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꿈꾼다. 서로 팔로잉을 한 인스타 친구 관계와 같은 단순한 연결, 커피가 담긴 하얀 컵 앞에 앉아 두런두런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얕지만 친밀한 연결, 나란히 밤길을 거닐며 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상처와 약점을 공유해도 수치감보단 안정감이 드는 깊이 있는 그런 모든 종류의 연결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이라는 연결까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그 이에게만 소속되고 싶은 갈망적 연결.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고 싶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둥그런 소망. 그런 이와 붉은 실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밧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린 시절 나와 비슷하게 대화 없는 집안에서 자랐다.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게 자랐다. 내로라하는 대학을 학비 생활비 걱정 없이 지낼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심연에는 정서적 결핍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결핍을 인식하지 않기로 했다. 원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끊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현실을 살아냈다. 그에게는 지각이 예정된 출근 전, 오전을 버티기 위해 바나나를 꾸역꾸역 밀어 넣듯 하루를 목 뒤로 넘기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어느새 결핍을 잊었다.
그 때문인지 감정적인 인식과 대화에 취약했다. 다 마신 캔콜라를 구둣발로 바짝 밟은 듯 납작하게 눌려버린 감정들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하는 건지 몰랐다. 뒤죽박죽 뒤엉킨 책장의 책들처럼 이 책을 꺼내면 저 책이 무너질까 저 책에 손대면 감당하기 어려운 먼지들이 뿌옇게 올라올까 이런 현상에 대한 걱정이 될 뿐이었다.
결혼 이후 그는 그가 살아온 삶에 가까워져 갔다. 연애라는 놀이동산은 해가 저물어 손목의 티켓을 끊어 버리고 나온 지 오래였다. 그에게 실재하던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그에게도 결혼은 무거운 것이었다.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 경험해 보는 책임감이라는 큰 산 앞에 한번, 감정 공유와 연결을 원하는 상대가 있다는 더 큰 산 앞에 두 번.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연결되지 않은 '그'라는 선은 결국 회로에 닿지 못하고 빛을 잃었다.
서로 다른 해류였던 우리는 해무와 태풍이 잦게 생겨났다. 우리의 불안정한 충돌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세 번째의 유산은 우리 관계의 지반을 확인하기 충분했던 태풍이었다. 우리라는 섬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못했다.
한 번의 자연유산, 그리고 두 번의 계류유산. 마지막 유산 때도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숨죽인 죄책감이 또 찾아왔다. 아마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 감정은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 않는 고통이다.
그리고 내겐 여전히 강한 아픔 앞에서, 그는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수술 후, 함께 죽집에서 죽을 먹었다.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말없이 죽을 먹었다. 밀어 넣고 구겨 넣고 밟아두었던 외로움이 고개를 내밀어왔다. 꾸역꾸역 다시 제자리를 찾도록 꾹꾹 눌렀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내가 잠을 이루는지 알지 못했다. 힘겹게 붉은 실을 우리의 손가락에 걸어두었는데 매듭이 단단하지 않았던 탓에 금방 쉽게 풀리고 말 것 같았다.
그저 아픔을 공유하고 싶었다. 슬프다고,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 밤들이었다. 이혼을 결정하게 된 순간은. 밤마다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결혼의 의미를 곱씹었으며, 우리 사이의 불균형을 계산했으며, 그와 내가 버틸 수 있을 시간을 꼽아보았다.
대화를 요청했다. 나는 최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 결혼을 유지하고 싶은 이유는 사랑이야?"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섞이지 않았다. 그는 그의 아픔이 있었고, 나는 나의 아픔이 있었으며 또다시 뿌연 해무를 그려낸 채로 이야기의 끝은 이혼을 향하게 되었다. 그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연결은 흐릿해져 있었다.
그 이후 그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여러 표현을 우회적으로 하였으나 단 한마디를 자발적으로 하질 않았다. 내가 기다렸던 한 문장. "나랑 얘기 좀 해." 마지막은 회피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를 마주해 주기를, 내 감정을 대면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또 이 순간마저 그의 깊은 동굴로 들어갔다.
