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붕어 낚시를 하다.
충주댐이 생기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낚시가 아주 잘 됐다. 고기는 크지 않았지만 힘이 좋고 물이 맑았고 무엇보다 주위 경치가 좋았다. 물론 지금도 경치는 좋다. 그래서 낚시꾼들이 항상 많았고 승용차 소유가 일반적이 아닐 때라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가던가 혹은 낚시회에서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갔다.
그날도 충주댐에 낚시를 하고 있었다. 비가 오다가 멈춰서 다시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고 있는데 옆에 낚시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저기가 장독대 있던 자리 아냐? 갑자기 깊이가 낮아지는데?”
“조금만 옆으로 던지면 부엌이니까 그쪽으로 던져봐.”
대화가 이상해서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설명은 이랬다.
여기가 댐이 생기기 전에 자기가 살던 마을이고 바로 이 자리가 자기가 수몰되기 전 자기 집이라고 했다. 그 사이 물이 차고 빠지며 담장들은 허물어지고 지붕도 없지만 분명히 자기들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는 거다. 지금 형제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도 잠자고, 밥 해 먹고 놀던 동네의 자기 집 부엌에, 장독대에, 안방에다 고기를 잡겠다고 낚싯대를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이 공간은 그럼 과거에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조선시대로 올라가면 분명히 나무가 울창한 숲이었을 가능성 높고 아파트 3층 높이니까 아마도 아름드리나무 꼭대기쯤이 아닐까? 지금 나는 과거 나무 꼭대기였던 공간에 앉아서 생활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생활공간은 아파트가 부동산(움직이지 않는 재산)이니까 고정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지, 아파트는 지구 위에 있고 지구는 움직이니까 이 공간도 계속 변하고 있겠지.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일 년에 한 바퀴씩 도니까 일 년에 한 번은 같은 곳을 지나갈까? 그런데 자전도 하잖아. 그러니까 자전도 하면서 공전하는 지구 위에 나의 공간이 일 년에 한 번 겹치기도 쉽지 않겠지. 더구나 우리 지구를 데리고 있는 태양은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지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의 공간은 다시 올 수 없음이 확실하다.
우주 안에서 내가 있는 공간(수학에 좌표)과 네가 있는 공간 중 누가 더 유리한 공간인가? 어느 좌표가 가장 좋은 자리인가? 도봉동인가 쌍문동인가? 인천인가 부산인가? 미국인가 영국인가? 지구인가 화성인가? 태양계인가 북극성계인가? 우리 은하인가 외부 은하인가?
공간에 대해 말할 때 차원이라는 개념을 이용한다. 일 차원이란 선이다. 이 차원인 면을 자르면 그 자른 단면은 선이다. 일정한 길이의 선 안에서는 움직이는 길은 좌나 우 두 가지밖에 없다. 만약 중앙에 있는 A와 오른쪽에 있던 B가 오른쪽 끝으로 먼저 도달하는 경주를 할 경우 A가 불리하고 왼쪽 끝으로 먼저 도달하는 경주를 할 경우 B가 불리하다. 즉 유리한 곳과 불리한 곳이 생긴다. 선의 중앙에 있는 점과 선의 가장자리에 있는 점은 성질이 다른 점이다.
그럼 일 차원의 모든 점들이 유불리 없이 공평한 위치에 있을 수는 없을까? 양쪽 끝을 붙여 원을 만들면 된다. 그 원주 위의 모든 점들은 완벽히 동등한 자격임이 자명하다. 모든 점들은 한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움직이기 전 자기 자리가 나온다. 반대쪽으로 가도 마찬가지다.
이 차원은 면이다. 삼차원을 자른 단면인 평면 위의 점들은 동등한 성질의 점들이 아니다. 평면의 가장자리가 있고 평면의 중앙에 자리한 점도 있다. 인구가 많아지면 평면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사람부터 밀려 떨어진다. 그럼 모든 평면 위의 점들이 동일한 자격을 갖는 민주적인 평면은 없을까?
평면을 구부려 구(球)를 만들면 된다. 구면 위의 모든 점들이 완벽히 같은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구 면에서는 갈 수 있는 방향이 무한이 많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똑바로 만 가면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이는 구면 위의 어느 점이나 동일하다.
그렇다고 축구공 위의 개미들의 지위가 모두 같다는 것이 아니다. 개미들은 축구공 위에 있는 것과 아래 있는 것이 많이 다르다. 중력에 의해서 위와 아래라는 변수가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地球)는 중력도 위아래를 바꾸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구 중심에서 작용하는 만유인력은 지표면의 모든 물체를 지구 중심으로 그 질량에 비례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 위의 모든 점들은 민주적으로 동등한 점들이다. 즉 도봉동이나 쌍문동이나 평면적인 지위는 완전히 같다.
삼차원은 공간이다. 사차원을 시간 축으로 자른 단면인 공간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의 어느 곳이 유리한 좌표인가? 과연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 놓인 것이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 놓이는 것보다 유리한가? 자연은 민주적인가? 사회 문화, 기후 환경과 같은 요소는 빼고 순전히 물리적인 것만을 다루는 중임을 명심하자.
공간에서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은 무수히 많다. 앞뒤 좌우뿐만 아니라 위아래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계속 가다 보면 움직이기 전위 위치로 돌아온다면 이 우주는 우주의 모든 좌표가 동등한 것이 된다.
나는 70년 가까이 이 세상을 보아온 눈치, 혹은 통찰로 자연은 민주적이며 시공간의 어느 좌표나 동등하다고 본다. 즉 우리 은하의 처지나 외부은하의 처지가 완전히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증명하려면 우주의 한쪽으로 끝까지 가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지 보면 되는데 빛의 속도로 가도 수백억 년이 걸릴 것이므로 실험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