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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Oct 01. 2021

시간의 문법 7

단편 소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단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를 자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수요일 두 시에 8층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나름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내가 첫 번째 질문에 막힘없이 완벽하게 답변하면, 두 번째 질문이 달라졌다. 두 번째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하면, 세 번째 질문이 달라졌다.


결국 나는 루프를 돌면서 같은 면접을 열 번도 넘게 봤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질문은 없었다. 나는 모든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했고, 약간이지만 면접관들의 성향도 파악했고, 여유롭게 답변 중간에 유머도 섞었다.


그래도 어김없이 금요일에는 불합격을 통보하는 문자가 왔다.


다음 루프에서 나는 내 면접 점수가 몇 점인지 알아보려고 면접이 끝났을 때, 나가는 척하면서 면접관 앞으로 달려 나가 채점지를 확인했다.


-만점인데 왜 불합격입니까?


경비원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그렇게 외쳤다.



다시 수요일이 왔다. 나는 이제 면접보다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한테 관심을 가졌다. 몇 번의 대화와 도둑질, 미행을 통해 나는 이 면접에 이미 합격자가 내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 명은 상무의 조카였고, 다른 한 명은 대주주의 손녀였다.


합격자가 정해진 면접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그동안 읽은 텍스트들을 떠올려봤다. 주인공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필요한 것은 조력자였다.


나는 대기실에서 적당한 사람이 없는지 찾아봤다.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1488번, 김지수. 나와 나이가 같고, 스펙이 비슷한 1차 합격자였다. 문제는 어떻게 그녀를 내 조력자로 만드는가 하는 거였다. 그녀는 대기시간 내내 한 번도 면접 예상 질문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나는 엄마와 이모를 떠올리며 정면승부를 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소용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왜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내가 타임루프에 갇혔으며, 이 면접을 수십 번째 보고 있다는 것, 이미 합격자가 내정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


-그거 알아요. 저 『시간을 달리는 소녀』팬이에요. 그럼 우리 이 대화는 몇 번째 하는 거예요?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처음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녀는 조력자답게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는 방법, 언론에 제보를 하는 것, 국회의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대기실에 있는 1차 합격자들을 더 모아서 집단으로 회사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씩 다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효과는 별로 없었다.


신고와 제보를 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선거가 많이 남은 탓인지 국회의원들의 반응도 미온적이었다.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에는 금호웰빙이 너무 규모가 작았다. 상장기업이라고는 해도 100대 기업에도 못 드는 회사니까.


시위도 실패했다. 그나마 세 명 정도가 우리와 뜻을 함께해서 다섯이서 피켓시위를 했는데, 업무방해죄로 유치장 신세를 졌다. 이모부가 신원보증을 서서 꺼내줬다. 이모부는 망하기는 했지만,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라 아는 사람도 많고, 법에도 조예가 깊다.


-포기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합격자가 내정된 면접에 대한 조언을 구했더니 이모부는 그렇게 말했다.


-그보다 이모한테 들었는데, 너 타임루프에 갇혔다며?


이모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 로또 번호가 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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