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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11.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2

단편 소설

-대통령님께 검술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마땅히 마실 게 없어 생수를 두 병 꺼내주고 찾아온 용건을 묻자, 그들은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봉건 시대의 왕도 아니고 대통령이 검술을 배운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구나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대통령은 일흔이 넘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같은 대답을 했다. 이번에는 약간의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2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TV토론회에서 후보 중에 제일 고령이던 대통령에게 건강에 대한 우려 섞인 질문이 몇 개 나왔다. 5년 동안 나라를 이끌어 나가야 할 대통령 후보에게 건강은 필수니까. 당시 후보였던 대통령은 자신이 특전사 출신임을 강조하고, 지금도 꾸준히 등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대답을 하다 보니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에 수배를 받아 산속 암자에 숨어 지냈을 때, 스님들에게 무술을 배운 일화까지 말하게 되었다. 그때 배운 것들을 지금도 운동 삼아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고 말이다. 


문제는 그 토론회 후에 모교를 방문했을 때 생겼다. 대통령의 모교는 검도부가 유명한 곳이었고, 대통령은 후배들과 기자들의 요청에 진검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하필이면 그 사진이 너무 잘 나왔다. 인터넷에서 약간 화제가 됐다. 선거 캠프의 홍보 담당자가 사진 밑에 문구를 넣어 선거 공보물에 넣었다. 


-이 나라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악습을 끊어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진 한 장 때문에 당선된 것은 아니겠지만, 국민들의 뇌리에 이미지가 각인 된 것은 분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고류검술의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소문을 대통령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나서서 부인하지는 않았다. 좋은 이미지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정치니까. 


-내년에 있을 대통령 배 검도왕전에 개회사와 함께 공개연무로 짚단 베기 시범을 보여 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그들의 부연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거나, 일정을 핑계로 불참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벌써 두 번이나 일정을 이유로 거절했고, 바로 잡기에는 늦었다고 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어디나 나름의 이해관계와 사정이 있다. 


-왜 하필 저죠?


내가 물었다. 


-검도왕전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사람, 지금 당장 도장 문을 닫아도 상관없는 분을 찾으니 몇 명 없더군요. 무엇보다 대통령님께서 선생의 별호를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들이 대답했다. 


-별호요?

-검치라고 불리신다고.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검술 미치광이. 사람들이 한때 나를 그렇게 불렀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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