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손을 놓는 법

보폭을 버리고 너의 틈을 기다리며

by 우리의 모든 순간

새근, 새근.

둘째의 고요한 숨소리가 울리던 방 안. 나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핸드폰 화면만 뒤적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촉각이 예민한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명확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나의 직감이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다친 세계를 다시 연결하려면 아이의 손을 잡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새벽이 깊어지고 다시 아침이 밝아오기까지 쉽사리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놀이터나 가봐야겠다.’


창밖으로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빛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이불을 덮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동네 놀이터로 향할 채비를 했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가장 밝은 목소리를 꾸며내며 활짝 웃었다.


"우리 손잡고 갈까? 엄마 손, 정말 따뜻한데~"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아이의 손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 온기가 닿기 무섭게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쳤다.


어떻게든 내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려는 그 서늘하고 완강한 몸짓 앞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서운함을 숨길 길이 없었다. 내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 알았어. 그냥 타고 가자."


결국 끌고 나오게 된 유아차. 나는 손잡이를 꽉 틀어쥐고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놀이터로 걸어가는 내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내 시야에 맺히는 건 오직 아이의 둥근 뒷모습뿐이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허공과 주변만을 두리번거리는 아이.


"오늘 날씨 참 좋다. 그렇지?"


인적 없는 가로수길. 밝게 건넨 나의 목소리는 매서운 겨울바람에 부딪혀 덧없이 흩어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보지 않는 작은 뒤통수를 향해, 나는 한 톤 더 과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놀이터 가서 재밌게 놀까?"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고요한 도로 위를 무심히 내달리는 자동차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웅웅거렸다. 나는 억지로 끌어올렸던 입꼬리를 허무하게 떨어뜨리며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나 지금… 대체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놀이터. 유아차에서 아이를 내려주자, 아이는 마치 고장 난 장난감처럼 멈칫거리다 의미 없는 움직임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짠! 발밑에 모래 만져볼래? 엄청 부드러워~”


모래를 가득 쥐고 모래시계처럼 천천히 떨어뜨려 보였지만, 아이는 나를 등진채 반대편으로 걸어가 버렸다.


미끄럼틀을 앞에 두고 멈춰 선 아이.

나는 재빨리 아이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미끄럼틀이야. 타볼까? 슝~ 재밌어!”


잔뜩 들뜬 내 얼굴을 철저히 외면한 채, 아이는 다시 등을 보이며 멀어졌다.


미끄럼틀 계단을 잡고 있던 내 손이 스르륵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나는 말없이 아이의 뒤를 따랐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시소가 들어왔다. 나는 한 번 더 달려가 과장된 목소리로 외쳤다.


“우와, 이거 엄청 재밌는 건데!”


시소에 올라탄 나는 손잡이를 잡고 일어섰다가 앉기를 반복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잠시 멈춰 시소를 훑던 아이는, 이내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겨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의 입가에서, 억지 미소마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고요한 저녁이 다시 찾아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을 응시하며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다. 정말...’


낮의 놀이터 풍경이 떠올라 입술 끝에 비릿한 웃음이 번졌다. 혼자 과장된 환호를 내지르던 나, 그리고 그런 엄마를 외면하며 멀어지던 아이.


우리를 기이하게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떠올라 명치가 욱신거렸다. 참담하고 또 비참했다.


‘..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까. 억지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그냥 따라다니기만 해야겠다.’


다음 날,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 차가운 바람이 휑한 놀이터를 거세게 훑고 지나갔다. 아이의 가냘픈 몸이 몇 번이고 흠칫거리며 움츠러들었다.


'나에겐 아무렇지 않은 이 당연한 바람조차, 너에게는 두렵고 낯선 자극이었구나.'


안쓰러운 마음에 곁으로 다가서서 품에 안아주려 했지만, 나는 또다시 아이의 두 손에 의해 차갑게 밀려났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얼굴, 첫걸음마를 떼며 내 품으로 쓰러지듯 자신의 몸을 맡기던 예전의 그 아이는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울컥,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해야 네가 다시 내게 올까.'


아이는 놀이터 구석구석을 조심스럽게 탐색했고,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그 뒤를 묵묵히 따라다녔다. 우리는 함께 있었지만, 철저히 각자의 섬에 갇힌 채 조용히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의미 없는 탐색만 지속되던 어느 날, 가만히 멈춰 서서 아이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문득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내가 닿을 수 있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나는 아이의 무의미해 보이는 몸짓들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하나의 행동 패턴이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제 보폭보다 조금 높은 화단 턱을 오르내리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리 힘이 부족한 탓에, 오를 때마다 크게 비틀거리며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잃었다.


'저러다가 넘어지겠는데….'


위태롭게 밑으로 내려온 아이는, 고집스럽게 다시 그 화단 턱 앞으로 다가섰다. 아이가 발을 뻗어 올리려는 찰나, 나는 팔을 뻗어 아이의 손을 쥐었다.


하지만 내 손은 곧바로 거칠게 뿌리쳐졌다. 다시 한번 손을 뻗었지만, 아이는 짜증 섞인 몸짓으로 나를 밀쳐냈다.


이번엔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실랑이하듯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손을 내밀었고, 마침내 아이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온몸으로 내 손을 밀어내며 저항하는 아이의 힘이 내 손목 위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완강한 저항을 이겨내고 억지로 손을 끌어당겨, 비틀거리던 아이를 안전한 화단 위로 번쩍 올려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두 발이 단단하게 땅에 닿은 그 순간.

나는 미련 없이 손을 놓았다.


내 손을 밀어내려던 아이는, 갑자기 사라진 구속에 잠시 휘청하더니 멍하니 나를 돌아보았다. 그 낯선 반응을 마주하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내 손은 억압이 아니라 지켜주는 손이라는 것. 다 내려놓고, 일단 그것 하나만 가르쳐주자.’


나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조용히 아이의 뒤를 따라나섰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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