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검사를 해야만 하나요? (2)

임신 중 검사..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았다.

조금씩 이게 태동인가 싶을 정도의 미세한 진동 같은 태동을 느낄 수 있었고, 수업을 하거나 기분 좋아 웃을 때 특히 더욱 느낄 수 있었다. 호박이는 무릎 냥이라서 내 무릎에 자주 누워있었는데 종종 아기도 톡톡하면서 ‘나도 여기있다.’ 라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테오가 우리에게 와준지 100일이 되는 날이 되었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우리에게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날 하루 너무 행복해서 ‘벌써 아기가 저희에게 온 지 100일 되는 날이에요.’라며 자랑하고 다녔었다.




아직까지 나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병원 진료로 인해 스승의 날 이후 출근을 못 했었는데 선생님이 언제 다시 올지 몰라서 아이들은 매일을 선물을 들고 왔었다고 했다. 디카페인 박카스, 비타민 C, 과일, 사탕, 젤리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이라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16주차 기형아 검사 2차를 할 때가 되어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피검사를 진행하고, 까만색 초음파 속 보이는 하얀색 작은 뼈와 장기를 건강하게 가지고 있는 아기를 보며 기특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아기는 인사하듯이 손바닥을 보여주며 흔들었다. 과장님은 아기가 건강하게, 활발하게 잘 놀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해 주셨다. 검사 결과는 1주일 정도 기간을 두고 이상이 있으면 전화로 통보되고, 이상이 없을 시에는 문자로 통보된다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임신 후부터는 진료 전 날 긴장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쓸데없이 안 좋은 글들을 읽을 때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16주에 아기를 여행을 보낸 글을 읽었던 탓인지 잠도 설쳐서인지 병원에서 돌아온 후 저녁 갑자기 어지러우면서 다리 힘이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놀랜 남편과 친정 엄마는 당장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어차피 병원에 가도 받을 수 있는 치료가 없을 거 같아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고 말하고, 몸의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 심호흡을 하고, 태동을 느끼려 애썼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진정했더니 조금씩 뱃속에서 잘 있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임신 중기가 될수록 몸이 좋아지지 않아 원래 일하기로 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퇴사하게 되었다. 퇴사 날짜를 잡아놓은 걸 알기라도 하듯 아빠 차로 출근하는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왔다.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아 받았더니 산부인과였다. 검사한 지 3일 만의 전화였다. 내용은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 나왔는데 조금 높다고, 양수 검사를 진행해야 할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다운증후군 얘기를 들을 때부터 나도 모르게 계속 울고 있었던 거 같다. 아빠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 전까지 말이다. 산부인과에서는 양수 검사하면 대부분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출근길에 갑자기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기분이었다.


겨우 추스르고 학원에 출근했는데 나와 함께 일하는 크리스티나 선생님을 보자마자 수도꼭지가 열리듯 눈물이 그냥 쏟아졌다. 놀라신 선생님은 나를 다른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셨고, 결과에 대해 내가 말씀드리자 같이 울어주셨다.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는 나를 배려해 주신 학원 원장님.. 난 이 날 아이들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 한 채 며칠 빠르게 퇴사했다. 퇴사 후에도 선생님은 나를 위해 기도문과 좋은 글귀를 보내주셨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데 배가 나온 임신부가 울면서 택시를 잡으니 몇몇 분들이 도와주시려고 했다. 택시에 탄 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에 대해 알렸고, 남편은 바로 퇴근하고 집으로 와주었다. 엄마는 택시 내리는 곳에 마중 나와주었고, 이미 아빠가 얘기를 해 놓았는지 엄마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 주었다. 집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면서 하늘을 원망했다. 내가 무엇을 그리 잘 못 해서 아픔을 주시더니 힘들게 와준 아이까지 힘들게 하시냐고 물었었다. 이 날 밤은 다운증후군에 대해, 양수 검사에 대해 계속 찾아보다가 잠든 것 같다.




다음날 병원에서 방문해서 결과에 대한 내용을 들으라고 하셔서 남편과 함께 방문했다. 들어가기 전 다짐했다. 울지 않겠다고 어떤 얘기를 들어도 난 이 아이를 낳을 거라고 말이다. 과장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결과지를 보여주시면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인데 22:1이에요. 양수 검사를 진행해서 확실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확진을 받는다면 수술을 할 수 있어요.’라고 하셨다. 울지 않기로 해 놓고, 결과지에 써 있는 고위험군 빨간 글씨를 보자마자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느라 질문 못 하는 나 대신 남편은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봤고, 그제야 나는 한 마디 했다. ‘과장님 아기가 확진받아도 저는 낳을 거예요. 지우는 일은 없어요.’라고 말이다. 과장님은 남편에게 동의하냐고 물었고, 남편은 와이프가 하는 선택을 믿고, 존중한다고 해줬다.


