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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30.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10

단편 소설

남은 것은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뿐이었다. 회담이 끝나면 바로 귀국이었다. 방문한 나라마다 그 나라의 대통령, 수상, 총리들과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그동안은 경호에 신경 쓰느라 회담 내용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대통령과 각료들의 표정을 보고 뭔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마지막 회담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자연스럽게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원래 정상회담은 실무자들 사이에 대부분의 내용이 합의된 후에 성사된다. 대통령은 약간의 세부적인 항목과 표현을 조율해서 서명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무자들 사이에 합의가 되지 않거나, 상대 정상이 갑자기 의제를 꺼내는 경우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중요한 협상과 결정을 해야 한다.


이탈리아 총리는 대한민국 인터넷 쇼핑몰에 떠도는 불법 카피 제품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과 규제를 요청했다. 총리는 태블릿 PC로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을 캡처한 이미지를 불법 카피의 예로 보여줬다. 옷, 가방, 신발, 벨트, 시계, 우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카피 제품은 정품보다 반값 이상 쌌고, 심한 경우 가격이 10분의 1인 것도 있었다. 익숙한 무늬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아내가 들고 다니던 가방과 같은 것도 있었다. 아내도 아마 정품이 아니라 카피 제품을 샀을 것이다. 


-여기 오기 전에 교황을 만나고 왔습니다. 구약성경에 이런 말이 있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가만히 듣고 있던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면서 총리가 보여준 이미지 중 하나를 확대했다. 총리가 정품이라고 보여준 사진이었는데, 무슨 패션쇼 사진인 것 같았다. 연분홍의 블라우스의 앞섬에 옷고름 같은 것이 달린 옷이었다. 대통령은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검색해 한복 사진을 몇 장 보여줬다. 


-이건 2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전통의상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쇼핑몰에서 디자이너의 옷을 카피한 게 아니라, 귀국의 디자이너가 한국의 전통의상을 참조한 것 같군요.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이탈리아 총리가 보여준 이미지 중 몇 개의 허점을 공격했다. 즉흥적으로 검색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한 번에 필요한 사진을 찾는 것을 보면 미리 연습을 한 것 같았다. 이탈리아 총리는 펄쩍 뛰었고, 반박과 재반박이 오갔다. 나도 한국 사람이니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의 말은 서로 절반씩 맞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카피한 제품들도 있었고, 카피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것들도 있었다. 


두 정상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급기야는 대화가 문화와 전통 역사까지 이어졌다. 로마와 고조선까지 언급되었다. 


-우리 집이 더 좋아.

-아냐. 우리 집이 더 좋아. 


아이들의 말싸움 같았다. 대통령이 자신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어린 이탈리아 총리와 그런 식의 대화를 한다는 게 이상했다. 숨은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은 하나의 작전이었다. 대통령은 잔뜩 흥분한 이탈리아 총리에게 문화 대결을 제안했다.

 

한국의 검술과 이탈리아의 펜싱 승부. 


총리는 반색을 하면서 받아들였다. 뭔가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대통령은 곁눈질로 내게 신호를 줬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누구 머리에서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내게 아무 언급도 없이 일이 진행됐다는 것이 불쾌했다. 어쩌면 테러 위협이니 하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고, 나를 동행시킨 이유가 처음부터 이 시합 때문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바로 한 시간 뒤가 시합이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안 하겠다고 하면 역적이 되는 상황이었다. 내 뒤틀린 심사를 읽었는지 대통령이 나를 따로 불렀다. 


-선생. 도와주세요. 


대통령이 말했다.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내가 말했다. 


-오늘 아침까지도 확정이 안 된 일이었습니다. 조금 전 까지도 성사될지 자신이 없었구요. 


대통령이 말했다. 


-부탁인가요? 명령인가요? 


내가 물었다. 


-지금은 부탁이지만, 필요하다면 명령도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대답했다.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전쟁이 나면 누구나 군인입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소위 말하는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라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세상에 그런 평화로운 전쟁은 없습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이 달렸는데, 총성이 없을 수가 있나요. 선생은 정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까? 


대통령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오늘 하루 종일 수 없이 많은 총을 맞았고, 그 역시 쐈음을 알 것도 같았다. 피로에 지친 대통령한테서 화약 냄새가 났다. 


-하죠. 하지만, 상대에 따라 제가 질 수도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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