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누룽지 같은 삶

by 최미정

이른 아침 누룽지를 끓인다. 구수한 향이 아침을 깨운다. 햇살은 부엌 창문으로 들어와 부서지고 미처 떠지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길게 기지개를 켠다. 오늘 아침은 누룽지 냄새로 유년 시절의 그리움을 소환했다.

밥이 더 대접을 받고 누룽지는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때가 있었다.

내가 일곱 살 때 가끔 동생 집을 방문했던 고모가 ‘너는 떫은 감이야’라고 놀리셨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바구니 안에 담긴 맛있는 단감 대신 떫은 감은 단지 구색 갖추기 정도밖에는 안 된다는 걸 알았을 때의 상실감이란.

시골살이 형편이야 다 그만그만해서 아들 둘에 딸 하나여도 대식구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넷째가 딸이라니 가족 건사하려고 힘든 농사일로 검게 그을린 동생의 고생이 안쓰러웠을 것이다.

누룽지는 메인인 밥 대신 후루룩 마시기 좋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특별하게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끊임없이 증명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지녔다.

그것이 스스로 힘들게 할 때가 많지만 또 힘든 만큼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될 때도 있다. 한때 승승장구하는 남편 옆에서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던 살림살이에 한숨 쉬던 시절이 있었고. 학교 학부모 회의에서 반장 엄마의 주장에 눈치껏 박수 쳐주는 누룽지 같은 삶을 살면서 나는 뭔가? 그저 누룽지구나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누룽지가 물에 녹아들고 모랑모랑 김이 오르면서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마트에서 산 누룽지도 누룽지값을 하는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요즘은 쌀보다 누룽지가 떨어지면 아쉬운 생각이 더 드는 것은 누룽지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달라진 것일 테다.

쌀 소비량이 줄고 있다고 한다. 쌀을 대체할 만한 것들이 쏟아지고 홀대받던 다른 먹거리들이 환영받는 시대가 되었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가 또 있을까? 틈새시장을 잘 노려야 성공한다는 말은 모든 시대에 통용되는 말 같다.

조금 부족해도 변두리 외떨어진 곳에 살아서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도 언제 어디서 누룽지 같은 대접을 받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럽게 울고 있는 조카에게 고모는 작은 사탕 한 알을 건네며 가볍게 미소를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커서 할머니같이 다정했던 분께 '떫은 감도 씩씩하게 한몫하고 산답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또한 이 세상의 누룽지들에게 언젠가는 가마솥 뚜껑이 열리고 밝은 햇살을 가득 품을 날이 온다고 말해주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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