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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05. 2021

재채기를 하라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만나면

고등학생 때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았다. 기초가 부실한 탓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았다. 거듭제곱근 루트나 적분 기호 인테그랄 같은 것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내 인식 세계로 결코 환원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렇게 약속한 거니까, 그냥 외워서 풀어." 질문하면 항상 그런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한 약속대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 억울해 수학이 더 싫어졌다.

고등학생 때 내 꿈은 우주비행사가 돼 외계인과 근접 조우하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외계인을 만나기 위한 첫 관문은 수능시험이었다. 나는 수학 학원에 등록했다. 수강생 모두가 그 학원을 '재채기 학원'이라 불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장은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재채기를 하라"고 가르쳤다. 원장 주장에 따르면, 재채기는 문제와 접촉하기 위한 효과적 방법이었다. 모든 감각은 신체 접촉에서 파생하는데 아무리 많은 공식을 외우고 풀이 과정을 익혀도 문제와 접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 나중에 대학 시(詩) 창작 수업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탁자 위의 물병에 가서 닿아라. 그래야 물병에 대해 쓸 수 있다."            




나는, 휴지를 돌돌 말아 콧속을 간질이면 재채기가 난다. 콧속이 말라서 반응이 없으면 코털을 뽑는다. 코털을 하나 뽑으면 재채기가 난다. 수능 당일 나는 코털을 스무 개 뽑았고, 결국 대학에 갔다. 그러나 우주비행사가 되지는 못했다. 미련 때문인지 가끔 우주에 관한 소설을 쓴다. 이제 수학 문제를 풀 일은 없지만, 소설을 쓰다가 막혔을 때, 삶의 어떤 선택 순간, 막힌 관계를 풀어야 할 때, 나는 가끔 재채기를 한다. 어쩌면 원장이 재채기하라고 한 이유는, 난제를 만났을 때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말라는 뜻이었는지 모른다.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8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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