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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데 Sep 16. 2024

부동산 신화에서 깨어진 사람들

영원한 것은 없다

20여 년 전일이다.


일본에서 대학원 졸업 후 회사에 다니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친구네에 놀러 가 일주일정도 머무르며 여기저기 여행을 했었다. 그때의 일본은 엄청나게 잘 나가던 90년대의 후광과 영광이 여전하던 시절이었다.


일본에서 무언가를 하고 나면, 나머지 아시아 지역에 전파되던… 지금까지도 종종 일본의 문화와 사회 변화를 보며 배울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반포에서 학교 다니며 사귄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그녀는 모 대학 피아노과를 차석 입학하고 학교 다니며 부모님 눈에 맞지 않는 남자를 만나서 집안 반대를 극심하게 겪은 후 대학원을 이유로 일본으로 유배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대학졸업식 공연이 있었던 압구정의 한 피아노 공연장에 갔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Handmade라고 새겨진 울코트를 정성스럽고 깔끔하게 입고 있던 남자친구에게, 눈길 한번 안 주시던 꼿꼿하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오히려 민망해 어쩔 줄 몰라했던 친구들의 모습.  


지금은 그 산처럼 크셨던 아버님도 오랜 치매 투병 이후에 돌아가시고, 세상 가까왔던 친구와의 연락도 끊겼다.


유배로 떠난 일본이 막상 본인과 너무 잘 맞다는 사실을 안 친구는, 한국에 돌아오질 않고 일본에 취직하여 살던 중 내 결혼식에 왔었고, 얼마 지나 눈이 많이 오던 날인가 만나 따뜻한 커피 한잔 하며, 부모님 축복하에 결혼하던 내 모습이 참 좋아 보였노라고 했던 그 친구, 지금은 잘 살고 있을지…


그때로 다시 돌아가, 한참 유행하던 shaggy cut을 하고 도쿄 시내를 안내하던 너무나도 세련되었던 내 친구. 뭔가 가볍고 날아갈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했더니, 요즘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고 한다.


이 세상 물건들 너무 많이 소유하지 않고, 가볍게 즐기고, 머리스타일도 옷도 가볍게 심플하게, 부동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욕심내 굳이 소유하지 않으려 한다며.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몇 년 후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는 것은 모두 버리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도 전달이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사사키 후미오의 “Good Bye, Things”라는 책이 소개되었고 감동 깊게 읽었는데, 알고 보니 나와 친한 몇몇 친구들은 이미 그 이야기를 일직이 접했고 심플한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 90년대에는 전 세계 면세점을 일본인들이 휩쓸고 다녔던 것을 기억하는지.


그 시절 유럽에 가면 명품 샵에 일본어 하는 직원들이 있고, 일본 한정판으로 브랜드들에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었다. 힙하고 세련된 것을 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날아가 쇼핑을 해온 후 우리나라 연예인들에게 입히던 시절.


요즈음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지금이 그때의 일본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 제일 먼저 팝업매장을 만들고, 한국을 위해 유명 연예인들이 방문하고, 한국어 간판이 홍콩에서도 많이 보이고, 여기저기서 환영받는 한국인들의 모습.  물질의 풍요로움과 더 나은 것을 소유하려는 막 거품이 꺼지기 바로 직전의 일본의 모습.


최근 몇 년 간 일 때문에 홍콩에서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알게 된 바로는, 현재 일본은 건축법 강화 및 인구구조의 변화로, 재건축, 재개발, 인테리어 등 사람 손이 가는 모든 일이 비싸서 사업성이 안 나와 오래된 아파트들은 가격이 처참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았다, 길어야 십 년 일지… 앞으로 최고 좋은 입지가 아니라면 재건축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못하게 되고, 개인적으로는 집에 뭐라도 고장 나면 사람 불러서 고치는 일이 큰 비용이 될 예정이다.


노쇠하는 부모님을 보며 부모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고심 끝에 골라드렸다.


어느 정도 나이가 지나고 영원한 것이 없다는 세상 이치를 깨닫고 나면, 역시 내 필요에 맞고 부담스럽지 않을 부동산이 내게 제일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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