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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31. 2022

온통 깨어있던 겨울

제주행 비행기가 결항됐다. 간밤에 폭설이 내려 모든 비행기가 취소된 것이다. 다음 비행기도 없었다. 제주 공항에 발이 묶인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예약한 모든 것을 취소했다. 그리고 다른 차를 렌트했다. 제주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다른 바다로 떠나기로.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어두운 밤에 출발했다. 불빛이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그저 어둠뿐이었다. 동해로 향하는 고속도로. 앞에 달리던 차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뒤를 따라오던 차는 우리를 추월해 앞으로 향했다. 하나씩 둘씩,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깜깜한 도로 위에 불빛이라고는 우리가 타고 있는 차의 라이트뿐이었다.


덩그러니 남았다. 차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마치 제자리에 멈춘  같았다. 아무리 달려도 앞으로 뒤로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빛이 떠오로는 바다에 다다랐다. 일출을 보기 위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영하 17. 바닷가의 모래는 차가운 공기에 얼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박자박 작게 부서진 유리가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해변의 모래가 얼어 있었다. 볼이 에일 정도로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손도 볼도 그리고 다리가 얼어붙어 서서히 감각이 사라졌다. 그렇게 얼어붙은 채로 계속  있고 싶었다.


사방이 어둡던 고속도로. 석양이 지는  같았던 새벽 겨울 바다. 모든 감각이 얼어버린 추위. 모든 순간의 감각이 생생하던 시간. 온통 깨어있던 겨울.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자리. 많은 것을 잃고 잊지만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을 마주칠 때가 있다. 밤을 달려 도착한 새벽 바다가 그랬다. 그 밤과 겨울은 유난히 선명하고, 행복하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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