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애착

by 지안


초등학교 시절, 일찍이 아빠가 돌아가셨다. 엄마와 동생과 살았다. 어린 시절 큰 특징은 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틈 사이 내 안에 넓게 피어난 사색의 범위로 인해 나는 사뭇 진지한 사람이 되었고 그 무게를 엄마와도, 동생과도 나눌 수 없어 ‘나’라는 섬에 고립되어 살았다.


친구들은 있었지만, 한 5살쯤 많은듯한 고민을 지닌 나와 애어른의 대화를 나눌 친구는 없었다. 친구들도 나름의 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 뒤로 지고 있었지만 무의식의 심연으로 넘기고 그 시기 막연한 기쁨을 누릴 순간들, 어두움을 지나쳐 마냥 재미를 쫓을 순간들을 누렸다. 친구들처럼, 그 나이 때만 피어나는 그런 순간들을 즐거워했어야 했다.


여튼 그런 쓸데없이 묵직했던 나에게 '대화'는 아주 중요한 관계 요소였다. 자리 잡은 결핍을 눌러내며 심장에서부터 채워지지 않은 타인과의 연결을 바라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선택한 사람은 대화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치 내가 자란 가정처럼.




‘애착 이론’
: 어릴 때 주요 양육자와의 관계가 성인이 된 후 친밀한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


애착 이론은 나의 삶에 크게 적용되었다. 나는 나의 결핍을 채워줄 대상이 아닌, 나와 같은 결핍이 있는 그를 만났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랑을 줘야 하는 사람. 이해하고 받아줘야 하는 사람. 대화는 없지만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람. 사랑의 정의처럼 몹시 나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표현이나 행동은 없어도 그런 '것' 같은 사람. 그런 익숙한 사람을 만났다.

봉사활동을 통해 그를 만나게 되어 친해지게 되었다. 함께 밥도 먹고 청소도 하고 일도 하면서 그가 내게 익었다. 마치 내가 만나온 사람 같았다. 그도 대화가 없는 집안에서 자라온 터라, 함께 밥 먹을 때 몇 마디 말도 없었다. 물론 나는 몇몇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원활히 되지 않는 소통에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자란 환경에 대한 지긋함과 환멸감이 스쳤다.


그러나 이내 익숙함에 내가 느끼는 불편을 먹였다. 침묵에 안정감이라는 수식을 붙였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자, 그는 들어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내게 편안함을 준다고, 나를 받아준다고 포장했다. 아프게도 나는 그저 내 상처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의 애착 유형은 불안형이다. 사랑을 주고받음이 균형이 있는 안정형 애착과 달리, 대방의 반응에 나의 감정이 결정되곤 하는 형태. 그리고 그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받기도 주기도 조심스러워하는 회피형이었다.

나는 연애 때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검사를 통해 차이를 인식했고, 결과를 통해 간극을 줄이려는 변화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너무도 달랐던 그는 나의 시도를 공격이라 여겼다. 분석하고자 시도한 대화 속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날카로움을 느꼈으며, 배려하고 싶었던 솔직함으로 인해 비수에 꽂혔으며, 관계에 대한 나의 열정을 냉정이라 착각하여 슬며시 빗장을 닫았다. 그는 나를 마주 대하기보단 도망을 택했다. 그는 내게 자신을 이해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의 그는 나에게 연애 초반에는 많은 연락을 보냈다. 큰 맥락 없는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모두 받아주었다. 가령 길을 가다 땅따먹기를 한다거나, 까치와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 등의 나의 요상한 독특함을 받아주곤 하였다. 그 안에서 이 사람이 나를 각별히 생각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유의 미지근함으로 내게 연락과 만남을 요청하였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그가 주는 미적지근한 작은 들꽃 같은 사랑이 좋았다. 나도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는데, 그는 나에게 작은 사랑이라도 주었다. 난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해 줄 누군가 필요했다. 마치 그 사랑이 나를 이 외로움에서 완전히 구원할 듯 여겼다. 그래서 나는 그 작은 사랑을 구름처럼 여겨주었다.

그가 준 꽃 한 송이를 백 송이처럼, 그가 준 편지 한 장을 하루 종일 나눈 대화처럼, 그가 귀찮음과 졸음을 이기고 데려다준 1시간의 거리를 3시간의 배려처럼 고맙고 기쁘게 여겼다. 나에겐 그가 주는 작은 사랑이라도 값졌다. 그때는 그런 작은 사랑은 작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를 않았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무심함, 작은 사랑은 결혼 생활 이후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 그가 받아주는 사랑 너머 속마음은 알 길이 없었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미숙함이라 생각했었다.

무심함과 쌀쌀함. 그는 출근하면 나에게 카톡 한 번, 전화 한 번 하지 않던 습관이 있었다. 퇴근 후 내가 점심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 결혼 생활 내내 그가 나에게 용건 없이 전화한 일은 없었다. 임신 초기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할 적에도 그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는 내게 안부를 묻지 않았다.

그 서운함은 서러움이 되었다. 쌓이고 쌓이어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도 지쳐 입을 다물 때면 그는 내가 좋아하는 꽃을 사 오기도 하였다. 또는 선인장을 사 오기도 했다. 그렇게 표현하는 마음을 늘 다시 처음처럼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의 순간의 행동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그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나와의 어떠한 연결도 원하지 않았다.

항상 생각했다. 바쁘고 힘들어서 그래. 본인의 삶이 너무 버거워서 그런 것일 거야. 혼자 밀린 집안일을 했다. 생각을 아예 지우기 위해 시장에서 장을 오래 봤다. 밤에는 혼자 걷기 위해 나갔다. 그의 숨어있는 그 마음과 대화하기에는 나는 깊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반려자이자 친구인 그는, 나눈 대화가 짧았기 때문일지 어느새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속내를 읽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도 점차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런 내게, 그는 묻지 않았다. 그는 되려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서로에게 애착을 가지지 못한 우리의 관계는 점차 내 마음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한 때는 내 인생의 카메라에 그를 담고 싶었다. 이리저리 열심히 찍었다. 그럼에도 그의 빗줄기들은 담기지 않았다. 여러 시도 끝에 나는 비에 흠뻑 젖었다. 아프게도 앓았다. 이제는 깨달았다. 담기지 않는 비를 억지로 담아낼 필요가 없다고, 그저 흐르도록 두었으면 되는 일이었다고.


애써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해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맞추려 노력하는 것, 한없이 참아내는 것. 형식의 틀에 아직 잘 모르겠는 나 자신을 쥐어짜 내어 끼워 맞춘 들 큰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야말로 나의 무지의 오만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 인생을 좋은 사람의 인생이라 속단했다. 좋다고 여겨져 온 것들이 내게도 좋은 것이라 내 개성과 특성을 무시하고 우선을 부여했다. 윗 세대의 헌신으로 곪아터져 튀어나온 홧병이라는 단어 또한 암묵적으로 내게도 마련된 길이라 무념히 단념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만들어 닦여진 도로가 내가 달릴 길이라 최면을 걸었다.


고속도로에서 빠르게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일처럼 이혼은 내게 무서운 일이었다. 사고 후가 두려웠다. 이게 옳다고 생각하고 달려온 길을 멈췄다간 죽는 거 아닐까? 그러나 아니었다. 큰 칼을 삼키는 듯한 용기를 내어 급브레이크를 밟자, 앞서 무수한 추돌사고 끄트머리에 손톱만큼의 작은 갭으로 난, 살았다. 유튜브에서 숱하게 말하는 이혼 후의 삶과는 또 다른 '나의' 삶이 펼쳐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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