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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29. 2022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원서는 딱 두 곳에 썼다. 모두 국립대였고,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곳. 담임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쓰기를 바랐다. 몇 번이고 내게 물었다. 나의 대답은 늘 같았다.


“저는 국립대로 가야 해요. 서울은 갈 수 없어요.”


속으로는 말했다.


‘제가 갈 수 있을까요. 가고 싶어요.’


대학에 가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집은 나에게 안식처이기보다 짐스러운 곳이었다. 늘 마음이 무거웠다. 어디로 가고 싶다는 생각보다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결국 나는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국립대에 진학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흥미가 있던 학과였다는 것.


대학 캠퍼스는 손꼽히게 넓은 곳이었다. 수업이 없을 때면 늘 걸어 다녔다. 벤치에 앉아 있거나 빈 강의실을 찾아 앉아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여기 시간을 즐길 여유는 심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여의치 않았다. 자주 혼자 있었고, 늘 일찍 집으로 향했다. 늘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늘 집으로 향했다. 그럭저럭 학교를 다녔고, 어영부영 학기를 지나고 있었다. 와중에 수업도 재밌고, 학교를 다니는 목표도 생겼다. 그렇게 한 학기를 지날 즈음이었다. 오래도록 따로 지냈던 아빠가 집에 왔다. 그리고 말했다. 나의 부모는 이제 법적으로 남이 되었다고. 솔직히 어릴 적부터 이미 나의 부모는 남으로 살았다. 언젠가는 각자의 삶을 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나의 부모로 살아가는 날을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늘 기대처럼 되는 일은 없었다. 불행이 디폴트 값으로 정해진 것처럼 여겨졌다.


내가 스무 살이 되기를, 받아들일 나이가 되기를 기다렸다는 두 어른의 말에 화가 났다. 20의 봄과 여름. 나는 여전히 화가 났다. 조금씩 가졌던 희망이 피기도 전에 졌다. 매일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이유도 목적도 없이 학교로 향했다. 이미 알고 있던 결과였지만 스무 살의 나는 모든 것이 버거웠다. 다시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더욱 멀리 가고 싶어졌다. 집이 아닌 곳으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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