그와 이혼을 결정하게 된 후 함께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별거부터 시작했다. 서류 제출을 미룬 것은 또 튀어나온 쓸데없는 배려였다. 그의 마음이 완전히 정리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싶었다. 현상적으로라도 유지하고 싶던 결혼생활. 그것이 깨지는 것 또한 괴로움일 테니.
그가 집을 나가는 날, 그의 짐을 모두 챙겨뒀다. 빠짐없이 꼼꼼히. 반찬과 식료품 등 그에게 필요할만한 것들 전부를 챙겨두었다. 그는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줄 알았지만, 그저 마지막 배려였다. 늘 나의 행동에 "왜?"를 물은 적 없던 그. 그의 마음속에 그려진 또 다른 나. 그저 우린 달랐다. 우리는 아팠다.
나는 어깨가 불균형하다. 오른쪽 어깨를 많이 쓴 탓에 오른쪽 팔도, 날갯죽지도 많이 굳어있다. 상대적으로 왼쪽 어깨는 오른쪽 어깨를 더 많이 쓰기에 편안했던 탓인지 자유롭게 움직일만하다. 이혼 후 요가를 하면서 더욱 깨달았는데, 이 불균형이 운동할 때 참 거슬린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더 아픈 쪽이 운동할 때도 더 아팠다. 굳어진 부분을 풀어내려 더 많이 움직여야 했고, 더 많이 뻗어내야 했다.
그와 나는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 같았다. 우리 사이 불균형은 나의 아픔을 초래했다. 사실 나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관계 중 존재하는 무거운 짐들을 들었다. 떠안았고, 감당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더 많은 아픔이 생겼다. 더 노력하는 쪽이 더 아픈 법이다.
가장 큰 우리 사이 문제가 무엇일까. 고민하면 결국 이기성과 이타성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나는 너무나도 이타적이었으며, 그는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도, 그도 문제였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쓸데없는 배려를 주던 나. 내가 바라는 사랑을 줄 줄 몰라 주지 않던 그. 우리의 접점은 찾아지지 않았다.
그가 집을 나가기 2주 전부터는 밤 사이 눈물이 났다. 아기와 함께 자던 침대에서 아기를 사이에 둔 우리의 거리 50cm. 다행히도 그는 흐느낌을 눈치채지 못했다. 심장의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심장을 맷돌로 갈아내는 것처럼 아팠다.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든, 잘한 선택이었든 그와 보낸 시간 속에는 짧은 기쁨도 작은 즐거움도 소소한 행복도 아름다운 순간들도 분명 박혀있었다.
그 시간들을 생각했다. 애도했다. 나를 위로했다. 아픔을 밀어내지 않고 한가득 꽃다발을 안듯이 안아냈다. 시작이 잘못되었어도 과정을 잘 만들면 되었다. 하지만 과정도 잘못되면 결과는 자연히 시작과 과정을 따라간다.
붉었을지 불그스름했을지, 헤지고 헤져 우리의 붉은 실의 매듭은 풀리고 말았다.
문득 그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여전히 애잔함의 물기가 남아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거칠고 험한 세상살이를 살아내기엔 조금은 힘들고, 피곤한 사람들. 기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이 혼자 살아내려 노력했는데 그 노력 때문에 이곳저곳을 다친 사람들. 너무 마음이 어리숙해서 관계와 사회를 대할 때 정말 잘 모르겠는 사람들.
밉지 않고, 싫지 않다. 이해도 된다. 그러나, 삶을 바꿀 용기. 삶을 살아낼 용기. 큰 거 말고 작은 한 걸음. 그 정도는 노력해도 괜찮다. 다가가는 것이 어려워 늘 남이 다가온다면, 상대의 용기와 노력을 먹고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상대에게 한 마디는 해라. '오늘은 어땠어?'.
관심이 없어도 표현해야 하고, 있어도 표현해야 된다. 표현은 연결의 첫걸음이다. 다정할수록 좋다. 좋은 일은 없었는지, 안 좋은 일은 없었는지. 궁금하지 않아도 물어보면 궁금해진다.
처음 생긴 그 관심, 사랑은 아기를 보듯 잘 돌보아줘야 단단한 밧줄이 된다. 불편함을 살펴주고 필요한 건 채워주고 힘들 때는 안아주고 행복할 때는 눈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거. 그 소중한 마음이 꺾이지 않게 잘 돌봐주기를. 언젠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