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에 관하여
꿈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어린 시절, 꿈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실 그 당시 꿈을 물어본다는 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냐 물어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꿈에 관한 질문을 들을 때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저의 초등학생 시절 꿈은 ‘의사’였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의 인정도 받는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다양한 인물의 위인전을 읽었습니다.
의사라는 꿈을 꾸게 된 것도 수많은 위인 중 한 명이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치료’라고 생각했고, 치료를 하려면 의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수했습니다.
고학년이 될수록 ‘의사’라는 꿈을 갖는다는 것이 헛된 생각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먼저 학업성적이 좋아야 했습니다.
거기서부터 합격선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학업 성적을 눈에 띄게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다른 꿈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요리사’입니다.
그때도 역시나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줄 수 있는, 그것이 도움을 주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꿈, 직업 선택의 기준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어떤 직업도 쉬운 직업은 없지만, 공부는 내 길이 아니다는 생각에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꿈을 꾼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잊은 채 살아갔습니다.
좋게 말하면 보통의 학창 시절을 보내지만, 이도저도 아닌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어떤 꿈을 꾸는지도 모른 채 앞으로의 미래만 걱정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다시 ‘꿈’을 꾸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시간들 속에 영화라는 카테고리가 시간들을 채우게 됩니다.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제작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고등학교 3학년 막판에 영화과를 진학하기 위해 준비하게 됩니다.
정말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열정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
영화과를 들어가겠다는 일념하에 재수, 삼수라도 불사르겠다 생각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어쩔 수 없이 다른 학과, 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원하는 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대학 생활의 로망을 꿈꿨던 것 같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잔디에 앉아 웃고 떠드는 모습, 과잠을 입고 다니는 모습,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 등, 대학 생활의 로망을 기대했지만, 원하는 학교도, 원하는 과도 아닌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때부터 꿈은 허황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말 그대로 꿈은 꿈일 뿐,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꿈을 놓지 못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입학원서를 내고, 실기 준비도 하고, 졸업 후에는 편입 준비도 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현실적이라 생각했던 꿈이, 허황되게 느껴지면서 한계를 많이 겪게 됩니다.
학교라는 허황된 꿈과 목표가 저에게 큰 벽처럼 다가오면서 방향을 틀게 됩니다.
경험도 없지만, 영화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지원서를 넣게 됩니다.
그렇게 영화 조명팀에 들어갑니다.
밤샘 촬영은 기본이고, 남들보다 먼저, 가장 늦게 준비하고 철수하는 과정이 힘은 들었지만, 영화 한 편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지금도 꿈은 허황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을 이뤘을 때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결국, 꿈이라는 건 삶을 지탱하는 수단이란 생각이 듭니다.
꿈은 ‘허황됨’과 ‘현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너무 거창한 거 아니야?”, “이룰 수나 있을까?”
말 그대로 허황된 꿈일 수 있겠지만, 그 꿈이 가진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실로는 채울 수 없는 ‘더 나은 나’를 그려보게 하니까요.
어떤 생각을 갖고 임하느냐가 꿈을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나의 기준을 갖는 것.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의 방향을 이끌며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합니다.
그것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꿈과 목표는 다릅니다.
목표는 결과를 이루기 위한 도구라면, 꿈은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에 설렘을 느끼며, 어떤 사람을 살아가고 싶은지 알아가는 여정이라 생각합니다.
꿈이 계속 변하는 이유도, 결국 내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꿈이 뭐야?”
질문에는 저의 어린 시절과 같이 직업을 이야기합니다.
직업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직업을 꿈꾸는 것을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직업도 중요하지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며 꿈의 순기능을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지금의 저도 새로운 꿈을 꾸고 매번 변합니다.
그렇기에 더 나은 내일을, 매일을 꿈꿉니다.
허황되지만, 꿔야 하는 꿈.
모순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삶의 여정이지 않을까요?
당신은 어떤 꿈이 꾸고 있나요?
그리고 오늘, 당신의 꿈은 당신을 얼마나 움직이게 하나요?
저는 여전히 허황된 꿈을 꿉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허황됨을 믿기로 했습니다.
꿈
•1
삶을 지탱하는 허황된 희망
•2
‘나’를 알아가는 과정
•3
현실을 넘어서게 하는 원동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