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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안전장치-죽음

죽는다는 것

by 탄주


주식시장에 ‘상한가, 하한가’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주식이 비정상적으로 너무 오르거나 내릴 때 하루 동안 그 이상이나 이하로는 가격이 움직일 수 없다는 제 한 선이다. 주식시장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고스톱 화투에도 상한가가 있다. 고스톱에서 피박, 광박, 쓰리고, 훠고,.. 등등 배로 늘어나는 규칙에 의해서 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고스톱판이 깨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이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하한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죽음이다. 고양이에 잡혀간 쥐가 생살이 찢어지며 먹혀도 죽지 않는다면 쥐는 이 고통을 그대로 감당해야 한다. 불난 집에서 탈출할 수 없을 때 죽음이라는 하한가가 없다면 살이 타는 고통을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 죽음은 생을 파탄으로부터 지키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고등어나 멸치 같은 포식자에 취약한 동물일수록 잡히자마자 금방 죽는다.

똥밭에서 구르더라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보통 죽기 전의 상황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기 때문에 죽음을 과도하게 불행한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의학은 다양한 기술에 의해서 옛날이라면 벌써 죽었을 목숨을 연장할 수 있다. 그것이 본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과연 똥오줌 받아내고 목에다 생명 연장 장치를 주렁주렁 달고서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할 수 있는가?

내 생각에 더 이상 생명 연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 때 내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그것을 가능케 하는 법적인 제도가 없다. 시간이 문제지 앞으로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그런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되어 가리라 생각한다.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의료진에 의해서 더 이상 사는 것이 무의미해졌을 때 생명 연장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인정한다. 자식 된 입장에서 그런 결정을 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미리 관청(의료보험 공단)에 새명 연장 거부 의사를 등록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노승이 눈과 귀 코에 폐(閉)라고 쓴 종이를 붙인 다음 나룻배에 장작을 쌓아놓고 촛불을 놓아 불을 붙인 후 그 위에 앉아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스님은 의학적으로 불치의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생명 연장 장치의 의해서 유지되는 삶도 아니었다. 삶의 본질을 평생 천착한 고승의 죽음이 필부의 죽음과 판이함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고승 두 명이 잡담을 하고 있다.

“내달 중순 경에 위쪽 암자에서 열반 예정이네.”

“자네 장례가 끝나고 1년 정도 있다가 그 암자에서 앉은 상태로 가볼까 생각 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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