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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Sep 01.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11

단편 소설

-하죠. 하지만, 상대에 따라 제가 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선생이 연습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청와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도장 안에도 설치되어 있는지는 몰랐다. 대통령은 내가 ‘단칼에 베기’를 수련하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도장에 가서 검을 휘둘렀다. 어떤 날은 들어간 지 1분 만에 휘두르고 나왔고, 어떤 날은 여덟 시간 동안 서 있다가 휘두르고 나왔다. 대통령은 처음에 내가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를 배우고 검을 수련하면 할수록 내가 휘두르는 그 한 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차츰 알게 됐다. 


-그건 누구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일격 아닙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그걸 목표로 하는 것은 맞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이제 막 초심자를 벗어난 그에게 그 정도 안목이 있을 줄은 몰랐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각 분야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을 하는 게 임명권자니까. 


-필요한 게 있습니까?

-목검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지팡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십 분 후에 경호원이 목검을 구해왔다. 내게 총을 겨눴던 그 경호원이었다. 


-조심하십시오. 선생님 상대인 엔리코는 올림픽을 3연패 하고 단체전까지 하면 금메달을 다섯 개나 딴 펜싱 쪽에서는 전설 같은 사람입니다. 


경호원이 말했다. 이탈리아 총리의 자신감은 그 엔리코라는 사람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전설 같은 사람인데 왜 이 시합을 말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저도 중학교 때 잠깐 펜싱을 했습니다. 엔리코가 출전한 올림픽 중계도 봤습니다. 저를 대입해 봤습니다. 제가 그 올림픽 결승전에 권총을 들고 엔리코 앞에 마주 서 있다면 어떨지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눈곱만큼도 제가 질 것 같지가 않더라구요. 선생님 앞에서는 두 명이 총을 뽑고서도 질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경호원이 대답했다. 


-올림픽은 아마추어들이 서로 기량을 겨루는 축제죠. 


내가 말했다. 올림픽은 인류의 화합과 번영을 목적으로 페어플레이, 연대, 상호 간의 이해를 기본 정신으로 한다. 어느 것 하나 서로 죽고 죽이는 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경호원은 자신을 대입해봤다고 했는데, 제대로 하려면 이런 식으로 가정해 보면 된다. 사격 분야의 금메달리스트 일곱 명을 모아서 올스타팀을 만들어, 청와대 경호팀과 시가지나 산에서 전투를 시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아마도 올림픽 올스타팀의 몰살일 것이다. 안전한 상태에서 사격을 잘하는 것과 목숨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총을 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칼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든 것을 이탈리아 측에서 제안한 대로 하라고 했다. 보호구를 차라기에 찼고, 전자감응 시스템으로 점수를 매긴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내가 검도왕전을 비롯한 이런저런 검도대회 참가를 그만둔 것도 그런 식으로 점수로 환원되는 채점방식 때문이었다. 실전이라면 이마에 겨우 생채기를 낼 정도로 위력이 없어도 먼저 머리에 닿기만 하면 점수를 얻는다. 그러다 보니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검으로 상대를 툭툭 치는 것 같은 극단적인 쾌검이 주를 이룬다. 나는 그런 것은 검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문제는 경호실에서 구해온 목검이 최상급 흑단목검이라는 거였다. 장인이 수년간 공들여 만든 흑단목검을 일류 검객이 사용하면 강철도 자를 수 있다. 예전에 사부가 직접 보여준 적이 있다. 펜싱 보호구의 내구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제대로 맞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봐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나는 어디를 공격해야 상대가 덜 다칠지 고민했다. 이런 시합에서 누가 죽기라도 한다면 심각한 외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부저소리와 함께 시합이 개시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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