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멈춰 있던 시간
시간은 멈춘 것 같았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둘째에게 어울릴 것 같은 머리띠를 하나둘 장바구니에 담았다.
잊고 싶었다. 잠시라도.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홀로 진단하며 약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바빠서 미뤄두었던 아이들의 겨울옷을 고르며, 수많은 옷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비우기를 반복했다. 그 무의미한 손가락의 움직임만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 순간만큼은 그저 계절이 바뀌면 아이에게 새 옷을 입히는 평범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그 달콤한 착각 속으로 한없이 숨어들고 싶었다.
어느새 새벽이 깊어져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생각들에 잠기지 않기 위해 결국, 나는 또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뜬눈으로 지새운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밀려오는 피로에 눈꺼풀이 무거웠다.
식탁 위, 향긋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사이에 두고 남편과 나는 마주 앉았다. 머그잔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가, 먼저 그 무거운 침묵을 깼다.
"여보."
"응?“
"만약에…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남편은 커피잔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허공을 한 번 맴돌더니, 이내 내게로 향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직 어리잖아. ”
"하지만 검사할 때 아무것도 못 했어... 알잖아, 눈도 안 마주치고 불러도 안 돌아보는 거."
"괜찮을 거야. 아직 황금 개입 시기 안이야. "
'괜찮을 거야.'
남편의 그 말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다정한 방패였을 테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어가는 커피만 만지작거렸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남편이 말을 이었다.
”바람이라도 쐬러 갈까?“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던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내 마음을 깊숙한 곳에 넣어버리곤,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근처의 한적한 공원으로 향했다. 겨울 볕이 제법 따스하게 내려앉은 오후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는 우리를 뒤로한 채 탁 트인 잔디밭을 향해 곧장 내달렸다. 쉼 없이 앞으로만 멀어지는 작은 뒷모습.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흔한 웃음기 하나 없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바람을 맞으며,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달릴 뿐이었다.
우리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이의 발걸음만은 그 누구보다 가벼웠다.
“신났네. ”
남편은 동그란 공을 앞에 두고 아이를 불렀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작은 고개는 우리를 향하지 않았다.
“밖에만 나오면 호명반응이 전혀 안되네. ”
나는 아이의 흥분된 몸짓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신나서 그럴 수도 있지. ”
남편의 짧은 한숨이 들려왔다. 우리와 멀어지더라도 절대 돌아오지 않는 아이였기에. 그는 더 크게 아이를 부르다 결국 허탈하게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나는 긍정의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그래, 아직 어리니까. '
나는 내 품 안에서 새근거리며 잠든 둘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쉼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첫째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아이의 18개월.
모두의 세상을 마스크 뒤로 감춰버렸던 코로나.
세상과의 관계가 철저히 단절됐던, 그 서늘한 시절 한가운데서,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일상’ 속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