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묻지 못한 질문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일주일은, 속절없이 흘렀다. 나는 다시 그 차가운 진료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책상 너머에 앉은 치료사는 왠지 모르게 난처한 듯, 조심스러운 미소를 띠며 내게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어머님, 제가 좀 순화해서 적었어요."
순화. 그 두 글자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순간, 서늘한 예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있는 그대로 적어내면 내가 감당조차 못 할 만큼 상태가 나쁘다는 뜻일까. 상처받을 부모를 위해 차마 날것의 진실을 다 담지 못했다는 뜻일까.
당시의 나는 그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그 찜찜함을 직면하고 싶지 않아 애써 되묻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가 억지스레 닫아둔 입술 위로 치료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아이가 지금 18개월이긴 한데요, 현재 언어 수준을 고려해서 13개월에서 17개월 아이들이 쓰는 평가지를 기준으로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아… 네."
나는 애써 입꼬리를 작게 올려 보이며, 테이블 위에 놓인 결과지를 천천히 펼쳤다. 종이가 넘어가는 바스락 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렸다.
시선이 닿은 활자들은 처참했다. 18개월인 내 아이가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의 잣대로 평가받아 쥐게 된 생애 첫 성적표.
모든 언어, 100명 중 99등.
가장 기본이라는 사회적 제스처마저도,
100명 중 90등.
숫자들이 시야를 어지럽게 맴돌았다. 눈을 감았다가 깊은숨을 내쉬고, 다시 봐도 결과는 같았다.
숫자들이 시야를 어지럽게 맴돌았다. 바닥을 치다 못해 간신히 매달려 있는 낯선 수치들. 내가 일상에서 필사적으로 주워 모았던 긍정의 조각들이 그 숫자의 무게에 짓눌려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은 그 숫자들보다, 그 아래 빼곡히 적힌 평가자의 코멘트였다. 수많은 글씨들 속에서 유독 한 문장이, 날 선 가시처럼 내 눈을 계속해서 찔러댔다.
『아이는 주로 다른 곳을 보거나 반응하지 않았으며…』
그 짧은 문장 위로, 일전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수없이 반복해서 보았던 자폐 스펙트럼 관련 영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호명 반응 없음, 상호작용의 부재, 눈 맞춤 회피. 어두운 방 안에서 휴대폰 화면 너머로 나를 짓누르던 그날 선 단어들이, 내 아이의 진료 기록지에 활자가 되어 박혀 있었다.
‘순화해서 적었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인가요? 내 아이가 지금, 정확히 어떤 상태라는 건가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질문들이 혀끝을 맴돌았지만, 나는 끝내 입 밖으로 단 한 글자도 꺼내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의문이 비명처럼 내달렸고, 진료실의 무거운 침묵은 내 숨통을 조여왔다. 하지만 나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차마 묻지 못했다.
내 입술을 비집고 나간 질문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명확하고도 잔인한 선고가 되어 돌아올까 봐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갈 곳 잃은 내 두 눈은 파르르 떨리며 다시 결과지를 훑어 내렸다. 부정하고 싶은 활자들을 지나치고 미끄러지듯 내려간 시선은 마침내 맨 아래쪽, 단단하게 굵은 글씨로 적힌 ‘권고사항’이라는 네 글자 앞에 멈춰 섰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
이 암담한 바닥에서, 어떻게 해야만 내 아이를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마치 생명줄을 쥐려는 사람처럼 나는 그 단어들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동의 발성 및 제스처를 사용한 의사소통 기능 촉진, 놀이 발달을 통한 인지 기능 향상 및 상호작용. 또래 수준의 언어 이해와 표현 촉진을 위한 주 2회 이상의 언어치료 및 놀이치료를 권고함.』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 혹시, 치료하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아주 짧은 정적이 진료실 공기를 갈랐다. 그 찰나의 침묵이 내게는 영원처럼 길고 무겁게 느껴졌다. 이내 치료사가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말씀드리진 못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다.’ 그 조심스러운 방어선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내 시선은 다시 결과지로 향했다. 나는 마치 그 종이 속에 담긴 문장들을 하나하나 뇌리에 새겨 외우기라도 할 듯,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조용히 몸을 일으켜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데스크에 서서, 망설임 없이 권고사항에 적힌 치료 일정들을 잡았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카시트에 앉은 아이의 무심한 얼굴을 마주하자 머릿속이 지독하게 엉클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와 환하게 웃어주던 과거의 아이와, 나를 서늘하게 피하고 손을 거칠게 밀쳐내던 최근의 아이. 두 가지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떠올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애써 피하고 에둘러왔던, 단 하나의 명확한 단어를 검색창에 적어 넣었다.
‘자폐 스펙트럼’
혹시 내 탓이었을까. 둘째를 낳으러 가며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섰던 그 새벽이, 한 달이라는 부재가, 결국 내 아이를 이렇게 만든걸까.
확인하고 싶었다. 진료실의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차마 묻지 못했던, 내 안을 가장 지독하게 파고들던 그 잔인한 죄책감의 실체를 어떻게든 확인해야만 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새로고침을 반복하던 중, 나는 유명한 소아정신과 교수님의 강연 영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어폰 너머로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폐는 부모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양육 태도나 애착의 문제로 발생하는 질환이 아닙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되감아, 영상 속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나를 향한 면죄부 같았던 그 한 문장이, 귓가를 맴돌았다.
조용히 핸드폰 화면을 끄고 눈을 감았다. 나를 옥죄던 죄책감을 억지로 덜어낸 자리에는, 이제 어떻게든 이 아이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독기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 2회 언어치료, 그리고 놀이치료. 내 손에는 이제 막연한 불안이 아닌 구체적인 시간표가 쥐어져 있었다.
‘치료를 시작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다시 앙상한 희망을 꽉 붙잡았다. 치료는 길지 않을 것이고, 아이는 곧 예전처럼 내게 웃어 줄 거라고. 옅은 입김을 내쉬며, 우리의 차는 우리의 집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