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남을 갖지는 않지만 계속 소식을 전하고 받고, 기회가 되면 얼굴을 보기도 하는 오랜 친구.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주 오래 공부를 했다. 오래도록. 와중에 생일 축하 인사를 잊지 않았고,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먼저 소식을 물었다. 혹 힘들게 시간을 보내는 그가 걱정되어 먼저 연락을 하려다가도 때로는 염치가 없고, 때로는 부담이 될까 주저했다. 그저 홀로 응원할 뿐이었다. 어떤 걱정의 말도 더하지 않는 것이 내가 전할 수 있는 응원이었다.
노력한 끝에 취업을 하고, 그 공부는 끝났다. 짧은 문장으로 친구가 한 선택과 고민, 감당해야 했던 갖은 돌무더기의 무게를 표현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오는 시련일지 모르지만 유독 그에게만 가혹했던 시간은 끝이 난 듯했다. 그렇게 그 길고 긴 터널을 지나왔는데 친구는 또 다른 터널을 마주한 것처럼 서 있다. 푸념도 원망도 할 수 없이 온전히 자신만을 탓하고 담금질하며 보냈던 시간이 결국 그를 쓰러뜨렸다. 이제 좀 앞으로 발을 내디뎠더니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안타까웠다.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대체 얼마나 더 힘들게 지내야 하는가 싶었다. 이 마저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이쪽의 시선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나는 너처럼 살 수 없을 거라고 홀로 말한다. 그의 수고와 무던히 버텨온 시간을 감히 가늠도 하기 어렵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친구의 노력과 인내에는 고개가 숙여지고,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결국 그 시간을 홀로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를 존경한다. 그가 마주한 또 다른 터널이 얼마나 길고, 어두울지 혹은 염려보다 빠르게 끝이 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이번에도 무사히 잘 지나갈 것이라는 건 안다.
친구가 더는 힘주어 걷지 않고, 숨도 좀 고르며 이리저리 눈 돌리며 살았으면 한다. 어두운 터널 속에 있지만 결국 밖으로 나올 그가 벌써 반갑다. 어쩌면 이미 출구 가까이 도착했을지 모르겠다. 분명 그는 홀로 뚜벅뚜벅 걸어와 이만큼까지 왔다고 먼저 연락해 왔으니 말이다.
여름에는 함께 바다를 보면 좋겠다. 그가 열심히 서핑을 연습하고 바다에 나가 우뚝 서면 좋겠다.