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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09.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1

단편 소설

청와대에서 사람이 온 것은 ‘단칼에 베기’를 막 완성했을 때였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목표를 정확히 베는 것은 검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취하고 싶은 경지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을 베라고 가만히 서 있는 상대는 없다. 상대는 저항한다. 막고, 피하고, 역으로 나를 공격해 온다. 한 번에 벨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번 휘둘러야 하고, 그 흐름이 모여 일정한 형태의 초식이 된다. 그러니까 검술에서 초식이란 불가피하게 필요한 비효율적 움직임을 뜻한다. 


나는 검을 수련한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천 개가 넘는 비효율적 움직임을 몸에 익혔고, 그 움직임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벨 수 있었다. 하지만, 몸에 익힌 초식이 1001개가 되고, 1002개가 되어도 나는 더 이상 강해지지 않았다. 2천 개의 초식을 익힌들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한계였다. 


초월은 금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금이 사라지는 순간에 생겨난다. 나는 그동안 익힌 모든 움직임을 버리고 ‘단칼에 베기’를 익히기 위해 5년을 수련했다. 


수련의 마지막 단계로 너무 오래 안 팔려 스무 개에 만 원하는 자두를 사다가 초파리를 모았다. 100번을 휘둘러 100마리의 날개를 잘랐다. 궁극의 경지라고 할 수는 없어도,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문 정도는 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을 때, 불청객들이 왔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그들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래서요?


나는 다소 공격적으로 되물었다. 아내가 죽은 뒤로 세상사와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살았다. 경찰이든 청와대든 나를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검도 협회의 추천을 받고 찾아왔다고 하면서 협회장의 이름을 댔다. 그 영감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게 즐거워서 영감도 웃고 있을 터였다. 회비를 안낸 지 꽤 오래됐는데도 나는 아직 협회의 회원인 모양이었다. 


-일단 들어가시죠. 


나는 도장 옆에 딸린 사무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협회장 영감의 이름이 나오는 바람에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영감은 내 스승의 친구 격인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방금 내가 이룬 성취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안목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고흐의 진품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미술을 전공한 사람한테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전 국민이 피겨 스케이트의 전문가라도 되는 양 열광하지만, 김연아가 공중에서 정확히 세 바퀴 반을 회전하는지, 착지할 때 스케이트 안쪽 날로 떨어지는지는 평생 무술을 한 내 동체시력으로도 확인하기가 어렵다. 어느 분야든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다. 


이 시대에 검술은 쓸모없는 것을 넘어서 사회에 해악이 된다고 여겨진다. 일정 기간마다 진검 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목검을 들고 공터에 나갔다가 경찰에 검문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 ‘단칼에 베기’는 단지 위험한 행위 정도로만 보일 것이다. 뭐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검도 협회는 공식적으로 검도가 예의를 중시하는 무예라고 설명한다. 정신수양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은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식사예절이 복잡한 이유는 서로 칼을 들고 밥을 먹기 때문이다. 밥을 먹다가 시비라도 붙으면 누군가 죽는다. 그래서 복잡한 예의로 서로 보호하는 것뿐이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에서는 복잡한 식사예절이 없다. 위험하지 않으니까.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은, 더 원초적이고 야만에 가깝다는 뜻이다. 


뭐라고 포장하든 검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무기고, 검술은 그 방법일 뿐이다. 나는 그것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누구를 죽이기 위해 검을 수련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죽이지 않더라도 갈고 닦고, 강해지고 싶다. 그것의 가치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이 이제 몇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더 늦기 전에 협회장 영감을 한번 찾아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통령님께 검술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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