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

아무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시간

by 우리의 모든 순간

언어 치료가 중단된 그날 이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가슴속에 무겁게 응어리져 있었다.


치료사의 판단이 양심적이고 정확하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했다. 하지만 100명 중 99등이라는 처참한 언어 발달 상태를 안고 있는 내 아이를 보며, 당장 수업을 멈추자는 그 말은 내게 일종의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싶어 이곳까지 왔는데, 정작 그들은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자며 한 발짝 물러나 버린 기분이었다. 길고 긴 복도를 걸어 나오며 뼛속 깊이 깨달은 것은 너무나도 서늘한 진실이었다.


기적을 바라고 찾아온 이곳에서 아이가 머무는 시간은 일주일에 고작 두어 번, 길어야 40분 남짓이었다. 그 짧은 시간이 끝나면 그들은 다음 아이를 맞이하며 문을 닫겠지만, 나는 24시간 내내 내 아이의 닫힌 문 앞을 지켜내야만 한다.


내 아이의 삶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훌륭한 전문가도 아닌 결국 ‘나’라는 서늘하고도 명백한 진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뼈아픈 깨달음은 감각통합 수업을 지켜보던 날 더욱 확고해졌다. 언어 치료를 내려놓고 비중을 늘린 감각통합 수업 시간.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답답함에 둘째를 안고 기웃거리자, 대기실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앉아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엄마들 사이. 나는 홀로 치료실 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 못한 채 작은 창 너머를 흘끗거렸다.


관찰창 너머의 치료실은 화려했다. 알록달록한 그네, 커다란 트램펄린, 푹신한 매트와 짐볼. 아이들의 감각을 깨워준다는 그 훌륭한 교구들 사이에서 치료사는 밝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 내 아이만은 마치 오려낸 사진처럼 철저히 혼자였다.


자신에게 내밀어진 교구를 외면한 채, 아이는 방 한구석을 맴돌며 무의미한 뜀박질만 반복하거나, 바닥의 작은 틈새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네에 태우려 하면 두 손으로 밀쳐내곤 뒷걸음질해서 물러나고, 트램펄린 위에 올려두면 잔뜩 겁을 먹고 얼어붙었다.


40분이라는 수업 시간 내내 아이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참여를 하지 못한 채, 낯선 공간과 자극들 사이에서 겉돌기만 했다. 그저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낯선 공간 속에서 여전히 길을 잃고 허공만 맴도는 내 아이의 작은 눈동자. 그 막막한 풍경을 지켜보던 나는 꽉 쥐고 있던 주먹에 천천히 힘을 풀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내 안에서 어떤 결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치료실의 문이 열리고, 아이가 표정없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그 손을 쥐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들어간 손길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내 손을 밀어내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이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해. 설령 일 년을 허비하게 되더라도, 아직 황금 개입기 안이니까... 괜찮을 거야. ‘


집이든, 놀이터든, 공원이든. 40분의 닫힌 방 밖에서 아무도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내가 내 아이의 가장 안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지나던 시점.

나는 아이의 모든 수업을 잠정 중단했다.


황금 개입기라는 이 절대적인 시간을 오직 내 독단으로 허비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나고 미친 듯이 두려웠다.


하지만 낯선 공간에서 의미 없이 부유하는 아이를 매주 창 너머로 지켜보며 피가 마르느니, 차라리 온몸이 부서지더라도 내 식대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렇게, 굳게 닫힌 아이의 세계를 열기 위한 나만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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