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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Aug 12. 2023

칸타오 섬

2023 아르코창작기금 선정작 (단편동화)   칸타오 섬


   자전거를 처음 타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빠는 원양어선을 타는 뱃사람이었는데 한번 나가면 한 달 넘게 배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왔다. 작년 여름 집에 온 아빠는 새 자전거를 선물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았던 나는 자전거를 잘 타지 못했다. 아빠가 뒤에서 잡아 주었지만, 번번이 넘어지고 무릎이 까져서 눈물 콧물을 흘려야 했다.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시범을 보여 주었지만, 내 자전거 실력은 늘지 않고 겁이 나서 주저앉고 말았다.

   아빠가 떠나던 날. 

   “가운아! 열심히 연습해서 내년 여름에는 태평양에 있는 섬에서 자전거 투어를 하자. 알겠지?”

   “응.”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학교 열등생이었다. 같은 반 성찬이가 나를 열등생이라고 놀려서 열등생이라는 말을 알았다. 수학 점수도 50점을 못 넘기고, 영어도 최하 점수를 받았다. 수업이 끝난 다음에는 따로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는 늦게까지 일했고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아빠는 내 성적에는 관심이 없었다. 

   “건강하게만 자라. 그러면 다 되게 돼 있어.”

   아빠는 성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빠가 떠나고 아빠가 올 때까지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탔다. 나도 아빠만큼 자전거를 잘 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다. 아빠는 4학년 학기가 시작될 무렵 소식이 끊겼다. 심한 풍랑에 실종된 사람은 아빠만이 아니었다. 섬 투어를 가자는 아빠는 오지 않고 집에는 아빠 자전거만 녹슨 채 남아있었다.

   지금은 키도 많이 자라서 이제는 아빠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돈다. 거의 매일 동네를 돌다 보니 자전거만큼은 동네에서 최고로 잘 탄다. 가끔 산 중턱에 만들어 놓은 산악자전거용 도로도 도전할 정도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동호회 아저씨들이 내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고 소질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오늘 학교 문방구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저씨가 철인 2종 경기 팸플릿을 보여 주었다. 문방구 앞에는 뽑기를 하거나 군것질거리를 사려는 아이들로 떠들썩했다.

   “너희들도 들었냐? 우리 동네에서 철인 2종 경기한다는구나. 2인 1조로 하는 경기인데 한 사람은 마라톤을 뛰고 한 사람은 산악자전거를 타는 거래. 마을 화합을 위한 이벤트로 하는 아마추어 대회라 코스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하니까 참가해봐.”

   문방구 아저씨가 팸플릿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자전거 잘 타는 사람이 매우 유리하겠네요.”

   짝꿍인 지민이가 아는 체를 했다.

   “제가 아빠랑 열심히 연습해서 나가 볼까요? 우승 상금도 아주 많네요. 흐흐”

   민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너는 자전거 타면 몸이 무거워서 만날 꼴찌로 들어오잖아.”

   지민이가 흥 콧방귀를 뀌었다.

   “자전거라면 가운이 네가 제일 잘 타지 않아? 네가 나가면 우승은 따 놓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니?”

   지민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맞아, 자전거는 가운이가 제일 잘 타지 가운아 한 번 나가봐라.”

   문방구 아저씨도 팔을 쳐들고 파이팅을 외쳤다.

   “네? 저···.”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 놓은 반찬을 꺼내 먹으며 전자레인지 위에 있는 아빠 사진을 뚫어져라 봤다. 자전거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는 역광이라 빛이 반사되어 얼굴이 뿌옇게 흐려 보였다. 아빠도 한때 산악자전거 동호회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배를 타기 시작하면서 동호회를 그만두었다는 사실도. 아빠가 계셨다면 철인 2종 경기에 참여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빠져나와 등산로가 있는 숲길로 향했다. 산악자전거 도로가 있는 산 중턱을 오르자 소쩍새 두 마리가 푸드덕 하늘을 날았다. 오늘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가늘게 엉킨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파고들었다. 좁은 오솔길이었다. 자전거 하나만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숲 깊숙한 곳까지 뻗어 있었다.

