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우리집이 되어버렸네

병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 지고 있다.

프롤로그 : (개인의 종교적 요소가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병원 생활은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생활이었다.

병원에 있으면 돌발 상황에 대해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잠시 나가는 것도 면회도 안 되었기에 더욱 답답하게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임신을 확인하기 전날부터 피비침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임신이 아닐거라고 생각했었다가 입덧을 하게 되면서 임테기로 확인을 하게 되었던 케이스이다.


첫 입원은 12주 2일에 3일 입원 했는데 이 때는 그저 계속되는 피비침이라고만 생각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배에 강한 통증이 오면서 병원에 방문했다가 바로 입원하게 되었었다. 아마 MRI 촬영을 앞두고 있어 스트레스 때문에 배뭉침이 오는 것 같다고 말씀 하셨었다. 신기하게도 며칠 뒤 촬영을 하고 난 뒤에는 배통증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임신이 10주를 넘겼던 게 처음이라 당연히 아기집이 커지는데는 통증이 동반된다고 하니 당연한 통증 일거라 생각했던게 문제였을까… 이미 12주 때부터 조기 진통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13주 4일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배 통증을 느껴 학원에 양해를 구하고, 친정 아빠 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 해 보는 수축 검사 기계에 긴장이 되었지만 미리 연습해보는 거라 생각하려고 했는데 수축이 잡히고야 말았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수치는 올라갔고, 병원 과장님은 지금 당장 입원해야 하는데 아직 조기 진통에 맞는 주사는 효과가 없어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울면서 왜 겨우 찾아온 아이에게 이런 시련을 자꾸 주시는지 화가 났고, 과장님 말씀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무조건 누워만 있고, 화장실도 왠만하면 자주 가지말고, 힘은 절대 주면 안 된다고 하셨다.


수축 검사 기계로 심장 소리는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아기였다. 이 아기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누워있는 것뿐…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수액을 놓아주고, 수축 검사를 자주 해 줄 수 있는 것뿐이었다.


코로나 때 입원을 했던지라 남편과 면회도 안 되고, 오롯이 나와 아기가 버텨야한다는 생각에 밥도 먹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과장님은 퇴근 전에도 오셔서 꼭 안정을 취하고, 밥도 잘 먹고, 입덧약도 잘 먹으라고 응원 해 주셨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학원 선생님도 걱정이 되셨는지 카톡으로 장문의 편지를 적어 보내주셨는데 그 글을 읽자마자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모태신앙이지만 몸이 아프고 난 뒤에는 항상 의문이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이런 나에게 가장 마음이 가는 문구를 적어보자면 ‘의사 말이나 나한테 나타나는 증상보다는 예수님이 내 치료자시요, 삶의 주인이시라고 믿고, 이렇게 기도하면서 아이 출산했어요.^^’ 라는 글을 보자마자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다시 한 번 기대보게 되었다. 제발 학원 선생님의 아이처럼 내 아이도 가엽게 여기시어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말이다.


입원하는 동안 여러가지 피검사를 진행했는데 간수치가 비이상적으로 높아져 있어 초음파를 해봐야한다고 하셨다. 다행히 초음파 상에서는 지방간도 없고, 너무 깨끗한데 수치가 너무 높아서 약을 복용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약을 꾸준히 먹지 못 했다. 혹시나 약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내 아이에게만 올까 싶어서 하는 마음에 말이다.


아기와 함께한 100일은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 집에서 안정을 취한다는 약속을 하고, 4일만에 집으로 돌아와 우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4일만에 만난 호박, 감자, 토리는 문 앞에서부터 내 냄새를 맡으며 반겨주었고, 집으로 들어오자 나도 아기도 안정감이 들어 잠이 왔다. 병원에서 하는 것뿐이라고는 영화보고, 자는 것 뿐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숙면이 안 되었었다. 그 동안 못 잔 잠을 자기 라도 한 것인지 4시간을 푹 숙면했다.



학원에서는 더 쉬어도 된다고 해주셨지만 하루라도 출근해서 아이들을 만나 기운을 얻고 싶었다. 거의 앉아서 수업하는데도 그거 자체로도 무리가 되었는지 다시 핏덩어리가 보여 집에 오자마자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만 했다.

나의 친할머니이자 테오 증조할머니 생신이셔서 집근처에서 해물탕과 낙지볶음을 먹었는데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아 오랜만에 제대로된 식사를 했던 거 같다. 아기도 신이 났는지 폭풍 태동을 보여주었다. 비혼주의자였던 손녀가 결혼을 하더니 아기까지 생겨 임신한 몸으로 찾아뵈니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이 때에도 뱃속에서부터 모두에게 축복받고, 사랑받는 내 아기가 우리 아기가 그저 10달을 무사히 채우고,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16주차부터는 배통증에 익숙해진 탓인지 수축 수치에 익숙해진 탓인지 병원에서 입원을 권유해도, 응급실만 왔다갈 뿐 최대한 병원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태동은 점점 커져서 남편이 배를 만질 때 아기도 그곳을 뻥뻥 차며 ‘아빠 나 여기있어요!’ 라고 말하는 듯이 신기하고,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기와 아기집이 커지면서 진통은 점점 거세져왔고, 하기 싫었던 입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길거리에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뭉치면서 통증이 세게 와서 주변에 있던 행인이 택시를 잡아주고, 나는 그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 남편을 기다리다 같이 병원으로 향했고, 중간에 연차와 조퇴를 많이 한 남편을 다시 쉬라고 할 수 없어 친정엄마와 함께 입원을 하게 되었다.


해봤던 병원 생활이라 그런지 미리 과자도 사가고, 편한 베게도 챙겨가고, 좀 더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수축 검사와 혈압을 잴때는 항상 긴장상태이기는 했었다. 특히 배가 뭉칠 때는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면 영상통화로 고양이들과 남편과 통화하고 나면 더욱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너무 답답해 산책하려고 나갔던 적이 있는데 출산한 산모들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나만 배가 볼록나와 임신부인게 보여서 그 뒤로는 답답해도 병실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괜히 주눅이 들어서.. 다들 출산하고 입원한건데 나만 임신 중에 입원한 것처럼 보일까봐 괜히 수군거릴까봐 무서워 문 밖으로 나가는 건 퇴원할 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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