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시간
언어 치료가 중단된 그날 이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가슴속에 무겁게 응어리져 있었다.
치료사의 판단이 양심적이고 정확하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했다. 하지만 100명 중 99등이라는 처참한 언어 발달 상태를 안고 있는 내 아이를 보며, 당장 수업을 멈추자는 그 말은 내게 일종의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싶어 이곳까지 왔는데, 정작 그들은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자며 한 발짝 물러나 버린 기분이었다. 길고 긴 복도를 걸어 나오며 뼛속 깊이 깨달은 것은 너무나도 서늘한 진실이었다.
기적을 바라고 찾아온 이곳에서 아이가 머무는 시간은 일주일에 고작 두어 번, 길어야 40분 남짓이었다. 그 짧은 시간이 끝나면 그들은 다음 아이를 맞이하며 문을 닫겠지만, 나는 24시간 내내 내 아이의 닫힌 문 앞을 지켜내야만 한다.
내 아이의 삶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훌륭한 전문가도 아닌 결국 ‘나’라는 서늘하고도 명백한 진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뼈아픈 깨달음은 감각통합 수업을 지켜보던 날 더욱 확고해졌다. 언어 치료를 내려놓고 비중을 늘린 감각통합 수업 시간.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답답함에 둘째를 안고 기웃거리자, 대기실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앉아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엄마들 사이. 나는 홀로 치료실 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 못한 채 작은 창 너머를 흘끗거렸다.
관찰창 너머의 치료실은 화려했다. 알록달록한 그네, 커다란 트램펄린, 푹신한 매트와 짐볼. 아이들의 감각을 깨워준다는 그 훌륭한 교구들 사이에서 치료사는 밝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 내 아이만은 마치 오려낸 사진처럼 철저히 혼자였다.
자신에게 내밀어진 교구를 외면한 채, 아이는 방 한구석을 맴돌며 무의미한 뜀박질만 반복하거나, 바닥의 작은 틈새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네에 태우려 하면 두 손으로 밀쳐내곤 뒷걸음질해서 물러나고, 트램펄린 위에 올려두면 잔뜩 겁을 먹고 얼어붙었다.
40분이라는 수업 시간 내내 아이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참여를 하지 못한 채, 낯선 공간과 자극들 사이에서 겉돌기만 했다. 그저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낯선 공간 속에서 여전히 길을 잃고 허공만 맴도는 내 아이의 작은 눈동자. 그 막막한 풍경을 지켜보던 나는 꽉 쥐고 있던 주먹에 천천히 힘을 풀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내 안에서 어떤 결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치료실의 문이 열리고, 아이가 표정없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그 손을 쥐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들어간 손길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내 손을 밀어내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이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해. 설령 일 년을 허비하게 되더라도, 아직 황금 개입기 안이니까... 괜찮을 거야. ‘
집이든, 놀이터든, 공원이든. 40분의 닫힌 방 밖에서 아무도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내가 내 아이의 가장 안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나던 시점.
나는 아이의 모든 수업을 잠정 중단했다.
황금 개입기라는 이 절대적인 시간을 오직 내 독단으로 허비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나고 미친 듯이 두려웠다.
하지만 낯선 공간에서 의미 없이 부유하는 아이를 매주 창 너머로 지켜보며 피가 마르느니, 차라리 온몸이 부서지더라도 내 식대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렇게, 굳게 닫힌 아이의 세계를 열기 위한 나만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