   길게 이어진 편백 사이를 빠져나가자 푹신한 이끼가 촘촘히 박힌 평지가 나왔다. 운동장만 한 크기의 평지는 마치 초록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보였고, 샛노란 꽃잎의 꽃들이 둘레를 감싸고 있었다. 내 입이 저절로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곳에 이런 멋진 곳이 있었다니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힘차게 달렸다. 새로운 길은 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조금 더 속력을 내자 울퉁불퉁 가파른 길이 나타났다. 몸이 휘청거려서 중심을 잡으려고 몸에 힘을 실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바위에 걸려 자전거를 감고 있던 체인이 벗겨지고 말았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야 하는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천천히 방향을 돌려 가는데 내가 열심히 달려왔던 길이 낯설었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모양이었다.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계곡을 따라가면 마을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걸었다. 체인이 풀린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해서 발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챙! 챙!’

   그때 숲 저편에서 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오두막에 양철지붕을 얹은 자전거 수리점이 가문비나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깊은 숲속에 자전거 수리점이라니 고개를 갸웃했다.

   수염을 깎지 않은 털보 아저씨가 자전거 뒷바퀴를 손보고 있었다.

   “자전거 고장 났니?”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숲에 자전거 수리점이 있네요.”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수리하러 오거든.”

   체인이 벗겨진 자전거를 아저씨 앞에 세웠다.

   “자전거가 많이 낡았구나.”

   “아빠가 타시던 자전거예요.”

   털보 아저씨가 연장을 가져와 체인을 걸었다. 기름칠을 한 다음 손으로 페달을 돌렸다. 바퀴가 천천히 돌다가 힘차게 원을 그렸다. 바퀴가 소용돌이로 변해 뿌옇게 흐려졌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니?”

   “신기해서요.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보여요.”

   “네가 무엇을 상상하느냐 따라서 무엇이든 볼 수 있지.”

   아저씨가 웃었다.

   어젯밤에 받은 용돈을 수리비로 주고 수리점을 빠져나왔다. 자전거는 기름칠해서인지 더 힘차게 돌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 찾으면 되는데 점점 더 길은 낯설기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리점 아저씨한테 길을 물어볼 걸 그랬다.

   그때 산악자전거를 탄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마을로 접어드는 길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전나무 숲을 지나고 넝쿨 식물이 나무를 감싸고 있는 굴곡이 심한 오솔길도 벗어났다. 그때 자전거 소리에 놀란 새들이 날아올랐다. 나는 문득 그 새가 하얀색 갈매기라는 걸 알았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바다는 3시간은 넘게 걸리는 먼 곳이다. 그런데 갈매기라니? 길을 잃은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저 멀리 숲의 경계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코끝으로 짠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한눈을 팔다가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가운아!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아야지. 포기하면 안 돼.”

   사진 속에 있던 아빠의 흐린 얼굴이 점점 밝아져서 또렷하게 보였다.

   “아빠?”

   우뚝 솟은 코와 곱슬머리가 나를 똑 닮았다.

   “아빠! 정말 아빠예요?”

   “그럼. 아빠지 이 녀석아.”

   아빠가 넘어진 자전거를 세우고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자전거 탈 때는 항상 조심해야지.”

   “그런데 여기는 어디예요?”

   숲을 벗어나자 가파른 벼랑 아래로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그 위로 갈매기들이 유유히 날고 있었고 바다 빛은 맑은 수정 빛으로 바닷속이 훤히 다 보일 것처럼 맑았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해운대 바닷가에서 멱을 감고 놀았던 기억이 다다.

   “이곳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칸타오란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이지.”

   “남태평양에 있는 섬이라고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같이 오자고 했잖니. 나랑 섬 투어하기로 한 약속을 벌써 잊은 거냐?”

   아빠가 내 머리칼을 흩트렸다.

   “이렇게 꾸물대다가는 우승을 놓치겠어. 우리는 지금 대회 참가 중이거든. 서둘러.”

   아빠가 앞서 달렸다. 그 뒤를 내가 따라갔다. 저 멀리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전거라면 자신 있었다. 힘차게 페달을 밟아 아빠를 따라잡았다. 

   앞서가던 까만색 곱슬머리 아저씨를 추월해 지나갔다. 얼굴이 하얀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소년도 가뿐히 지나쳐 달렸다. 뒤처진 사람들이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 멀리 결승선을 알리는 휘장이 펄럭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속력을 높였다. 뒤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던 아빠가 손을 흔들었다.

   내가 결승선을 통과하자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한참 뒤에 아빠가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우리 아들 장한데. 힘들어서 포기할 줄 알았는데.”

   “아빠 아들은 포기 같은 거 안 해요.”

