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숨

by 지안


"아픈 것에 집중하지 마시고,

숨 쉬는 것에 집중해 보세요."


이혼 후 큰 변화 여러 가지 중, 가장 도움이 되었던 행동은 요가를 시작한 일이었다. 새벽에 아이가 깨기 전, 눈을 뜨면 티비를 틀고 유튜브를 틀었다. 그리고 가장 인도스러운 느낌이 나는 요가 선생님의 영상을 틀었다.


결혼 생활동안 무너져있던 잔근육들을 깨우려니 여간 쑤시는 것이 아니었다. 팔을 조금만 늘이려고 하면 바로 겨드랑이가, 다리를 조금 늘이려고 하면 바로 허벅지가 아파왔다.


당기다 못해 통증이 느껴져 미간 사이 주름을 가득 잡고는 후- 후- 숨을 쉬어댔다. 그때 영상 속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픈 것에 집중하지 말고, 숨 쉬는 것에 집중해 보세요."


아, 숨 쉬는 것. 늘이려고, 저 발 끝에 닿아보려고, 무너지지 않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숨 쉬는 것을 어느새 잊게 되었다. 그리고는 남는 순간에 가파른 숨을 쉬고 있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숨 쉬는 것에 집중했다. 한결 아니 열결은 편안했다. 분명 같은 강도의 통증일 텐데 아픔이 덜 느껴졌다.


요가는 마치 내가 이혼을 이겨낸 방식과 같았다. 숨 쉬기. 오늘 하루 숨을 쉬는 것에 집중했다. 하루 규칙적으로 숨 쉬다 보니 밤에 흐느끼던 눈물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말랐다.






마른 눈물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기엔 거창한 이름 모를 잡풀 같은 게 있었다. 폐 가득히 숨을 쉬어 봐야겠다는. 가슴이 답답할 때는 뛰었다. 잠깐 친정엄마 손에 아이를 맡기고 뻥 뚫린 느낌이 들 때까지 땀이 흘러 옷을 적실 정도로 바닥을 내디뎌 차냈다.


그리고 취업준비, 집안일, 아이의 오늘 웃는 얼굴을 마주하기. 아픔은 크게 안아 받아들였다. 흘러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공간 앞으로 내가 할 일들을 두었다. 내가 오늘 보고 행복해야 할 것들을 가슴 앞쪽으로 당겼다.


특별히 아이의 오늘의 웃는 모습, 오늘의 키, 오늘의 말들, 오늘의 이쁜 짓들을 눈 깊숙이 마른자리로 가져다 두었다. 소중하고 지킬만한 아름다운 것들은 때때로 호흡을 멈춰가는 폐를 살아나게 하며, 고동을 재우던 심장을 뛰게 한다.


아이가 그랬다. 아이는 내게 원더우먼 같은 힘을 주었다. 아이를 보면,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생명의 애틋함, 생명이 알려준 사랑. 결코 혼자서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혼할 때, 나는 그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기로 다짐했다. 좋았던 것, 고마웠던 것, 그의 덕분인 것은 까맣게 칠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감사하기. 그러나 힘들었던 것, 아팠던 것, 달랐던 것들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를 탓하기보단 내가 할 수 있던 더 나은 행동을 모색하기.


이 다짐은 이혼을 덜 후회하게 하였고, 이혼의 아픔을 더 많이 느끼지만 더 빨리 회복되게 하였으며 이혼의 끝이 쓰지는 않도록 도왔다. 더욱 내 삶에 집중하는 계기 또한 되었다.


아이를 혼자 돌볼 수 있을 가까운 거리의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급여는 적더라도 등원과 하원에 무리가 없으며, 업무 강도는 높지 않은 일자리를 찾았다. 찾다 보니 둘 중 하나를 택하여야 했다.


짧은 근무시간과 충분한 급여 두 가지 모두 충족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상은 여기저기 다른 모양들의 집합인지라 입맛에 딱 맞는 자리를 찾기는 늘 쉽지가 않다.


정말 운 좋게도 마침 딱 좋은 5시 퇴근 직장이 있었다. 3번의 시도 끝에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자유로움을 택하니 계좌의 여유는 없지만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새로운 일에 몰두하며 얻는 바쁨이라는 소용돌이가 내 삶을 휘어잡았다. 바쁘게 내가 해온 다른 영역의 일을 익히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는 뭔가를 잘 해낼 수도 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잘할 수 있다고.


이혼 앞에서는 누구나 자존감이 무너진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 사람을 무너뜨릴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저기 모가 나서 사랑을 시도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혼은 당신을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있다고. 이제야 진정으로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이를 진심으로 책임지며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증한 것이며, 혼자 서기에 부족함 없는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그런 말들. 당신에게 부족할지 몰라도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충분하다.


이제 숨 돌릴 여유가 났고 이제 나다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고생했고, 그만하면 많이 아팠다. 더는 아프지 않아도 주변의 풀들은 어제와 같이 잘 자라고 있으며 지구의 중력은 여전히 나를 그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우주는 충분을 모름 채 팽창하고 있다. 당신도 자연과 같을 만하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아프지 않기를.


새로운 시작. 늘 새로움은 설렘을 준다. 제한해 두었던 선을 넘어보라. 마치 미국인들의 총각파티처럼. 선을 넘어도 집 안의 기둥 하나도 무너지지 않고, 타고 가는 버스의 바퀴가 터질 일도 없다. 그렇게 가라. 당신의 오늘의 숨을 쉬어보라. 당신의 숨결 끝, 조금의 평안이 깃들 수 있다면. 당신만의 숨을 쉴 수 있는 오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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