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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Apr 03. 2020

거기에서 여기까지 오세요

발부터 머리까지 물속으로. 그렇게 ‘풍덩’ 물속으로 들어갔다. 시력이 좋지 않아 시야가 흐릿해도 두 팔로 물을 가르며 앞으로. 두 다리로 위아래로 물을 차면서 매일 앞으로 갔다.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생이 된 후였다. 강사에게 배우는 것도 아니었다. 사촌 언니, 오빠와 함께 무작정 수영장에 다녔다. 서로를 응원하며 물속에서 온갖 웃긴 모양으로 자유형을 익혔다.


다시 수영을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였다. 일주일에 3번 정도 퇴근 후에 강습을 받았는데, 강사 한 명에 20명은 족히 되는 성인들이 줄지어 판을 잡고 발차기를 시작했다. 모두 다른 얼굴로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두 손으로 판을 잡고 발을 차면서 머리는 꼿꼿이 세우고. 너도나도 앞으로 앞으로 가려고 애쓰는 모습. 그중에는 남보다 빨라서 앞사람을 따라가다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판을 잡고도 물 위에 뜰 수 없어 고꾸라지기 바빴다. 한 달 후 모두가 다음 단계의 반을 등록할 때, 한 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판을 잡고 계셨다. 레인을 가르는 줄을 사이에 두고 그분이 내게 건네는 말을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물에 어떻게 해야 뜨는 건지 모르겠어요. 난 자꾸만 가라앉는데..”


나는 누구에게 묻는지도 모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했다. 더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배영까지 배우고 강습을 그만두었다.


물에 어떻게 해야 뜨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물에는 뜰 수 있었다. 숨쉬기를 하면서 자유형도 할 수 있었고, 물에 뜨는 것만으로도 수영을 할 수 있다고 배영을 배우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냥 수영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강습을 받았고, 새롭게 시작했지만 처음보다 모든 게 수월했다. 어떤 날은 모두를 앞서서 출발하기도 했다. 처음 수영을 시작했을 때에는 판을 잡고 발을 차며, 앞으로 가는 데에만 급급했다. 그래도 이제는 숨을 좀 더 고르게 쉬기 위해서 물 위에 뻗은 팔에 머리를 어떻게 기대야 할지 생각하고, 생각처럼 할 수 있었다. 물 밖으로 나온 팔은 팔꿈치를 약간 접고, 손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서 물을 가른다는 생각으로 손과 팔을 쭉 뻗었다. 무릎이 접히지 않고, 발목이 꺾이지 않게 허벅지부터 힘이 들어가도록 발차기를 하고. 벽에서 벽까지 몇 번을 다녀오면 허벅지에서 열이 올랐다. 처음 강습을 받았을 때에는 발목이 아팠는데, 수영을 마치고 나면 허벅지가 뻐근하고 후끈했다. 그런 날이면 혼자서 뿌듯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구나.’


중급 반과 고급 반에서 나보다 빠르고, 보다 유려하게 앞으로 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도 스스로에게 자신이 생겼다. 저 사람들보다 느리고 엉성해도 스스로 앞으로 가고 있구나, 싶었다.


처음 물 위에 몸이 떠올랐을 때, 내가 가진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던 그 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팔과 다리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갈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몸에 닿는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무게를 지고도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강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줄 너머에서 누군가가 ‘물에 어떻게 해야 뜨는 것’인지 물어와도 여전히 대답은 할 수 없다. 어쩌면 나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음… 몸에 힘을 좀 빼고…’


음...나는 그런 대답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몸을 물에 띄우고, 매일 앞으로 가다 보면 분명 강해질 거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물에 뜨지 못해도, 한 달에 10번이라도 강습에 오면. 거기에서 여기까지 오다 보면 그렇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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