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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데 Sep 18. 2024

거주지가 스펙이 되는 사회

모르는 게 약이다.

야간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직장 생활을 몇 년 정도하고 야간 경영 대학원을 등록해 다니기 시작했는데, 우리 과에 엄청 부자인 친구가 하나 있었다.


청담동 고급 빌라에 사는 부모님을 둔 싱글 친구였는데, 놀라운 것은, 겸손하고 착하기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 친구가 그때 보기에도 드문 각벤츠를 몰고 다녔는데(벌써 십수 년 전이니 지금처럼 벤츠가 국민 소나타가 된 시절이 아님), 보수적인 부모님이 어린아이가 너무 눈에 뜨이는 차를 몰면 안 된다고 그 차를 사주셨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그 차로 인해 너무 눈에 뜨이긴 했었고, 숨길 수 없는 재력이 있는 아이로 통했다.


그런데 그 친구 보다 더 이슈가 된 친구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미스코리아 출신인 예쁜 친구였다. 첫 수업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키도 훤칠하고 꽤 예쁘장한 외모에 잘 차려입은 늘씬한 옷매무새.


뭐 그 정도면 그러려니 했는데, OO 년 미스코리아 출신이라고 하니 경영대학원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수님들까지도 다 아는 척해주시는 분위기였고, 그때 여자에게 외모와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이 하나의 스펙일 수도 있구나- 싶었던 게, 선을 많이 본다는 얘기와 만나는 사람들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수업에서 나이가 좀 있는 축이었던 내가 다른 동기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보통 사람들이 뽐내려고 벤츠니 BMW니 비싼 차 타고, 브랜드 들고 다니는데 OO 같은 외모면 그냥 걸어 다니는 BMW야라고 지나가는 말을 했는데 나중에 한 후배가 그 말이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지금 같은 시기면 외모품평하는 무식한 행동으로 여겨질 테지만..)


인생이 재미있는 건, 한때의 영광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들어 간다는 건데, 특히 외모가 그렇다. 나이가 마흔 중반을 넘어가니 예뻐 보이기는커녕 너무 추레해 보이지 않은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진즉에 겸손함을 입고 오버하지 않으려 한다.


요즘은 자기를 드러내는 방법도 가지가지로, 인플루언서들은 걸친 옷으로, 차로 뽐내다 이젠 고급 아파트, 부동산으로도 자신의 스펙을 자랑하는 것을 보곤 한다.


갖고 있는 것을 더 자랑해 더 큰돈을 벌려고 하는 세상. 이 것도 새로운 마케팅 기술이라면 기술인가 보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동네의 감이 현지인들보다 많이 떨어져 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 구애받지 않고 내 예산에 맞고 필요에 맞는 집을 그때 상황에 맞추어 골라서 살며 마음 부대끼는 일이 없다.


한인 사회에서도 아주 어쩌다 가끔은 내가 사는 동네를 얘기하면 ‘아니 왜?’ 이런 의아한 느낌의 눈빛을 접한 적도 있지만, 더 길게 설명할 필요를 못 느끼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 생긴 지혜는, 뭔가 요란하다 싶으면 오히려 내면이 빈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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