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화

by 지안


뜯어말렸다. 엄마도, 동생도, 제부도. 아마 우리 딸이 초등학생 정도였다면 딸도 말렸을 것이다. 그는 굉장히 유순한 성격을 지녔다. 사람들이 혀를 내둘러 착하다며 그를 칭찬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혼한다는 나를 가장 이해해 주신 분은 시어머님이셨다. 이혼의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대화'였다.


그와는 시시콜콜한 대화도, 지금 나의 감정을 나누는 대화도, 현실적인 상황을 해결할 대화도, 그리고 함께 미래를 그려갈 대화도 전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사위가 술 먹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나가서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야. 도대체 뭐가 문제니!"

동생은 말했다.
"언니, 언니 애기가 있잖아. 그래서 하는 말이야. 아기 보고 조금만 참고 살아. 언니가 화내지 말고 그런 방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되잖아."

아는 인생선배님은 이렇게 말했다.
"내 남편도 평생을 그래왔어. 결국 지나고 보니 잘못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한테 있더라. 참고 그냥 살아."


나는 이런 말들을 들으며, 대화는 결혼 생활에서 사치의 부분이라는 인식. 대화를 문제 삼는 자체가 문제라는 주변의 인식을 알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있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대화만 안될 뿐, 모든 게 문제없는 사람을 불평하는 답답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주변 모든 이들의 만류 앞에 내가 잘못했나?라고 나를 돌아볼 때 이혼 사유를 듣고 정말 공감하는 한 명이 있었고, 그분은 대화가 정말 안 통하는 시아버님과 살아보신 시어머님뿐이었던 것이었다.

내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심정이 궁금하듯 그럼 과연 나는 저런 말들을 듣고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정말 만나는 사람 족족 다양한 이유들로 이혼을 뜯어말렸다. 아주 친한 언니마저도 이혼은 일단 조금 더 생각해 봐. 라며 서류 제출을 말렸다.

그런데 파도처럼 밀려오던 그 주변에 나는 점차 이상하리만큼 명확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속절없이 흔들리는 혼란을 겪기는커녕, 오히려 민들레 꽃이 콘크리트에 깊은 뿌리를 박듯 어려운 상황에 대한 결론이 점점 질겨졌다.

타고난 반항심으로 인한 마음이라 설명하진 말아 주길 바란다. 물론 이단아적인 반항심을 사랑하지만, 내 안에는 이러한 결론이 있었다.

'대화'가 필요해.





모두가 나의 가정을 지켜주려고 애썼다. 그 말들이 나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참는 것, 버티는 것. 헌신하는 것.

표현하지 않는 것. 감내로 심장을 누르는 것.
감정은 미루어두고 현실을 지키는 것.
해결되지 않는 일은 체념하는 것.
불행하더라도 틀을 지키는 것.

그것은 고귀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되려 고귀하고 묵직한, 대단한 것이 아닐 리 없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였다.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과는 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다양성을 간과하곤 한다. 일반적인 삶과 평균적인 잣대가 모든 이들의 삶을 관통하는 듯 생각한다. 그러한 편협함은 그들의 탓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인내와 헌신이라는 제한된 세상 속 전부를 정답으로 생각할 뿐이다. 인내하고 헌신할수록 세상이 좁아진다. 그 방법만이 신실한 일이라 고수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오롯이 나만이 간파할 수 있다. 나를 설명하는 일을 남에게 미루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이 나에게도 정답이라 그렇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되었다. 제한된 세상 속에 나를 가두어 정답이 하나인 삶이 내 삶인 마냥 따라 살 수는 없었다.


결정을 내가 아닌 그들이 해서는 안되었다. 그들의 의견이 어떤 고민과 비난 없이 내 의견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었다. 내 인생은 그 누구의 인생도 아닌,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었다.


난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6년간의 짧다면 짧은 인내와 헌신은 마치 더운 날 미적지근한 맹물을 마시듯, 건조기에 잘못 돌려 작아진 옷을 입은 듯, 장마에 후덥지근한 공기와 에어컨 온풍기의 묵직한 공기가 메운 길거리를 걷듯,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함으로 나를 감싸고 조여왔다.

주변의 조언들이 도움을 주었던 부분도 있었다. 그들이 말한 답이 정말 그러한지 신중함이라는 안경을 쓰고 예리한 눈빛으로 뒤돌아보게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짧게나마 참고 살아왔던 시간은 후회라는 재를 목격하게 될 뿐이었다. 어떠한 결실도 남아있지 않았다.

6년이 짧은 시간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으로는 채 30년을 못 살은 내 기준에서는 1년도 짧은 시간이 아니다. 갈아 넣은 6년간 그에게 베풀었던 인내와 헌신, 공감과 조언, 용서와 기회가 그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쳐 엇비슷한 대화다운 대화라도 나누어 보았다면 이렇게 허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무렵,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봤다. 60대 즈음되신 어머니이자 교수님이셨다. 그분은 지난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 없었다고. 나로 살아보지 못했다고. 슬퍼 보이는 눈에서 가엾은 눈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장면을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아내였던 내가, 한 아이의 엄마였던 내가, 집안일과 생계를 지켜내는 좋은 아내. 그리고 아이의 감정과 환경 모두 잘 돌보는 충실한 사람이고 싶은 사람, 내 옷과 화장품에는 전혀 소비하지 않으며 남편의 옷, 넥타이, 신발, 그리고 아이의 계절 옷과 손 때 묻을 장난감들과 같은 내가 들어있지 않은 항목에 소비하는 사람. 그저 가정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존재하는 사람은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

드디어 나는 나라는 존재를 찾고자 했다. 대화라는 것은 그저 그와의 소통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의 대화들 속에 나를 발견하고 그를 발견하는 우주적인 의미를 갈망하는 것이었다.


끓어오르는 그 욕망일지 욕심일지 아니면 피지 못한 열정일지. 아니면 그냥 미친 짓일지. 무엇이라 해도 그것을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돌아서서 후회하는 것만큼 아픈 일은 없었다.


우리네 인생은 유한하고 또 미련한 것이라 이미 누군가 수없이 반복했던 실수와 실패를 간접적으로 듣고 학습함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대할 적에는 왜 꼭 후회의 발자국이 남고 마는 건지 이유 모를 인생의 패러다임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후회를 알아챈 그 순간에 또다시 후회될 인생을 선택하고 앉아있는 것은 그 굴레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와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아가고 싶었다. 바닷가 모래 근처 작은 물결을 살랑살랑 헤치던 것과 달리 나를 삼키어 깊은 물속으로 데려갈 가능성이 큰 커다랗고 높은 입을 가진 파도가 밀려온 것은 분명했지만, 설령 내가 그 파도에 내가 삼키어져 사라지더라도 나아가고 싶었다. 혹은 파도 너머 그 어딘가에 닿을 수 있을지마저도 불분명한 도박이었지만, 난 나아가기로 했다.

그 결정 중에서 나는 모든 감정과 관계를 정리하면서 끝에 이르러 슬픔을 느꼈다. 안타까움을 느꼈다. 여러 때에는 사랑했을 그와의 다름을 마주하기로 했을 그 순간 말이다. 내가 원했던 것은 대화였다. 시시콜콜함에 웃음을 나누는 대화,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대화, 현실적인 문제의 고민을 나누는 대화,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나누는 대화였다. 그러나 그런 대화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와 어떠한 작고 소중한 것, 크고 중대한 것 하나 나누기 쉽지 않았다.

대화가 없다면, 이건 더 이상 내가 살고 있을 세상이 아니었다. 나의 선택은 연결, 그리고 소통이었다. 그게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