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낯선 일상의 시작

포기하지 않는 연습

by 우리의 모든 순간

쉭, 쉭.

팽팽하게 부푼 짐볼은, 어느새 우리 집의 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바람이 가득 찬 짐볼을 안고 바닥에 앉아 있는 아이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나는 과장된 목소리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공놀이할까?"


그리고 아이를 향해 천천히 공을 굴렸다. 스르륵 굴러간 공이 아이의 발끝에 닿을 무렵이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던 아이의 몸이 일순간 멈칫하더니 굳어버렸다. 호기심이나 반가움이 아니었다. 공의 매끄러운 표면이 살갗에 제대로 닿기도 전,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손으로 거칠게 공을 쳐냈다.


탁.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튕겨 나간 공이 거실 구석으로 굴러가 처박혔다. 공을 밀쳐낸 아이는 곧바로 제 손을 털어내듯 만지작거리며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닿기 싫은 것을 밀어내듯 날 선 몸짓.

구석에 처박힌 짐볼을 바라보며, 나는 며칠 전 감각통합실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다른 건 모르겠고… 저랑 손이라도 잡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간절했다. 내 손만 잡아준다면 어떻게든 세상으로 끌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치료사는 아이를 가만히 살피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은 촉각이 많이 예민한 상태라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집에서도 짐볼이나 공을 통해서 익숙하게 만들거나, 불린 미역 같은 걸 만지게 하면서 촉감 놀이를 자주 해주시는 게 좋아요."


짐볼이 아이의 작은 손에 튕겨 반대편으로 굴러가는 것을 보며, 나는 애써 씁쓸함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짐볼을 다시 주워 들었다.

그리고 한 번 더,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향해 굴렸다.


"자, 한 번만 더 해볼까? 굴러간다!"


하지만 아이는 내게서 다가오는 공을 보더니 아예 기겁을 하며 거실 저 멀리로 도망가 버렸다. 구석으로 도망친 아이는 짐볼이 닿을 수 없는 안전지대에 자리를 잡고 등을 완전히 돌려버렸다.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은 짐볼과 나.

억지로 닿게 해 봐야 아이의 거부감만 더 키울 것이 뻔했다. 어떻게 해야 이 낯선 물건에 마음을 열게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짐볼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문득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연예인들의 짐볼 다이어트 영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엄청 재밌게 노는 것처럼 보이면, 호기심이 생겨서 다가오지 않을까?'


그 실낱같은 희망 뒤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작고 현실적인 타협안이 따라붙었다.


'뭐... 끝까지 관심을 안 보이면, 다이어트한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나는 TV를 켜서 유튜브를 틀고, 짐볼 다이어트 영상을 눌렀다. 경쾌한 음악 소리와 강사의 활기찬 구령이 멈춰 있던 거실의 공기를 채웠다. 나는 영상 속 강사를 따라 커다란 짐볼 위에 조심스레 올라탔다.


짐볼 위에 벌러덩 누워 허리를 앞뒤로 굴려보기도 하고, 짐볼 위에 앉아 위아래로 쉼 없이 통통 뛰기 시작했다.


"와! 이거 진짜 재밌다! 통통! 통통!"


출산한 지 백 일도 채 지나지 않은 관절이 비명을 질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나는 땀범벅이 된 채 허공을 향해 과장된 환호를 내질렀다.


내 몸을 부숴서라도 저 굳게 닫힌 세계에 틈을 내고 싶었지만, 내 절박한 시선이 가닿은 곳은 끝끝내 돌아보지 않는 아이의 작은 뒤통수뿐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흘렀지만, 아이는 내가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짐볼 쇼에 끝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도움이 될 거다’라는 치료사의 말을 떠올리며, 이게 다이어트라 위안하며, 그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짐볼 놀이를 이어갔다.


그리고 매끼 밥을 먹일 때마다, 식사가 끝나면 아이의 옷을 통째로 갈아입히고 바닥을 박박 닦을 각오를 하고, 식판을 준비했다.


