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성격
성인 글쓰기 이전에 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동화를 쓰다 보니 다른 어른에 비해 아이들과의 소통이 자연스럽다. 같이 웃고 고민을 나누며 수업하다 보면 감성 수업으로 흘러가기 쉬운데 아이들과의 소통이 극에 달하면 창의적인 토론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주로 말로 하는 토론을 하다 보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의 생각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정리하고 스스로 그 결과물을 만드는 것인데 그 부분을 기다려 주는 부모가 많지 않았다.
아이와의 수업보다 부모와의 상담 전화 한 통에 지쳐갈 때쯤 일에서 손을 놓기로 했다. 마지막 수업, 말썽만 피우던 남자아이가 이젠 달라지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건넸다. 그리고 무심코 건넨 사탕 한 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내가 그 사탕 한 알을 받기 위해 그동안 그렇게 아등바등했구나! 생각하니 허무했던 그동안의 일들이 새삼 다르게 나타났다.
아이가 준 사탕 한 알이 나의 마음에 울림을 준 것처럼 비싸고 큰 선물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운동 삼아 동네 산책을 한다. 동네를 걷다 보면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을 만날 수 있다. 봄에는 봄꽃이 피고, 여름에는 여름꽃이 피고. 가을에는 노랗게 은행잎이 물든다. 어떤 때는 혼자 보기 아까운 예쁜 꽃이 담장 옆에 피어서 내 발끝을 살피곤 한다.
처음에는 꽃을 SNS에 올리려고 찍었다. 그러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가족 톡에 장미꽃 사진을 올리고 남편을 위한 꽃, 노란 민들레는 딸들을 위한 꽃, 하얀 들국화는 아들을 위한 꽃이라고 콕 찍어 특정 지어 주었더니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내가 더 즐거웠다. 때로는 사소한 관심 하나가 삶의 가치를 채운다.
날씨 좋은 주말 딸과 함께 태화강 국가 정원을 찾았다. 태화강을 따라 양귀비꽃이 넓게 펼쳐졌는데 사람들은 그 속에서 마음속 여유를 찍어 폰에 저장했다. 그때 노부부로 보이는 분들이 내 옆을 지나다가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그분들의 폰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폰 사진기 앞에 선 분들의 표정이 굳어있어 정중하게 “웃으세요”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어색한 듯 환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나의 장난스러운 부탁 때문에 꽤 괜찮은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었고 두 분도 사진을 보며 만족한 얼굴로 가볍게 눈인사하고 천천히 꽃밭으로 나 있는 좁은 길로 사라졌다.
만족스러운 두 분의 얼굴을 보니 사탕 한 알의 아이가 떠 올랐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탕 한 알을 전한 일이 있었나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늘 받기만 하고 마음의 선물을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꼭 주는 사람은 주고, 받는 사람은 받는 것에 익숙해서 주는 것에 인색하기 마련이다. 사탕 한 알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에 대한 나의 삶의 방향도 조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 감사의 달을 보내며 생각해 본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대공원에 장미축제를 한다고 한다. 울산 곳곳을 돌아보며 꽃을 눈에 담아 보는 것도 삶의 큰 즐거움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꽃에도 성격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꽃은 색깔과 향기만 있는 줄 알았다가 동네를 산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똑같은 장미라도 어느 집 담 안에서 보살핌을 받는 꽃도 있고 길가에 아무렇게나 뿌리를 내리고 빨갛게 꽃을 피운 장미는 스스로 가진 이야기도 다르다.
감사의 달, 환하게 불 밝힌 꽃을 보며 사탕 한 알을 전할 수 있는 속 깊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사탕 한 알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속 깊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탕 한 알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그 한 알이 주는 달콤한 맛만 알게 하여도 뜻깊은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