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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야

인생은 요야의 파동이다

by 탄주

부처님은 신분제도가 엄격한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났다고 한다. 태어나 보니 왕자다. 한편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왕자로 태어난 이는 죽을 때까지 행복이 보장되고 천민으로 태어난 이는 일생을 불행하게만 살아야 할까? 과연 그럴까?

만약 행복을 무게나 부피처럼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왕자로 태어난 사람과 천민으로 태어난 사람의 평생 행복을 비교한다면, 과연 왕자로 태어난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았을까?

누가 더 좋은 옷을 입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가, 편안하고 좋은 집에서 사는가 등을 측정해 반영해야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각자에게 주는 만족도는 주관적이어서 계량하기 어렵다.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를 모두 계량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가정하고,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순간의 만족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한다면, 자연은 민주적이고 대칭적이므로 왕자로 태어난 이와 천민으로 태어난 이의 평생 행복도는 같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살면서 느끼는 감정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쪽을 ‘요’라 하고 슬프고 나쁘고 불행한 쪽을 ‘야’라고 정의하고 위 추정을 증명할 수 있는 수많은 경우를 귀납적으로 살펴보자.

왕자로 태어난 이는 평생을 굶을 걱정 없이 당대에 가장 좋은 음식으로 밥상이 차려질 것이다. 모든 끼니를 고급 뷔페로 식사를 하면 과연 매번 행복할까 아마도 처음 몇 번은 그럴지 모르지만 그게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음식으로 인한 요는 없어진다. 그 대신 상황이 변하여 평소보다 못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을 때(그래도 평균보다 나은)는 야가 발생한다. 음식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요야가 동시에 존재한다.

천민으로 태어난 이는 남들이 안 먹는 질 나쁜 음식으로 끼니를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구걸해서 먹는 음식이 왕자의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을 확률이 높다. 맛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고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맛있다는 것은 모두의 경험으로 안다. 왕자는 배고플 기회가 없을 것이므로 배고플 때 먹는 음식 맛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 낚시나 캠핑 가서 먹는 라면 맛과 집에서 먹는 라면 맛을 비교해 보자. 왕자보다 천민이 음식을 맛있게 먹을 확률이 크고 대신 천민은 음식을 얻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해야 할 확률이 크다.


지금 우리의 아파트 생활이 조선시대 왕이 살던 궁궐보다 불편한가? 장단점은 있지만 궁궐에서 살던 왕이 아파트에 사는 우리보다 더 많은 요가 생겼을 것이라 동의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궁궐은 겨울에 난방은 지금과 차이가 없겠지만 여름 냉방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했을 것이다. 지금 평범한 사람이 누리는 주거환경이 조선시대 왕이 누리던 주거환경보다 우수하다.

어렸을 때 영화에 나오는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그와 비슷한 집에서 사는데 과연 생각한 대로 만족하는가? 우리의 요는 없던 전용 책상, 전용 침대가 생기거나 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우리 몸이 거기에 적응해 버리면 그러기 전과 마찬가지의 요로 돌아가 버린다. 우리의 요는 변화율에 반응하는 것이다.

우주에서 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속도의 변화만을 느끼는 것과 같은 원리다. 주거 환경이 좋은 데서 나보다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 처지에서 개선되는 변화가 있을 때가 요가 더 크다.

매일 좋은 음식만 먹는 사람과 매일 보통 식사를 하는 사람의 요는 동일하다. 좋은 음식보다 더 좋은 음식 보통 식사보다 더 좋은 식사를 할 때 요가 생긴다. 즉 요는 변화율에 반응한다. 반대로 더 안 좋은 음식을 먹을 때 야가 생기고, 우리의 식생활에서 상황에 따라서 더 좋은, 더 나쁜 식사를 할 수 있으므로 요야는 거의 동일한 확률로 생기고, 이는 빈부의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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