아이의 손에 작은 숟가락과 포크를 쥐여 주고, 먹는 과정을 아이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미역국 속에 늘어진 미역 줄기를 조심스레 건드렸다.


미끈거리는 낯선 감촉을 만지작거리던 아이는, 이내 제 손에 묻은 국물과 밥알을 털어내지 않고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식탁 밑은 온통 밥풀과 미역 조각들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불린 미역으로 촉감 놀이를 해주라’ 던 치료사의 숙제를 식사 시간에 녹여냈지만, 사방으로 퍼지는 국물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다음엔... 국물 없이 해줄게. ”


짐볼 위에서 흘린 땀방울도, 사방으로 튄 미역국을 닦아내며 무릎걸음으로 보낸 시간들도 모두 내 몫이었다.


온몸에 밥알을 뒤집어쓴 아이를 욕조에 앉혀 씻어내리는 고단한 저녁. 나는 비누 거품과 함께 내 한숨을 삼켜내며,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지독한 하루들을 묵묵히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흐른 어느 오후였다.

그날도 나는 짐볼 위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거실 구석에만 머물던 작은 발소리가, 아주 천천히, 내 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내 곁에 멈춰 선 아이는 동그랗고 커다란 짐볼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조심스럽게 작은 손을 뻗었다.


톡.


아이의 여린 손끝이 짐볼의 매끄러운 표면을 살짝 건드렸다. 아주 찰나의 가벼운 터치였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짐볼을 타고 내 온몸으로 전해졌다. 조심스레 돌아보니, 아이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나는 행여나 그 작은 미소가 깨질까 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한 채, 조심스레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주 느리고 고단했지만, 우리의 낯선 일상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 작은 미소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나의 섣부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굳게 닫힌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어느덧 치료를 시작한 지 2주가 흐른 어느 날이었다.


평상시와 같이 품 안에서 잠든 둘째를 안고, 치료실 밖 대기실 의자에 앉아 첫째의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해진 40분의 수업이 다 끝나기도 전, 굳게 닫혀 있던 언어 치료실의 문이 열리며 치료사가 나를 불렀다.


'시간이 아직 안 됐는데... 무슨 일일까?'


품에 안긴 둘째가 깰까 봐 조심스레 일어나 치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방 한구석에서 장난감문을 열고 닫던 첫째가 보였다. 나는 방 한가운데 앉아있던 치료사의 앞에 앉았다. 치료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님... 수업을 계속 원하시면 진행하셔도 되는데요.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는 언어 치료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순간, 귓가에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의미가 없다니. 내 아이의 언어 발달 수준은 100명 중 99등에 가까웠다. 밑바닥을 치는 그 처참한 언어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 좁은 치료실의 시간표만 간절하게 붙잡고 버텨왔는데, 정작 전문가의 입에서 '의미가 없다'는 말이 돌아온 것이다.


언어를 끌어올리기 위해 간신히 붙잡은 동아줄이었는데, 정작 그 기초 공사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잔인한 선고였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곧 엄마라고 불러주겠지.' 내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얄팍한 희망의 모래성이 소리 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언어가 그렇게 많이 늦는데... 치료가 의미가 없다면,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내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치료사가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일단 지금은 감각통합 수업의 비중을 더 늘려서, 아이의 감각이 어느 정도 편안하게 올라오면 그때 다시 언어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막막했다.


나는 애써 튀어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며, 내 품에서 곤히 잠든 둘째의 작고 통통한 손가락만 아무 말 없이 만지작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무거운 대답을 남기고 나는 첫째의 손을 잡고 치료실을 나섰다.


복도 끝 창문으로 오후 햇빛이 길게 들어와 있었다.


품 안에서 새근거리는 둘째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복도 끝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첫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전문가에게 맡기기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이 길이, 생각보다 훨씬 캄캄하고 아득하게 길 거라는 사실을.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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