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 앞에서
오늘도 여전히 잠들지 못한 나는 고요함이 내려앉은 어둠 속, 홀로 생각에 잠겼다.
문득, 기억 속 친정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넌 말도 빨랐어. 느려서 애먹이거나 하지 않았어.’
나는 맘카페 게시글을 내리던 손을 멈추고, 작게 중얼거렸다.
“내 어릴 적이랑 내 아이의 지금. 뭐가 다를까?”
더듬어본 기억 속에는 다닥다닥 붙어 있던 주택들과 그곳에서 같이 웃고 떠들던 동네 또래 친구들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어서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본 적이 없구나.”
나는 지도를 켜고 주변을 뒤적이다, 가장 크고 재미있어 보이는 키즈카페를 찾았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자주 보면, 내 아이도 변할 거야.’
소파에서 일어서며 핸드폰을 끄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더듬으며 침실로 향했다.
내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화단 앞에서 처음 마주 잡았던 손. 어쩌면 그 찰나의 온기가 내게 너무 이른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나는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로 향했다. 많은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풍경 속에 내 아이를 슬쩍 밀어 넣어보고 싶었다.
어른 둘과 아이의 입장료를 합쳐 4만 원.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결제하면서도 아깝지 않았다. 오늘은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놀아주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남편과 둘째가 먼저 안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화려한 조명과 낯선 소음 앞에서 멈칫거리는 아이의 등을 살짝 밀며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 보자. 여기 엄청 재밌는 곳 이래."
아이는 내 손길에 떠밀려 조심스레 안으로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채 몇 걸음도 가지 못했다.
우웅ㅡ
키즈카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어린이용 전동차의 둔탁하고 거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아이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얼어붙더니, 이내 뒤를 홱 돌아 출입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자동차 움직이는 소리야. "
아이의 몸이 확 밀려났다. 아이는 내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아이의 시선은 오직 밖으로 나가는 문에만 꽂혀 있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온몸을 빳빳하게 뻗치며 앞을 막아서는 나를 밀어냈다.
“괜찮다니까, 무서운 거 아니라니까. ”
나가려는 아이와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나의 숨 막히는 실랑이. 주변에서 여유롭게 놀고 있던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쏠리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 따가운 시선들에 쫓기듯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지만, 아이는 활처럼 몸을 뻗치며 격하게 발버둥을 쳤다.
'… 안 되겠네.'
결국 나는 항복하듯 아이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문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몸짓을 몇 번이고 다시 가로막자, 탈출구를 잃은 아이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화려한 장난감 구역이 아니었다.
입구 구석에 놓인 신발장 앞이었다.
아이는 신발장 문을 붙잡고, 일정한 속도로 열고 닫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열고, 닫고.
달칵ㅡ
다시 열고, 닫고.
달칵ㅡ
그 무의미한 행동을 지켜보며, 나는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제 지나갔네. 우리 다른 거 하러 가볼까?"
하지만 아이는 내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신발장 문만 여닫고 있었다. 내가 조심스레 다가가 손을 뻗자, 아이는 내 손을 툭 밀치고는 내가 닿지 못하는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겨 똑같은 행동을 이어갔다.
“…….”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이질감이 덮쳐왔다.
화려한 미끄럼틀을 타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과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엄마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였지만, 아이는 그 풍경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안에 재밌는 거 많대. 들어가 보자.”
나긋하게 달래듯 말해도, 다가가 애원하듯 말해도, 아이의 시선은 끝내 내게 닿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 하면 또다시 멀어지고, 기계적으로 신발장 문을 잡는 그 손이 한없이 낯설었다.
그 고립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등을 찔렀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거칠게 거부하며 몸부림치는 아이를 억지로 안아 들고, 우리에게 꽂히는 시선들을 뚫고 들어가 남편을 찾았다.
“……가자.”
나를 밀어내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잡고, 다짜고짜 짐을 챙기는 내 모습에 남편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직 30분도 안 됐는데?"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를 쳐다보지 않은 채 가방을 챙겨 들었다.
“무슨 일 있어? ”
영문을 모르는 그의 순진무구한 한마디에 갈 곳 잃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키즈카페의 소음을 뚫고 내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자고, 그냥!!"
도망치듯 빠져나와 올라탄 차 안.
나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조금 전 신발장 앞에서 목격한 아이의 그 낯선 모습들을 남편에게 쏟아냈다.
떨리던 내 목소리가 허무하게 잦아들 무렵,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깊은 한숨 소리가 좁은 차 안을 짓눌렀다. 그 무거운 숨소리를 듣는 순간, 애써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목 끝까지 북받쳐 올랐다. 눈앞이 속절없이 흐려졌다.
“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목소리는 무너지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거부당하고 겨우 마주 잡았던 손은, 단지 그뿐이었다. 끊임없이 외면당하고 밀쳐지며 버텨온 내 마음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화단에서 손을 한 번 마주 잡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는 다시 낯설어졌고, 나는 그 앞에서 또 길을 잃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손을 들어 이마를 짚은 그때, 문득 밤새 맘카페와 검색창을 뒤지며 보았던 숱한 문장들이 떠올랐다.
'소아과 선생님이 보는 거랑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보는 건 완전히 달라요. 소아정신과가 훨씬 정확합니다.'
아이의 발달 검사를 받았던 곳은 동네 소아과 부설 발달센터였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예약이 빠른 곳을 찾아갔던 터였다.
‘그래, 소아정신과 전문의라면 알겠지.’
이 행동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이 모든 상황을 해석해 줄 사람이 너무도 절실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검색창을 열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주변의 소아정신과를 검색하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