다며 지중해의 몰타라는 작은 섬나라를 찾아가 뜨거운 나날을 보내며 살았어. 섬나라의 풍경이 지겨울 즈음에는 마치 운명에 이끌린 듯 튀니지, 이스라엘 그리고 터키로 넘어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중동의 문화를 마음껏 즐겼지. 이렇게 정처 없이 자유를 쫓으며 그때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며 1년 간의 갭이어를 보냈어. 역시나 다시 생각해보아도 시원시원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테일러의 자유가 내가 바라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거든.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의 그림 @Irkutsk, Russia

그런데 있지, 사람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나만 생각해보고 싶어서 자유를 찾아 떠났던 여행 중 그리운 일상이 하나 둘 스멀스멀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둔 나의 집이, 내 주변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고민을 나누던 사람들이, 단골 우동집의 소주 한 잔이, 지겨웠던 출퇴근길의 모습마저 그리웠단다. 그리고 이따금씩 생각했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이번 여행에서 느낀 이 감정들을 내가 좋아하는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을 살아보아야겠다.'라고 희망을 떠올리며 가슴 두근거렸지. '일상이란 것이 이토록 그리워 사무칠 수 있구나.' 자유를 쫓던 여행 중 생전 처음 느껴 본 감정이었어. 희망이 있기에 자유가 애틋해지고 자유가 있기에 희망이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는 걸까?

그래서 다시 이렇게 돌아왔단다. 내가 나를 나답게 하는 나의 일상으로. 갭이어를 보낸 전처럼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석이 참 많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나의 일상을 조금 더 아끼게 되었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미래의 희망을 쌓아 올리며 살고 있어. 역시 자유를 영위할 수 있는 다음을 기약하면서 말이야.

젬마, 파이트 클럽 영화의 엔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지? 영화에서 잭은 테일러를 죽여. 또 스스로 테일러가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아챘고. 단순히 희망만 쫓던 과거의 잭은 더 이상 없는 거지. 결국 그 자유를 상징하는 테일러를 죽였지만 그건 단순히 죽였다고만 볼 순 없어. 오히려 그에게 자유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인지한 거야. 또 그 자유를 자신이 미치도록 염원했다는 것도 깨달았고. 그 자유를 바로 보며 잭은 희망도 자유도 그 어느 것 하나에 치우치치 않고 그를 가장 그 답게 할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거라 나는 믿어. 

과연 나에게 나를 나답게 하는 건 어느 쪽에 무게가 있을까? 희망일까, 자유일까? 꼭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쳐져 답을 할 이유가 있을까? 

젬마, 너는 어느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니? 희망이든 자유이든 또 그 사이 어디 즈음이든 그 끝에 우리가 같은 곳에 서 있지 않더라도 너를 너답게 하는 그 길을 언제나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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