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송이

눈꽃송이

by 최미정

겨울바람이 차다. 창밖을 보는데 눈발이 날렸다. 조그맣게 부푼 하얀 눈송이들, 눈 귀한 울산에서 눈을 보는 것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추억을 소환하기 충분한 상징성을 지녔다. 송이송이 내리는 눈을 보면 서덕출 시인의 동요가 떠오르고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피아노 선율에 맞춰 노래하다가 교실 창밖에 내리는 눈에 와! 소리 지르든,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도 떠오른다.

눈은 내릴 때 세상을 환하게 밝힐 것처럼 아름답지만, 눈이 쌓여서 녹을 때면 질퍽해지고 진흙탕이 되어서 운동화나 바짓가랑이가 더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눈이 주는 따뜻한 느낌은 그런 수고로움을 덜어주고도 남을 만큼 운치를 더한다. 눈은 한없이 다정한 존재이고 눈과 함께 한 추억은 두 배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나타나곤 한다.

그날은 초등학교 교실에 작은 실랑이가 있어서 선생님께 벌을 받은 날이었다. 우울하기 짝이 없던 날, 창밖으로 송이송이 눈발이 흩날렸다. 아이들은 책은 뒤로 하고 눈 구경을 하느라 눈만 반짝였는데 나는 한없이 침울한 얼굴로 눈의 정경을 마음에 담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은 눈을 보려고 운동장으로 달려가고 나는 힘없이 교실을 나왔는데 하얗게 내리던 눈이 어느 순간 비로 변해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옅게 쌓였던 눈은 녹아서 질퍽해지고 아이들은 비를 맞고 집에 갈 생각에 너나없이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교문 앞에 우산을 든 엄마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를 발견한 아이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 번지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고, 남은 아이들은 현관에 빽빽하게 모여서 발만 동동 굴렀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른다고 끝날 일이 아니어서 나는 무작정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낯익은 모습은 우산을 들고 오시던 아버지였다.

늘 무뚝뚝하시던 분이 우산을 들고 오시다니, 나는 잠시 놀라서 멈칫 섰다가 아버지의 우산 속으로 성큼 뛰어 들어갔다. 눈이 내리면 그날의 기억이 소환되는데 아버지의 무뚝뚝한 이미지가 따뜻함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린다면 나 역시 우산을 들고 아이들의 학교로 찾아가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요즘은 접는 우산도 잘 나오고 학교에서 여분으로 빌려주는 우산도 있고, 차로 픽업하는 일도 많아서 소소한 마음을 전하는 일은 뒤로 밀려난 것이다.

시대도 흐름이 있어서 찰나에 따뜻함을 품게 하는 일에도 요령이 있게 마련인데 나는 그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이미 다 커버린 것 같아서 아쉬움만 남는다.

남편과 아들이 눈산을 보겠다고 등산을 계획한다. 울산에서 눈을 보려면 일부러 험한 산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자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일이니 그리 나쁜 일만도 아닌 것 같다. 눈이 주는 상징성 때문에 사람들은 눈을 찾아 떠나고 떠나기 전에 부푼 희망처럼 눈 쌓인 하얀 풍경에 추억을 담아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고즈넉한 겨울밤, 멀리서 찬 겨울바람 불어오고 어느 곳에, 하얗게 내릴 눈을 상상하며 서덕출 동시인의 눈꽃 송이 동요를 소리 내어 불러본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 밖에도

골고루 나부끼네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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