   아빠가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었다. 내생에 최고의 순간이었다.


   해질녘 아빠와 바닷가를 걸었다. 섬 원주민들이 시원한 망고 주스를 가져와 건네주었다. 아빠랑 친분이 있는지 원주민 말로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때 발뒤꿈치에 뭔가 걸려 넘어질 뻔했다. 아빠보다 더 큰 땅 거북이 느릿느릿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와! 거북이에요. 정말 커요.”

   폰을 집에 두고 온 것을 후회했다. 이 섬에 있는 것들을 아니 아빠를 꼭 찍고 싶었는데. 나는 정말 바보다. 바다거북을 안아보기도 하고 먹이를 주며 놀리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해변까지 누가 빨리 뛰나 내기할래?”

   아빠가 먼저 뛰며 말했다.

   “반칙이에요.”

   나도 재빨리 아빠 뒤를 따라서 뛰었다. 아빠와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변을 달렸다. 모래사장에는 바다사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옆에 사람이 지나가도 모르는 척 늑장을 부렸다.

   숨이 차서 헉헉대고 있는데 누군가 콕콕 부리로 엉덩이를 쪼았다.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펠리컨이었다.

   “으악!” 

   너무 놀란 나머지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야! 저리 가. 놀랐잖아.”

   주먹으로 펠리컨의 주둥이를 툭 내려치자 펠리컨이 나를 노려보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덤빌 기세였다. 나는 얼른 아빠 뒤로 숨어서 잔뜩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커다란 새를 보았다.

   “아빠, 물지는 않겠지요?”

   “그러게 왜 새는 놀리고 그래. 하하하.”

   아빠가 크게 웃자 펠리컨은 부리로 모래를 콕콕 찍더니 뒤뚱거리며 멀어졌다.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이 물들여 놓은 바다가 붉게 변했다. 아빠 옆에 앉아서 아빠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었다. 아빠가 내 목에 걸린 조개껍데기를 가만히 매만졌다. 무리를 빠져나온 갈매기 한 마리가 바다로 자맥질해 물고기를 낚아챘다.

   “아빠, 저 갈매기는 왜 혼자서 물고기를 잡을까요?”

   “무리가 아니어도 먹이를 구할 만큼 자신을 믿는 게 아닐까?”

   “아빠, 저 갈매기는 용감한가 봐요.”

   “우리 가운이는 용감하지 않아?

   아빠가 소탈하게 웃으며 내 볼을 세게 꼬집었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아빠 품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빠, 이제는 아무 데도 가지 마세요. 늘 함께 있어요.”

   “그래, 아빠는 항상 가운이 옆에 있을 거야.”

   아빠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아빠 얼굴이 햇살에 가려 뿌옇게 보였다. 오늘은 하루는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다. 피곤해서 눈이 저절로 감겼다.

   “얘야, 여기서 잠들면 안 돼.”

   털보 아저씨가 나를 깨웠다. 숲을 비추던 햇살이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빠랑 바다는요?”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숲에서 잠들면 위험해. 돌아가는 길은 저쪽이란다.”

   사방이 울창한 나무로 가득한 곳에 내가 바위에 기댄 채 누워있었다. 내가 자전거를 세우자 아저씨가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혼자서 산악자전거를 타다니 아빠가 대견해하시겠구나.”

   아저씨가 살짝 윙크했다. 아빠와 함께했던 자전거대회 우승 순간을 떠올리자 가슴속이 뜨겁게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철인 2종 경기가 있는 날, 나는 산악자전거 출발선에 서서 문방구 아저씨가 힘겹게 마라톤 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마라톤 선수였다는 아저씨는 제일 마지막으로 25번이 적힌 파란색 끈을 내 목에 걸어주었다. 나는 앞서 달려가는 산악자전거를 따라잡기 위해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숲 가운데에서 지민이와 민호가 열렬히 응원했다.

   “가운이 파이팅! 최고! 최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지만 힘센 어른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땀이 비 오듯 해서 언덕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경기위원이 달려왔다

   “너 괜찮니? 어른들이 타는 자전거를 너 같은 어린아이가 타다니 정말 대단한데. 힘들면 포기해도 돼. 지금도 아주 훌륭하니까.”

   “아니 괜찮아요. 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아빠랑 약속했거든요.”

   경기위원 아저씨가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모두 빠져나가고 숲에는 햇살과 나만 남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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