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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데 Sep 15. 2024

내가 만난 홍콩 부자 아줌마 이야기

평범하게 사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홍콩살이 여러 해 지나고, 아이 학교 문제로 홍콩섬을 벗어나 정관오라는 새로 개발된 지역으로 이사를 했던 때의 이야기. (이 글은 왠지 반말모드가 어울릴 것 같다)


그때 당시 회사일로 너무나 바빴던 나는 정관오 지하철 역 바로 위에 홍콩에서 제일 좋다는 시행사가 세워 올린 십여 년이 안된 신축 아파트 단지에 홍콩달러 3.7만 원에 (한국돈 6.3백만 원) 방 3개 + 창고방 + 메이드방(별도화장실 완비)의 꽤 넓은 플랫에 살고 있었고,  계약기간이 채 2년이 안 된 어느 날, 집주인으로부터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갑작스레 연락을 준 이유는 집이 매매가 되어서 새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두 달 내로 집을 비워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때 당시 코로나가 막 시작했을 때라, 집 보러 다니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로 꽤 맘에 들던 집에서 이사를 하려니 마음이 많이 답답했었다.


게다가 늘 그렇듯, 맘에 드는 아파트가 5개나 되는 대단지의 그 많은 아파트 중에도 잘 없더라는…


내가 살던 월세집은 60대 초 중반 정도로 보이는 부부 중 카리나라는 이름의 영어를 잘하는 전업주부인 홍콩 아줌마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 아줌마는 처음 렌트 계약을 하려고 만났을 때부터 너무나 신선하고 쿨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남편이 사업을 하시니, 남편 돈으로 매수하셨겠지만, 막상 계약에 나온 남편분은 정말 과묵하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바로 등산이라도 다녀온 듯 노브랜드의 스포티한 옷에 피부 관리 안 한 얼굴의 이

아줌마는 나이와 재력에 비해 엄청 소탈하고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분위기로 내게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역시 홍콩은 지나가는 러닝바람의 노인들, 아줌마들도 다 백만장자이구나~~


자기는 밴드에서 노래도 하고 홍콩달러 십만을 들여 앨범도 내었다고 본인 앨범 들어보라고 주던 깨발랄한 아줌마였는데, 아들 셋 모두 국제학교 졸업하고 영국에서 대학을 나와, 지금은 다들 잘 나가는 회사원인데, 딸이 없어서 섭섭하다고 하는 수다도 곁들이며, 집의 계약이 여러모로 순조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 근처 바닷가에 신축으로 올린 3층짜리 단독에 살고 있었는데 홍콩 여기저기에 부동산이 많다며, 꽤 젊지만 나름 재테크를 잘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던 복 많은 분이었다.


노티스 기간인 두 달이 어느새 흘러, 새 집을 부지런히 구하고, 살던 집을 넘기려 인스펙션을 왔던 아줌마가 집을 깨끗이 써서 고맙다더니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집 앞 카페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 갑자기 아줌마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이랑 이혼하기로 했기에 집을 팔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으잉? 졸지에 집안일 내막까지 소상하게 듣게 되었는데…


시부모님 시중들며 고생하고 아이들 키우며 제 몫을 하고 살았는데, 지금 친정어머니가 너무 몸이 안 좋아서 본인이 모시고 살고 싶은데 남편과 대화가 안 된다고, 벽이랑 사는 것 같아 이제는 그만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도 파는 것이라고… 아마도 이것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쌓여 있었던 갈등이 엄청났었던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우는 아줌마를 달래고, 서로 잘 살라는 덕담을 하며 헤어졌는데 결국 고작 해외 나와 월세 살고 있는 내가 부자 아줌마를 위로했다는 것이 헤어지고 나니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산다는 건 얼마나 복잡한 일인가!


가족을 위해 평생 희생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을 텐데, 좁힐 수 없는 간극으로 인해 그 나이에 황혼 이혼 하는 것을 보며, 돈 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에겐 너무 지독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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