전 날 양수검사의 위험성과 검사 후 유산된 사례를 읽어 울면서 양수검사 안 하고, 아기를 낳을거라고 하자 남편도, 과장님도 당황하셨다. 나는 어차피 낳을 아기인데 한 치의 위험도 아기에게 더하고 싶지 않았다. 설득하려고 하셨지만 나는 완강했다. 부작용의 사례는 정말 적고, 검사 후 유산보다는 유산될 아기가 유산된거라고 하셨지만 그 때의 나는 귀 먼 장님이었다. 남편은 내가 설득이 안 될 걸 알고, 양수 검사 동의서 종이를 받고는 전화로 예약한다고 했다. 진료실 밖에서도 울면서 ‘나 검사 안 받을거야. 우리 아기 다운증후군이어도 낳을건데 왜 받아. 왜 아기 힘들게 해.’라며 남편을 다그쳤고, 남편은 생각을 해 보자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은 언제나 아기를 주제로 행복한 대화들이 오고 갔었는데 이 날은 살얼음판이었다. 화가 나 남편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창 밖을 보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남편은 갓길에 주차하고, 대화를 하려고 했다. 양수검사를 해야하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나는 완강했다. 어차피 낳을 우리 아기라고 나 아기 잘 못 되면 나도 없다고 너 마저 내 편이 아닌 것처럼 하지 말라면서 말이다. 남편은 ’그래 우리 아기니까 낳을거니까 검사 해 보자.‘라고 말했고, 나는 더 이상 검사 얘기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잘라버렸다.


집에 도착한 후 엄마는 검사를 왜 안 받냐며, 아픈 아기를 키우는게 얼마나 힘든일인 줄 아냐며 설득하려고 했고, 나는 ’내 아기야. 내가 지킬거야. 검사 안 해.‘라고 했었다. 이 세상에 아기와 나 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아무도 우리를 보호 해 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남편 조차도 내 편이 아닌 느낌이었다.


하루가 일 년인것처럼 대화가 한 시도 안 끊기고, 남편과 엄마는 나를 설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무서웠던 것 같다. 정말 내 아이가 다운증후군일까봐.. 22:1 비율로 내 아기가 아플까봐 말이다. 기나 긴 설득 끝에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고, 병원에서는 자궁이 현재 약한 상태이니 18주 정도에 검사하자고 하셨다.




양수 검사를 진행하는 날이 오자 극도의 긴장감에 심장 소리가 내 귀까지 들리는 듯 했다. 남편은 일 때문에 오지 못해 동의서 작성을 나 혼자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렸었다. 이름이 호명되고, 검사실로 들어가서 소독하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졌다. 어차피 낳을 아기인데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검사 전 주의사항에 듣고, 초음파를 보면서 진행하는데 아기도 검사를 한다는 것을 알듯이 활발한 태동은 안 보여주고,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덕분에 검사는 빨리 끝날 수 있었다. 과장님께서도 엄마도 아기도 너무 잘 했다고, 걱정말라고 하셨다.


이 때도 입덧은 심했고, 살이 좀 쪘으려나 하고 체중계에 올라가면 살은 쭉쭉 빠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아기는 잘 자라고 있어주었다는 것이다.


결과를 들으러 가기로 한 날이 왔고, 진료실에 들어가자 컨디션이 어떤지 물어보셨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집으로 귀가 후 결과가 나오는데로 전화 주시기로 하셨다. 정말 손에서 1초도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오후 3시가 넘어가도록 연락이 안 오길래 남편과 아니겠지. 아닐거야 라고 모든 신들을 찾으며 도와달라고 했다. 낮잠을 잘 자지 않는데 갑자기 너무 졸려 잠이 들었었다.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눈떠보니 병원에서 전화가 오고 있었고, 스피커폰으로 받았었다. 과장님은 정상이라고 아기 건강하다고 해 주셨고, 울보가 되어버린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울고만 있었다. 남편은 감사하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계속 했다. 엄마에게도 정상이라고 말씀드리니 우셨다. 당연히 정상일거라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 내 딸이 힘들까봐 걱정했다고 너무 고생많았다고 해 주셨다.


누군가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여러분이 양수 검사를 받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받을 상황이 생기신다면 무서워하지 않고, 우리 아기를 믿으면 좋을 것 같다. 아기는 누구보다 강하고, 건강하기 때문이다.


다음화에서는 초기부터 시작된 피비침과 14주부터 시작된 조기진통으로 인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병원 생활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반복되는 입퇴원 덕분에 입원 가방 싸기 스킬이 많이 높아져 출산 가방은 금방 쌌다.


에필로그 : 아기를 출산한 현재도 내 아기가 다운증후군이었어도 낳았을 거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만큼 소중하고,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다. 모두들 엄마 본인의 선택을 믿기 바란다. 그게 정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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