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차가운 바람에도 꽃은 피었다. 봄이 온 것이다. 얼굴에 닿는 바람은 차도 꽃잎은 봄을 맞을 준비로 앞서 손을 내밀었다. 봄이 오면 땅을 딛고 일어서려는 아지랑이처럼 가만히 앉아서 세월을 보내기가 무색해진다. 그래서 봄 길을 걸어서 몸의 기운을 깨우기로 했다. 마음은 햇살이 머무는 저 먼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데 내 체력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질척거렸다. 속도는 붙지 않고 마음만 조급해졌다. 추운 겨울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탓이다.
느리다는 것은 세상을 사는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수업 중에 만난 1학년 남자아이가 느린 남자아이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들었다. 축구게임에서 느린 아이는 항상 벤치행이다. 넓은 운동장을 달려보고 싶은데, 무리에 끼지 못하면 기회조차 얻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소소한 결핍에 무너질 때가 있다. 세상 안에서 주눅 들게 하고 외로움 느끼게 하는 작은 결핍들에 용기를 잃는다.
대지에는 새싹들이 앞다투어 자라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지만, 모든 싹들에 햇살이 골고루 빛을 뿌리는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다. 이름이 같아서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을 이야기 나누다가 더 마음을 열게 되었다. 같이 숙제를 공유하고 군것질거리를 찾아 골목을 같이 걷기도 했다. 그렇게 1년 넘게 친한 사이로 즐겁게 보냈는데 우연히 체육 시간에 같이 손을 잡아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는데 친구가 머뭇머뭇 뒤로 물러나더니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눈치를 보며 내가 재차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친구도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는데 손을 제대로 펴지 못하더니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네 살 때 손에 화상을 입어서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이후 친구와 나 사이에는 조금씩 틈이 벌어졌다. 친구는 나를 보면 피하기에 바빴고, 나는 그런 친구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그렇게 둘은 멀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작은 결핍을 안고 산다. 느리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잘 못하거나 하는 것들, 남이 보기에 별일 아닌 것 같아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에 발목을 잡는 작은 요소들이다.
봄 햇살이 내려앉은 길을 한 걸음씩 내디딘다. 무뎌진 내 몸에도 조금씩 에너지가 생긴다. 내친김에 동네 헬스장을 끊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 헬스트레이너를 만났다. 나처럼 왜소한 몸을 가진 사람이 어쩌다 헬스트레이너가 되었을까 궁금했다.
“다리를 다친 적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돈을 벌게 해준다며 웃었다. 어쩌면 이 봄에 해야 할 일이 극복해야 할 과정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평소 체력이 약해서 쉽게 지친다. 글을 쓸 때도 쉽게 피로해지고 흐름이 끊겨서 미완성인 채로 남겨놓은 글들이 쌓여갔다. 세상에는 교환 아닌 것이 별로 없다. 좋은 글을 얻고 싶다면 가치 있는 것을 내 주어야 한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위압감이 드는 기구들로 몸을 단련해야 하는데 기구를 쓸 때마다 찾아오는 것은 통증이다.
“모든 운동은 버티는 거예요. 그래야 근육이 생겨요.”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이 있을까? 체력도 글쓰기도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고통을 겪으며 그 속에서 배운다. 내 몸도 다양한 조각들이 있고 그 조각들을 단련하는데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쓰인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웠다. 작은 동작 하나가 다양한 조각들을 단련시킨다는 것을.
오늘도 작은 문장 하나를 필사하고,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매일매일을 습관적으로 글과 친해져야 하는 글쓰기에도 버티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