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믿어 보기로 했다
덜컹.
진료실 문이 무겁게 닫혔다. 그 소리는 곧 노란 택시의 뒷문이 닫히는 소리로 이어졌다.
우리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택시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겨울의 도심 풍경이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로 택시가 천천히 미끄러졌다.
세상은 이토록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굴러가고 있는데, 나는 쫓기는 사람처럼 가슴이 뛰었다.
‘검사까지는 2주... 더 빠른 곳을 찾아야 해.’
깜빡. 깜빡.
일정한 소리가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그 소리에 맞춰, 조금 전 의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단순 발달 지연은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정확한 확인을 위해 검사를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단호했던 그 문장이 맴돌 때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동네 소아과와 발달 센터들에 다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거절 끝에 마침내 한 곳과 통화가 닿았다.
“네, 진료 가능해요. 다음 주로 예약해 드릴까요?”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무거운 입을 뗐다.
“... 혹시, 자폐 검사도 하나요?”
“아이가 18개월이라고 하셨죠? 아직은 너무 어려서 확진은 어렵고, 선별 검사는 진행해 볼 수 있습니다.”
”... 네. 그것도 같이 해주세요. “
짧은 통화가 끝났다. 휴대폰을 쥔 손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평온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가 보였다.
나는 살며시 다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밖에 뭐 재미있는 거 있어?”
하지만 아이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익숙하게 내 손을 밀쳐냈다.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맴돌다 툭 떨어져 버린 손.
나는 씁쓸하게 그 손을 거두며 아이의 헐렁해진 안전벨트를 단단히 고정시켜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가 바라보는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심한 겨울 하늘 위로 잔잔히 흘러가는 구름이 보였다. 나만 빼고 멀쩡하게 돌아가는 세상.
‘얼른 집으로 도착했으면 좋겠다...’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날 저녁, 나는 거실에 앉아 낮에 있었던 진료실의 장면을 끊임없이 곱씹고 있었다. 의사는 아이에게 작은 장난감을 쥐여준 뒤, 손을 내밀며 말했다.
”주세요. “
아이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그저 멀뚱히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의사는 아이의 이름을 거듭 불렀지만 무반응이었다.
그 이후 의사는 아이 손에 들린 장난감을 톡톡 두드리며 다시 한번 크고 명확하게 ‘주세요’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오직 제 손 안의 장난감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걸 할 줄 알아야 하는 거구나.’
문득 명절날 어린 사촌 동생들에게 ‘주세요’라며 손을 내밀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말에 까르르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에 쥐고 있던 과자를 건네주던, 그 당연했던 풍경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식탁 위 큰 통에 담긴 뻥튀기를 손에 잡으며 결연하게 다짐했다.
‘가르쳐보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의 곁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소아과 발달센터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4일.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나는 앵무새처럼, 아니 애절할 정도로 아이를 붙잡고 끝없이 ‘주세요’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내 손에 물건을 툭 얹어주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작게 웃었다.
‘거봐, 하면 되잖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를 말리듯 매달렸던 그 과정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오직 해냈다는 ‘성공’의 결과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 나를 지탱하는 얄팍한 동아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건네받은 검사지는 잔인하리만치 차가웠다. 빼곡하게 줄지어 선 ‘아니요’ 위로 무심하게 쳐진 동그라미들. 그 수많은 질문들 사이에서 아이에게 허락된 ‘예’는 손에 꼽힐 만큼 초라했다.
며칠 내내 필사적으로 가르쳤던 그 ‘주세요’ 하나를 제외하면, 아이가 이 시기에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은 참담할 정도로 없었다.
평가가 진행될수록 애써 붙잡고 있던 내 표정은 속절없이 굳어갔다. 나는 평가사의 눈치를 살피며, 묻지도 않은 변명을 구차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원래는 ‘주세요’도 못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며칠 가르치니까 곧잘 하더라고요.”
입 밖으로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내 속은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제발 좋게 봐주세요. 이렇게 가르치면 되잖아요... 그렇죠?’
내 시선에도 평가사는 그저 옅은 미소를 띠며 선을 그었다.
“그렇군요. 종합적인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도록 조급한 내게 주어진 것은, 또다시 숨 막히는 ‘기다림’뿐이었다.
“혹시 조금 더 빨리는 안될까요... “
“최대한 서둘러 보겠습니다. 결과 나오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뒤로 예약을 잡고 병원 문을 나섰다.
2022년 1월.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유난히 춥고 고요했던 거리. 나는 마스크 위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입김을 바라보며, 내 품에 안긴 작은 세계의 온기에 얼굴을 묻었다.
괜찮지 않을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은, 한없이 얼어붙고 있었지만. 유일했던 성공을 떠올리며, ’가르치면 될 것이다. 최악은 피할 것이다‘ 생각만 머릿속에 채워 넣으며.
그렇게, 천천히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